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새봄의 텃밭
세상사는 이야기-새봄의 텃밭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14 13:0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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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수필가
김창동/수필가-새봄의 텃밭

노란 봄꽃내음 한 아름, 연분홍 봄 분위기 물씬. 졸졸 흐르는 봄 소리 쫓아, 한껏 익은 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영영 봄이 오지 않을 것처럼 긴 추위더니, 며칠 사이에 바람 속에서, 햇살 속에서 언뜻언뜻 봄기운이 완연하다. 남녘의 들에는 영춘화와 매화가 피었다. 목련도 벙글어서 세상이 환하다. 미세먼지가 연일 나쁨 수준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봄볕을 쬐지 않으면 그 따스함을 그대로 낭비해버리는 것만 같아 밖으로 나가보기도 한다.

사람이 빠져있는 자연은 평화롭다. 때 되면 꽃 피고, 꽃 지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이 진다. 꽃을 밟고 올라오는 나무도 없고, 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서 큰 나무 홀로 푸르지 않다. 하지만 사람 사는 요즘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봄이 활짝 펼쳐지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엔 텃밭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일손이 조금씩 바빠지고 있다. 텃밭 분양을 끝낸 밭에서는 거름을 새로이 하고,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모종을 시작했다. 작은 땅을 가꾸는 일이지만 장화를 신고 챙이 긴 모자를 쓴 사람들의 행색은 경험이 오랜 농부에 못지않다. 어린아이들도 밭에 나와서 고사리 손으로 흙을 쌓고, 구멍을 만들고, 물을 뿌리며 거든다. 옷에 흙이 묻은 채 기어갈 적에는 땅벌레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거리낌 없이 햇살 아래 해맑게 웃는다.

내가 사는 곳에도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연두색 새싹이 우우우 돋고, 과수원의 구수한 흙냄새도 맡게 된다. 정현종 시인은 시 ‘파랗게, 땅 전체를’에서 ‘파랗게, 땅 전체를 들어올리는/ 봄 풀 잎/ 하늘 무너지지 않게 / 떠받치고 있는 기둥/ 봄 풀 잎’이라고 노래를 했는데, 그야말로 봄의 풀잎을 보고 있으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되고, 또 괴력과도 같은 생명의 위력을 느끼게 된다.

나도 여러 해에 걸쳐서 텃밭 농사를 지은 적이 있었다. 열무와 당근, 감자와 고구마, 아욱과 상추와 배추, 정구지 고추 농사를 지었다. 소출은 썩 좋지 않았지만 행복감은 꽤 느낄 수 있었다. 움트는 것을 돕는 것, 푸른 성장을 돕는 것, 열매를 맺는 것을 돕는 것을 통해서 내가 움트고, 내가 자라고, 내가 열매가 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게 텃밭 농사는 단순하게 농작물을 기르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마음밭을 경작하는 일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밝음과 활력과 자애와 보살핌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이었다.

나는 작은 땅의 경작을 통해 마음에 많은 것을 얻었다. 이 일은 비록 물질적으로 얻는 것이 사소할지 모르지만 슬픔과 좌절의 늪에 자주 빠지게 되는 우리의 삶에 견주어 보면 상실감에 빠진 마음을 밝게 회복시키는 일인 만큼 그 이익은 상당한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자연의 성장을 도우면서 우리 마음속에 긍정하는 마음도 함께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봄이라고 해서 사실은 새로 난 것 한 가지도 없다. 어디선가 깊고 먼 곳을 다녀온 모두가 낯익은 작년 것들인데도 그렇다. 그처럼 봄은 언제나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오게 하여 겨울을 보내는 마음에 봄에는 또 다른 희망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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