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지방
아침을 열며-지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04 13:0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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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지방

‘지방’이라는 주제는 낯설지 않다. 그것은 지금 ‘위기’ 내지 ‘소멸’이라는 스산한 단어와 짝을 이루고 있다. 나처럼 지방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겐 ‘스산한’ 정도가 아니라 ‘끔찍한’ 느낌으로 이 단어들이 다가온다. 이 도도한 흐름을 막아주던 강둑에는 이미 금이 가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이다. 가히 지방 붕괴의 시작이다. 어떻게든 막지 않으면 조만간 터져 이 위기와 소멸은 곧 현실이 된다. 그 붕괴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되었지만, 인구감소와 기후변화의 경우처럼 모두가 다 오불관언이었다. 모든 것이 초토화된 이후 폐허로 남은 지방을 머릿속에 그려본 적이 있는가.

우리 세대들(50년대생, 70년대 학번)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때만 해도 지방은 아직 펄펄 뛰는 남해의 고등어처럼 살아있었다. 각 지방에는 저마다 그곳을 지탱해주던 산업들이 있었다. 영남만 해도 울산의 자동차, 포항의 제철, 창원의 기계, 구미의 전자, 거제의 조선 등이 대표적이다. 지방의 교육도 살아있었다. 각 지방별로 최고 수준의 고등학교들(부산 경남 경북 광주일, 전주, 대전, 제물포고…등등)이 하나씩 있었고 그들은 서울의 명문고등학교(경기, 서울, 경복, 사대부, 용산, 경기여, 이화여고…등등)와 별반 수준 차가 없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각 지방을 대표하는 명문 국립대와 사립대가 하나씩은 다 있었고 그것들은 역시 서울의 명문대학들(소위 스카이대 등)과 큰 수준차가 없었다. 지방 사람들은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각자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지방에는 서울 수도권에는 없는, 지방에만 있는 장점들도 많았다. 자연, 역사와 전통, 인간미…그런 것들. 서울 친구들은 그런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달라졌다. 소위 서울 수도권이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나는 철학자이므로 구태여 그 사회학적-정치학적 분석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를 필두로 우리사회 전체가 그 방향을 조장 혹은 묵인해왔다는 것이다. 그 핵심은 가치의 집중 그리고 과도한 욕망과 경쟁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이 위기다. 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노무현 정부의 공로를 일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 그 성패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노력을 계속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방향에서 우리는 저 독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지방분권이 가장 잘된 선진국의 하나로 손꼽힌다. 헌법의 40% 이상이 지방자치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한다. 관련 연구는 인터넷만 조금 검색 해봐도 넘칠 정도로 많다. 적극적으로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 독일에서 2년을 살아봤지만, 베를린대학을 가기 위해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인생을 걸고 학원을 다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소위 명문 고등학교들이 서울 강남구처럼 특정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좀 과장하자면 독일은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이 다 명문대학이다. 심지어 인구도 몇 명 안 되는 지방의 프라이부르크대학이나 튀빙겐대학 같은 것도 특정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명문임을 자랑한다. 어떤 대가가 어느 대학에 초빙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의 명문이 정해진다. 예전에는 교수들의 대학 간 이동도 잦아 이동하는 교수를 따라 학기마다 게르만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 다양성 및 유동성이 독일의 국력으로 이어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것이 부럽기 그지없다. 국민들(학생들)의 행복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 스카이대학이 거의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우리의 기형적 구조와는 너무나 판이하다.

산업과 교육의 구조만 조금 뜯어고쳐도 지방의 부활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지방별로 고등학교와 대학의 명문을 키우고 지역의 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지역할당제’도 (역차별이라 할 만큼)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지역의 인재가 지역에서 평생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지방의 인구유출 방지는 물론 서울의 학생들도 지방으로 내려올 것이다. 수도권의 과밀화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정책이 이 방향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 관련 연구는 이미 넘쳐날 정도로 많다.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을 초극하려 한 데리다의 철학도 참고가 된다.) 그렇다면 관건은? 누구나 그 답을 알고 있다. 집권자와 집권당 그리고 정부의 의지다. 그리고 실행이다. 결국은 정치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지방이 지금 붕괴의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 배부른 자들에게는 저 절박한 지방의 SOS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확성기의 볼륨을 좀 더 높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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