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행복의 조건
도민칼럼-행복의 조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24 13:21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행복의 조건

인간은 추구하기를 하나같이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고 싶어 한다. 건강하게 살면서 영원히 죽지 않고 즐거운 놀이를 하며 맛있는 걸 먹으면서 근심·걱정이 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모두 빈손으로 왔다가 언젠가는 또 빈손으로 돌아간다.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순리이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행복이란 원한다고 해 선뜻 다가오질 않는다.

누구나 태어나자마자 고난이 시작된다. 스스로 숨 쉬며 독립해 살아야 한다. 물론 엄마가 공급해 주는 젖과 보살핌이 있어야 하고 어릴 때는 어머니가 제공해주는 걸 먹고 자라날 수 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사람이 태어나면 곧바로 고난의 인생길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누구나 행복하려면 처음 태어날 때부터 그 집에 환경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부모와 만남의 관계가 좋아야 하고 주거 환경이 쾌적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임신 중에 부부가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부부싸움이 잦고 이로 인해 산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그리고 충분한 영양을 취하지 못한다면 태아에게는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부모는 몸과 맘이 건강해야 아이가 가는 길을 바르게 안내해주는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때 5, 60 년 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면사무소직원이나 관공서 기관에 근무하는 자녀들과 교직자인 가정, 그리고 면 소재지에서 음식점이나 잡화점을 하는 사람들의 자녀들과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의 자녀들하고는 의식주의 생활환경과 교육환경에서 이미 행복의 조건이 판가름 났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날 때는 6·25 전쟁 중에 태어났다. 임신 중인 어머니는 밤이 되면 좌익군에 낮에는 국군과 경찰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었다. 악몽 같았던 여순사건을 이어서 겪은 6·25 한국전쟁을 혹독하게 겪었었다. 14연대 좌익 군인들은 그나마 양민 학살은 없었으나 경찰과 대한청년단은 저승사자와 같았다고 했다. 그때는 먹을거리가 부실했다. 나물죽이 아니라 끼니 잇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태아에게 영양공급은 고사하고 죽음의 공포 속에 매 끼니 걱정하고 살았다고 했다.

여순사건 때 경찰은 해가 지면 통행금지에 소등(消燈)하게 했다고 한다. 해가 지면 다음 날 밝을 때까지 부부가 누워있어야 했으니 당시에 우리 마을에 50여 호도 안 되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무더기로 태어났다. 열대여섯 명이나 되는 남녀 동갑내기 친구들은 모두 왜소하게 태어나야 했다. 키가 크고 몸집이 커 우람한 체격을 가진 친구는 한 명도 없다.

누구나 원하는 행복의 척도는 쾌적한 생활환경이라 하겠다. 요즈음은 태아 교육부터 시작해, 걸음걸이가 시작되면 어린이집 유치원 등 체계적으로 교육환경이 잘 조성되어 성장하는데 조건이 잘 갖춰져 있다. 다시 말해 의식주가 부족함이 없다.

6·25전쟁 기간에 그때 의식주와 주변 환경은 비참했었다. 당시에 우리가 자라면서 맛있는 간식거리나 군것질거리를 대할 수가 없었다. 거칠기만 한 꽁보리밥만이라도 배 불리 먹었으면 하고 바라던 때이었다. 요즘의 어린아이들처럼 어린이집을 간다거나, 유치원에서 한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해 볼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도시에 태어난 사람들은 농촌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하고는 주거 환경부터 천지 차이였다. 거기다가 좋은 직장을 갖고 생활이 안정된다면야 금상첨화가 아닌가. 상류층 부류의 가정에서는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들이 다 갖춰져 있었다.

우리 속담에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 때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다. 과일나무를 한 그루 심는다고 본다면 좋은 씨앗을 골라 좋은 토양에 심고, 질 좋은 거름을 주고 수분도 알맞게 공급해 주어야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떡잎이 양 갈래로 튼튼하게 벌어져 좋은 묘목으로 잘 자라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좋은 씨앗을 심었다 할지라도 척박한 땅에 심고 거름도 주지 않고 수분공급도 받지 못한다면 그 씨앗은 겨우겨우 싹이 튼다 해도 떡잎 벌어지는 모양부터 다르다. 이미 좋은 묘목이 될 수 없다는 판정이 내려지고 만다.

이처럼 내가 태어나 자라난 과정을 보면 어느 하나 충족한 조건이 없었다. 태어날 때 이미 자라나는 성장 과정이 ‘너는 부실하게 자라야 한다’라는 것처럼 정해져 있었다. 좋은 조건에 태어난 금수저들이 무럭무럭 성장할 때, 흙수저들은 온갖 세파에 시달림을 받았으니 제대로 자라날 수가 있었겠는가?

지금은 좋은 환경에 심어진 나무로 떡잎부터 건강하게 태어난 데다. 시시때때로 좋은 영양을 공급받고 자랄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초·중·고 대학까지 편안하게 마칠 수 있다. 좋은 직장에서 정년을 맞으면 평생 마음 놓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충분한 연금제도가 있어 그야말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