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추석
아버지의 추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9.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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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판/전 고교교사·서울대성학원장

 
추석 명절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로 명절 중 가장 풍성한 때이다. 중국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말로 중추절(中秋節). 가배(嘉俳). 가위. 한가위라고도 한다.
한국 고유명절로 추석은 ‘가윗날’이라 부르는데 이는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는 신라 유리이사금 때 6부(六部)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기망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길쌈, 적마(積麻)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성적을 가려 진편에서 술과 음식을 이긴 편에게 대접했다.
이 때 회소곡(會蘇曲)이라는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배’라고 불렀다. 가배의 어원은 ‘가운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음력 8월 15일은 대표적인 만월 명절이므로 이것을 뜻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진편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갚는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아름다운 명절 추석이 다가오면 무척 힘든 삶을 사셨던 아버지의 아련한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옛날, 아버지는 명절만 되면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추석날, 그분은 나의 손을 꼭 쥐고 고향으로 향하는 콩나물시루보다 더한 버스에 몸을 맡긴다. 마침 사라호 태풍이 할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그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두 부자는 바지를 반쯤 걷어 올리고 발을 동동 굴리며 걱정스레 신작로를 걸었던 추석의 고향길...
이제 나도 그때 아버지의 연륜을 훌쩍 넘긴 나이라 괜스레 걱정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닌 듯싶다. 그렇다면 지난시대 그리고 우리시대 모든 아버지들의 공통된 자화상은 과연 일그러진 모습들뿐일까? 아니다, 사랑과 정이 어우러진 꿈과 샹그릴라의 아름다운 축제 한마당 연극이 되어 나에게 다가선다. 무대의 주인공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래에 담아본다.
어릴 적 담대하신 그분 나의 아버지, 현해탄 건너 먼 나라 일본에서 상처 입은 당신 가을이면 낙엽처럼 비틀고 말라버린 소리... 밤새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당신의 아우성에 나는 神을 원망했고 자신을 몹시도 싫어했었지. 허공, 명상, 피리를 친구삼아 늘 함께했었고...
원망의 끝은 나를 그만 멈추게 만들어만 했어. 까만 교복과 왕관(모자)을 훌훌 털어버리고 神에 따지러 내 영혼 태워볼까 하고 戰線의 길 택했지. 神도 놀라 도망간 듯 만나질 못하고 남지나해 건너 부산에서 열차 타고 집에 드니 안면 많은 한 낯선 남자가 방에 홀로 앉아있더라...
평생을 고통과 아우성을 벗 했던 나의 아버지, 내 없는 일 년 새 모든 것 다 날려 보내시고 오동통 발그레 어린 童顔되어 날 보고 웃고 계셨네. 그러나 神은 그분께 또 다른 고통과 수난을 안기시니 더 이상 버티기 힘드셨는지 아무 말도 없이 영원히, 영원히 안방에 홀로 누워 일어나질 않더라.
그분을 바라보는 나의 눈엔 눈물마저 멈추었네. 번뇌와 고통의 삶은 세속에 두고 가시려는 듯 머리맡에는 하얀 봉지와 물 반 사발만 남긴 채... 이렇게 훌쩍 아무런 얘기도 없이 우리곁을 떠난 아버지가 올해는 유난스레 그리워지는 이유는 왜일까?
며칠 후면 동심의 추억들로 가득한 추석이네요. 지금 어머니는 아흔을 넘겨 거동이 불편하고 돌아서면 모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나에겐 어머니의 등은 여전히 따습고 포근한 이불 같습니다. 살아생전 부모님 모시는 일 게을리 하지 마시고 고향길 무사하고 평안한 추석이 되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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