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민족에 큰 죄를 짓는 것
시론-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민족에 큰 죄를 짓는 것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25 15: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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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수필가
이호석/합천수필가-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민족에 큰 죄를 짓는 것

평소 필자는 ‘우리 민족은 지난 역사를 너무 소홀히 생각한다’라는 마음이다. 역사는 옛날 옛적부터 어제까지 우리 인간이 살아온 흔적의 기록이다. 우리의 역사에는 민족의 생사고락과 희로애락이 함께 녹아있다. 때로는 가난 속에 허덕이다가 굶어 죽기도 하고, 초근목피로 겨우 명(命)만 부지하기도 하였다. 또 때로는 침략자들로부터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때로는 침략자들의 식민지가 되어 그들의 종노릇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는 비록 우리 민족뿐만 아니다. 세계 많은 약소(弱小)민족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힘들고 아픈 역사 바탕 위에서 억척같이 살아오면서 오늘날과 같은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러한 뼈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교훈으로 삼기를 소홀히 하는 편이다. 특히 우리 민족이 더 그러한 것 같다. 크게는 나랏일에서부터 작게는 개인이나 단체, 지역의 큰일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무리 큰 사건 사고도 냄비가 끓듯 며칠간 요란하다가 금방 잊어버린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역사에 소홀한 것은 유구한 역사에서 약소국(弱小國)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전란(戰亂)을 겪었고, 명(命)만 부지한 가난 때문이었지 싶다. 그러한 삶에서 이미 지나간 일(역사)을 기록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당장의 힘든 삶에 그런 기록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기야 지금도 지난 역사를 모른다고 해서 우선 살아가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은 개인이나 우리 사회가 잘못된 지난 일들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발전에 지표(指標)가 될 뿐 아니라, 후대들의 삶에 길잡이가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역사 기록을 소홀히 생각하는 것은, 마치 인생을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어떤 사실이든 기록으로 남으면 교훈적 역사로 전해지지만, 아무리 훌륭한 일이나 큰 사건 사고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얼마간 하나의 전설처럼 전해지다가 결국은 그일 자체가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그만큼 역사의 기록이 중요한 것이다.

국가적 좋은 예가 바로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나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있었기에, 우리나라 고대 역사가 이 정도나마 정리되어 전승되고 있고, 또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있었기에 임진왜란의 실상이 지금까지 소상히 전해지면서, 자신도 우국충정의 훌륭한 인물로 민족의 추앙을 받는 것이다. 기록이 없었다면 모두가 불가능한 일들이다.

역사 기록이 이렇게 중요하지만, 왜곡되거나 재단된 역사 기록은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하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고·현대의 역사 일부가 집권층의 입맛에 따라 왜곡되어 후대들이 이설(異說)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역사(일)에는 반드시 공과(功過)가 있기 마련이다. 역사를 기록함에는 반드시 이 공과를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후대는 그 역사의 바탕 위에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며 새로운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뀌면 앞 정권의 공(功)은 무조건 깎아내리거나 없애려고 광분(狂奔)하고 과(過)만 부각시킨다. 그리고 현 정권의 공(功)은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홍보하면서 과(過)는 온갖 변명으로 숨기려 한다. 역사가 이렇게 왜곡되거나 재단되는 것은 집권자가 자기도취에 빠져 역사의 중요성을 망각하거나 집권자에 아첨하는 간신배들의 비뚤어진 충성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최근 우리나라 어느 역사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선 공무원으로서 1970년대 보릿고개의 가난을 물리치고 조국 근대화를 위해 새마을운동(사업)에 앞장서 밤낮없이 뛰어다녔던 내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이 뭉텅 잘려나간 것처럼 허망하고 분하기까지 하다. 그 시대를 온당하게 산 사람들이면 누구나 나와 같은 심정이리라 싶다.

1960~80년대는 우리나라 역사 이래 처음으로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쳐 ‘새마을운동’의 기치 아래 민족의 저력이 집결 승화하면서 찬란한 새 역사를 만든 시기였다.

그런데도 이 책에는 이 중요한 시기의 역사를 “‘새마을운동 시작’이란 제목 아래, 농촌문제 개선을 목표로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도시까지 확산됐다”라고만 아주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새마을운동으로 시작한 조국 근대화 과정을 통째로 빼버린 것이다. 이렇게 재단한 엉터리 기록을 하다 보니 이 책 자체 기록에서도 모순이 들어나 있다. 70년대 이전과 이후의 우리 사회 각종 통계를 보면 마치 지금의 풍요가 그 중간에 하늘에 뚝 떨어진 듯하다.

우리가 지금 이 정도의 풍요를 누리는 것은 선대들과 지금의 어르신들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만들어진 역사의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가는 정권은 항상 그 역사를 인정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 나가려고 노력할 때 국가가 바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선대들이 피땀으로 쌓아 놓은 뿌리 깊은 역사를 자기들 마음대로 재단해 버리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행위는 또 다른 많은 시행착오를 불러오면서 국민을 혼란과 어려움에 처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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