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봄비 오는 창가에서
진주성-봄비 오는 창가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23 14:5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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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봄비 오는 창가에서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유리창을 적시며 흘러내린다. 시골집 툇문 밖에서 들리던 소리가 아니다.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 같더니만 그도 아니고, 대밭에 떨어지는 싸락눈 오는 소리도 아니고, 아랫목에 감싸둔 항아리의 술 익는 소리도 아니고 정화수 떠 놓고 소원을 비는 할머니의 손바닥 비비대는 소리도 아니다. 아무 소리 없이 유리창만 적신다. 유리창이 흐느낀다. 희뿌연 하늘도 흐느낀다. 들릴 것 같은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봄비 오는 소리는 귀로는 듣지 못한다. 봄비 오는 소리는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 봄비 오는 소리는 외롭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가슴을 열어야 들리는 소리다. 소리 없는 흐느낌의 소리가 들린다. 가슴으로 우는 소리가 들린다. 잃어버린 웃음, 잊혀져가는 얼굴들. 봄비에 젖어서 더 어름어름하다.

나의 문학교실 아래층의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모습이 빗물에 젖은 창밖에서 어른거린다. 오륙십 석을 모두 메우고 득실거리던 번잡함이 엊그제 같은데 텅 빈 자리마다 황량함이 오늘을 말한다. 봄비에 젖은 창문이 소리 없이 흐느낀다. 주룩주룩 흐르는 빗물이 서럽다. 흐르는 빗물에 아주머니의 가슴속이 젖는다. 차마 내보낼 수 없어서 종업원을 붙들고 울던 눈물이 지금 창문을 적시고 있다.

다들 힘겨워서 등받이 해 줄 사람도 없고 가슴으로 우는 소리조차 들어줄 사람이 없다. 소리도 못 내고 그저 가슴으로 운다. 유리창을 타고 내리는 빗물이 두 뺨을 적신다. 빗물에 흘러 젖는 오지랖이 서럽다. 젖은 가슴이 시리다. 내일을 바라보고 오늘을 살았다. 가족들의 따뜻한 체온이 있어 못 참을 일도 없었고 아이들의 해맑음 웃음이 있어 고단함도 잊었다. 무심한 것이 하늘인가. 매정한 것이 인간이던가. 간절한 바람은 허공에 지고 애절한 소망이 봄비에 젖는다. 기도원의 기도 소리에 하늘이 무너지고 목욕탕사우나의 뜨거운 김이 희뿌옇게 피어올라 눈앞이 캄캄하다.

생계형의 집합도 아닌 것을 당분간만 참아주었어도 좋았을 것을 재기의 꿈도 짓밟혀버렸으니 대접받아도 좋을 문화생활이 이기적 부자놀이로 증오의 대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어찌 아래층 식당만 썰렁 하겠냐, 차향 그윽한 카페도 쓸쓸하고 내 작은 문학교실도 외로움에 젖었다. 함께하자던 고통은 언제나 서러운 이의 몫이고 피안의 포구는 갖춘 이들이 점유물이다. 건물주의 달력은 더디게 넘어가도 세입자의 달력을 빠르게 넘어간다. 가슴을 적시는 봄비가 온다. 복사꽃이 피면은 재기의 꿈도 함께 피려나, 장미꽃이 피면은 웃음꽃이 피려나. 봄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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