시와 함께하는 세상-유다는 선한 사람
시와 함께하는 세상-유다는 선한 사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10 14:48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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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유다는 선한 사람

죽은 가수의 레코드가 돌아가고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테킬라는 잔에 담겨 흔들리고 있다

사후의 평가 이후
가사로 인해 고평 받던 그의 음악은 사운드를 중심으로 소비된다

죽은 가수의 노래를 연주할 때
세션들은 그가 리듬을 다루는 방식과 주법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생전 무대 위에서
그가 뱉었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곳에 없다

사운드는 좋은데 근데 이 세션들 좀 어떻게 해봐

조심하시오
언젠가 당신이 만든 것들이 당신이 만든 것들은 거짓이 되게 할 거야

죽은 가수의 레코드를 들으며
테킬라를 마시면서
기도를 했다

내가 썼던 문장들이 나 때문에 거짓말이 되었다
유다
그는 선한 사람
예수를 한 번밖에 팔지 않았다

(홍지호, ‘테킬라’)

테킬라(Tequila)는 재즈(jazz)와 잘 어울리는 중남미인들이 즐기는 술이다. 시에서 등장하는 가수는 틀림없이 남미풍의 정열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일 것 같다. 남미에서 유행하는 음악에는 두 가지인데, 그중에서 탱고는 형식을 갖춘 중년 중심의 음악이라면 재즈는 분명 젊은이나 서민들의 음악이다. 대개 재즈라고 하는 음악은 정열적이고 역동적이면서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음악이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는 테킬라가 가득 찬 잔이 흔들린다는 것은 춤으로 어우러지고 있는 현장을 암시한다.

원곡의 가수는 이미 고인이 된 상태이지만 살아생전에 가사에 호평을 받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음향을 중심으로 소비되고 관객은 그러한 리듬이나 주법에 만족감을 느꼈다면, 그 음악은 음률로서는 매우 성공적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려웠던 세월이 많이 흘러 변해버린 세태에 따라 원곡자가 부르던 시절의 노래를 현재의 관객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다. 그냥 음률만 즐기고 음악성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인은 음악도 중요하지만, 그 음악에 담겨 있는 가사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의 전반부는 단순히 음악만을 소개하고 있지만, 후반부에서는 그 음악에 담겨 있는 의미나 상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즈는 뉴욕풍의 갱스(gangs) 재즈의 역동적인 내용과는 달리 비참했던 흑인들의 과거사가 담겨 있는 남미풍의 니그로(Negro) 재즈는 한(恨)이 담겨 있기도 하다. 마치 우리나라의 동편제(東便制)와 서편제(西便制)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후자가 더 하겠지만, 음악적으로는 흐느적거리는 면이 있어서 젊은이의 취향에는 별로 일 것이다. 그래서 /사운드는 좋은데 근데 이 세션들 좀 어떻게 해봐/라는 어휘가 등장으로 볼 때 니그로 재즈의 본질보다는 역동적인 곡을 연주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무엇보다 /테킬라를 마시면서/기도를 했다/는 사실, 당신이 만든 것들을 거짓으로 만든다는 사실, 그것은 내가 썼던 문장이 나 때문에 거짓말이 되어버린다는 사실, 등으로 서정적 자아의 사상적인 모순을 동원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니그로(Negro) 풍을 이용했던 자들의 모순이나 나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음악의 가사와 사운드를 괴리시키고자 한 사실일 것이다. 시인은 주변의 젊은이들이 /사운드는 좋은데 근데 이 세션들 좀 어떻게 해봐/라는 어휘를 통해 내용이 아닌 사운드 중심의 음악으로 변질되어 가는 재즈의 현주소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 자신을 비롯하여 모두를 속이는 세상 음악의 흐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지금의 사람들에 비해 //유다/그는 선한 사람/예수를 한 번밖에 팔지 않았다//로 결론을 내리면서 현재의 음악에 대한 세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위선이 너무 많이 판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홍지호의 ‘테킬라’가 주는 시사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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