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간판 제대로 읽기 운동본부
진주성-간판 제대로 읽기 운동본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16 15: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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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간판 제대로 읽기 운동본부

천년고찰의 종무소에 근무하는 십년지기의 벗으로부터 카카오톡으로 문자메시지가 왔다. 출처는 밝히지 않고 심오한 뜻이 있으니 작가 선생님께서 읽고 한 말씀 해주시라는 부탁까지 하여 여느 때와는 다르게 사뭇 긴장까지 했다.

주역에 심취되어 대가를 찾아 전국을 다니면서 짧게는 달포에서 길게는 2·3년씩 스승을 모시며 십수 년을 보냈고 절집에서는 불경과는 달리 명리학에 몰입하여 십여 년째 종무소의 일을 보고 있어 언행의 절제됨이 몸에 배어서 말 한마딘들 허투루 하지 않으며 어쩌다 기둥에 걸린 주련의 글귀를 놓고 풍자적인 해석을 붙여 시답잖은 선문답을 주고받기는 해도 귀 밖으로 흘려듣지 않는데 심오한 뜻이 있다고 대못부터 쾅! 박고 나오니까 오언절구든 칠언절구든 해석하기가 꽤 어렵겠구나 하고 조심스럽게 화면을 확대하였더니 “골프 나들이를 함께 하고 절집을 찾은 세 사람이 절집 앞에 걸린 팻말에 쓰인 글을 보고, 나서기 좋아하는 나잘난이 ‘심조불산 하니, 수군인용 하니라, 좋은 말씀입니다’ 하니까 덩달아 반잘난이가 ‘그러게 말입니다. 난 저 법문을 아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하는데, 빠지지 않는 한잘난이 ‘참 심오한 뜻이지요.’ 하고 점잖을 뽑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2학년쯤 돼 보이는 초등학생이 그 팻말을 또박또박 큰소리로 ‘산.불.조.심, 용.인.군.수’ 하고 지나갔다”

나더러 다음 글을 이어서 써서 보내라고 했다. 작가 선생님으로 깍듯이 대우하는데 뜸 들이면 퉁을 맞을 것이라서 얼른 답글을 올렸다. “그들의 조상 한 분도 진주성을 구경하러 와서 촉석루 현판을 쳐다보며 크게 소리 내어 ‘촉석루라, 라 자(字) 그 참 자-알 썼다’라고 극찬을 하셨습니다. 빈깡통 올림”하고 보냈더니 이내 또 답이 왔다.

“좋은 현판입니다. 유서 깊은 진주라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현판도 전국으로 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산방처사” 이럴 때 잠자코 있으면 산방처사께서 불벼락을 내릴 것이라서 “한글을 아는 사람은 ‘한국토지투기공사’라고 읽습니다. 전국 간판 제대로 읽기 운동본부장 윤위식 올림” 했더니 즉각 답글이 또 왔다.

“한국주택폭리공사와 합쳐진 이름이라더니 심오한 뜻이 있는 오묘한 곳입니다. 우리는 땅 두릅이나 초무침 하여 곡차나 한 잔 하십시다.”라고 해서 “땅 두릅 초무침이라, 심오한 맛이 나겠습니다”라고 답글을 보냈다. 현판이나 간판은 실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이름이고 얼굴이다. 요즘 정부산하에는 양두구육의 간판들이 너무 많다. 국민이 간판 제대로 읽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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