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선/시조시인·작가-행복의 조건(2)

옛날 내 어린 시절은 열악한 의식주 주거 환경이 부실했고 교육여건까지도 갖추어져 있질 않아 초등학교에도 못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겨우 초등학교 마치고 나면 부모를 도와 농사일에 뛰어드는가 하면, 면 소재지 가게에 점원 그리고 서울로 부산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으니 평생을 궂은일만 하다 죽어야 했다.

요즘 한창 유행되고 있는 ‘갑을 관계’란 단어가 있다. 이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갑과 을은 정해져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갑이 되는 것이고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때도 어쩌다 아주 드물게 행복조건이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자수성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우한 환경을 이겨낸 인간승리자 말이다. 남의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공부해 검정고시로 대학까지 공부해, 배우고 싶었던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온갖 궂은일을 해, 모은 돈으로 땅을 한 필지 장만했더니 부동산 붐이 일어 대박을 터뜨려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룩한 사람도 있었다. 이는 요즘 유행하는 로또복권 1회 발행매수 800만 장중에 한 장이 당첨되는 확률하고 같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들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하고는 비교할 수 있겠는가? 평생을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 행복이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라고 할 수 있는 복이다. 그야말로 아버지 덕으로 그리고 할아버지 덕으로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질 않은가.

필자는 그 사람의 행복조건을 의식주와 주거 환경에 따라 정해진다고, 단언해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대체로 행복의 조건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제때 하지 못한 공부를 하며 물려받지 못한 재산을 모으고, 부(富)를 축적하는 동안에 좋은 환경에 태어났던 금수저들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황새와 뱁새가 달리기 경주를 벌이듯 흙수저들은 뱁새와 같아 황새를 따라가기 위해 가랑이를 찢어 봐야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면 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만 겪을 뿐이지 행복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본다.

황량한 들판에 온갖 가시나무 잡초들 속에서 모진 세파에 휩싸여 어렵게 피운 들꽃 송이가 기름진 땅에서 농부의 보살핌을 받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자라난, 탐스러운 꽃송이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빈약하게 꽃을 피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농부의 보살핌을 받은 꽃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질 좋은 영양분을 공급받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 꽃이 튼튼한 열매와 씨앗을 만드는 동안에 들꽃은 스스로 수분을 취하고 양분을 취하면서 모진 비바람과 들짐승에 밟히고 뜯기는 고난 속에서 겨우겨우 꽃을 피웠다. 하지만 그 행복은 잠시 잠깐일 뿐 빈약한 씨앗 하나를 남기고 생을 마감할 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겨우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력으로는 상급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보다, 훨씬 힘들고 일을 많이 해야 했다. 월 급여는 훨씬 적은 액수를 받으면서 말이다. 이처럼 필자가 태어나던 전후에 척박한 땅에 뿌려진 씨앗들은 인권을 유린당하고 인격을 무시당하고 살아야 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씨앗하고 그렇지 못한 씨앗의 인생길의 차이는 극과 극이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우리가 태어나 자라던 그때와는 천지개벽 된 세상이다. 우리나라 전 국토가 기름기 철철 흐르는 좋은 토양으로 변했다. 농부는 아무 곳에나 씨앗을 심더라도 물과 영양분만 제때 맞춰주면 무럭무럭 잘 자라는 행복의 조건이 잘 갖춰진 좋은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얼마지 않아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이루어지고 무상급식도 한다고 한다. 맘만 먹으면 누구나 대학도 갈 수 있는 세상이다. 지금 코로나가 극성이라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국민에게 나라에서 재정지원위로금을 수차례나 주고 있다. 행복조건이 참 잘 갖춰져 있는 좋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