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그것이 영구히 변치 않음을
시와 함께하는 세상-그것이 영구히 변치 않음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24 13:21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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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그것이 영구히 변치 않음을

나는 믿는다.
꽃이 변하고, 금속이 변하고, 유행이 변하고, 독재의 목소리가 변하는 것을

나는 믿는다.
간통한 남녀와 탈세한 재벌과 무지한 교육자와 불의한 정객과 그들 내통한 자들의 목소리가 변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인구밀도가 변하고, 언어가 변하고, 이념이 변하고, 지도자가 변하고, 세계의 목소리가 변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러나 당신이 내 가슴에 새기고 간 몇 음절의 사랑의 말, 그것이 영구히 변치 않음을

나는 믿는다.

(오재철, ‘나는 믿는다’)

이 시는 원로시인인 오재철 선생께서 쓰신 오래전의 작품이다. 동일어절이 반복되는 ‘나는 믿는다’는 말이 마치 노래의 후렴처럼 연달아 나오는 때문에 시의 품격이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것은 서슬이 퍼렇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될 것이며, 오히려 이면 때문에 시가 주는 무게가 좀 더 중후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재의 목소리가 변한다는 사실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 와서 볼 때, 충분히 증명된 셈이고, 문화적인 차이 또한 그러하다. 강간이나 강제 추행은 사회적으로 큰 범죄가 될 수 있지만, 간통은 도덕적인 문제만 남아 있을 뿐 사실상의 법적인 문제는 거의 사장된 것이 현실이다. 이념이 변하고 있는 것 또한 그러하다. 지금 시대는 시대적인 이데올로기(Ideologie)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친구와 적이 구분되지 않는 시대이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 시대가 도래한 지도 꽤 시간이 흘러간 것 같다. 그런데 그 민주화를 주장하던 일부 인사 중에는 시대의 흐름을 점차 망각하고 초심을 잃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무리 혁명을 통해서 시대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변화의 흐름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금의 시대는 어떠한가 또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누군가는 반드시 이 시대를 재평가할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그래서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역사에 남을 부끄러움이 아닐까.

그런데 시인은 정말 시간과 공간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당신이 내 가슴에 새기고 간 몇 음절의 사랑의 말, 그것이 영구히 변치 않음을/이다. 세상 누구나 꿈꾸는 사랑이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 흔할까, 요즘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사랑한다고 했던 초심을 잃어버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고, 영원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던 자식들까지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반목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신문 기사로 등장하는 시대이다. 정말 어느 유행가 가수의 노래처럼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일들은 민생고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일 것이다. 먹고 사는 것에 걱정이 없다면 범죄가 왜 생기겠는가. 앞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하니 힘이 빠진다. 어렵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마음을 맑게 하는 한 편의 시를 읽어 본다면 그나마 사람의 마음을 좀 순화시키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신의 가슴에 새겨질 영구히 변치 않을 사랑은 제발 거기에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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