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봄의 힐링은 가까운 곳에서
세상사는 이야기-봄의 힐링은 가까운 곳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28 17:5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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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수필가
김창동/수필가-봄의 힐링은 가까운 곳에서

봄 색(色)이 완연하다. 살갗에 느껴지는 햇살이 더 따뜻하고 싱그럽다. 한 줄기 산들산들 봄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힌다. 붉은 동백꽂과 노란 산수유꽃, 그윽한 향기가 가득한 하얀 매화…동네방네 산과들에 꽃들이 활개를 펼치고 있다. 여기저기서 화려하게 혹은 수줍게 꽃 폭죽이 터진다. 꽃멀미가 난다. 사람들의 걸음이 설레고 부풀어 있다. 춘서(春序)라고 해서 봄꽃도 피는 순서가 다르다. 대체로 동백,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순이다.

생기가 도는 봄이다. 매년 봄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지도 않고 죽었을 것 같았던 말라깽이 나무들에서나 삐죽한 풀 사이로 꽃대를 내밀고 활짝 웃음 짓는 꽃들을 피워낸다. 이런 화려한 꽃들 때문에 코로나19 로 외출과 모임 자제 등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몸과 마음을 모질게 닦달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경제가 아무리 어렵고 정치가 개판이라고 해도 국민들에게 참을 힘을 주며 잠시나마 마음에 여유를 갖게 한다.

봄이 오는 이 무렵,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릴 적 외갓집의 풍경은 밤이 되면 하늘에 있는 별들이 땅으로 떨어질 것처럼 가득했고, 따끈한 아랫목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등을 비벼댔던 곳…그런 내 머리를 인자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주시던 외할머니 모습…지금이야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그 풍경들에 대한 향수가 내 나이 또래나 약간 젊은 연령대 사람들이 귀농과 귀촌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휴식이란 것을 하고 싶다 생각될 때 나도 내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듯이, 모두 자신의 안식을 위해 익숙했던 곳을 찾아 평안을 느끼고 싶어 한다.

봄을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는 이곳은 가로수마저 붉게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이 산 저 산을 바라보면 거무튀튀했던 곳들이 우! 우! 우! 새싹이 언 땅을 솟아올라 푸릇푸릇 색을 바꾸고 있다. 산과 들뿐만이 아니다. 다들 뭔가 이제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분위기로 부푼 모습을 보이곤 한다. 내가 사는 이곳은 오랜 전통시장 부근이다. 한때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우시장이 있어 유명했던 곳이며, 시장 사이로 하천이 흐르고 관리가 잘되어 있어 팔뚝만한 잉어와 여러 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어 그 물고기를 사냥하기 위해 수달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 때도 있다. 그 수달을 보려고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 있곤 한다.

날만 풀리면 바지 걷어 올리고 동네 꼬마 치들과 물고기 잡으며 실컷 논 뒤 빨랫감을 잔뜩 내놓아 세탁기도 없던 시절 어머니는 냇가에서 얼음물에 손빨래의 수고를 마다하셨던 일, 좁은 골목(그땐 그렇게 커 보였던 그 곳)에서 얼굴도 모르지만 나이만 비슷하면 누구나 함께 뛰어놀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쯤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아쉽게 "내일 또 하자" 하고 헤어졌던 그 고향 동네…이런 모습을 어릴 적부터 보아왔기에 도시 생활이 더 고됐는지도 모른다.

시선을 잠시만 돌려도 꽃에 나무에 사계절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이곳이 너무도 익숙해서 인지, 이제는 회색 빌딩이 가득하고, 불빛으로 별도 보이지 않는 그곳이 너무도 답답해 보인다.

힐링이란 것이 비행기 타고 멀리 외국에 다녀오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깝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고, 사랑하고 고맙단 말 한마디 하기 쑥스러운 분들과 맛있는 식사 한 끼 하는 것, 일곱 살 꼬마로 돌아가 무릎도 한 번 베어보며 잠시나마 푸근함을 느끼는 게 어쩌면 이 봄날에 진짜 힐링이 아닐까. 요즘 세상에 정말 할 일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돈벌이는 물론이고 취미도 두어 개는 있어야 한다. 1년에 서너 번은 여행을 가야하고, 자동차도 5년쯤 되면 바꿔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문화생활을 해야 하며, 한 달에 두어 번은 외식을 하는 게 평범한 삶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가서 담장을 타고 올라오는 넝쿨도 볼 수 없고, 길가 돌 틈에 피어 있는 들꽃조차 잡초로만 보일 정도로 뛰어다닌다. 여유는 꼭 고향집에서만 즐길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보도블록 사이에 돋아나는 풀 한 가닥이 누구에게는 그저 죽지도 않는 잡초로 생각되겠지만,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그 풀 한 가닥은 척박한 이곳의 생명력이며, 살 수 없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인내이고 봄이 될 수 있다.

여유 있는 삶! 어딘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우선이라면 조금이나마 힐링이 되지 않을까. 봄,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 이 새봄의 춘 삼월에, 만개한 꽃처럼 행복이 화르르 사랑도 화르르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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