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4월 몽환
진주성-4월 몽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06 16: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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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4월 몽환

산비둘기 울어서 길어진 해가 4월을 붙잡고 꽃잔치를 한다. 만화방초 어우러져 꽃향기 풀냄새가 오지랖을 스며들어 동면에 잠들었던 가슴을 깨운다. 윤사월이 아니라도 뻐꾹새가 울어 묻어 둔 씨앗이 혼을 부르고 연둣빛 새움이 초록의 꿈으로 가지마다 설렌다. 바람에 부대껴 방황하던 영혼을 다시 불러드리는 상념의 몸짓, 동토에 매몰되었던 이념의 날개가 탈피한 껍데기를 밟고 창공을 박차고 올라 4월의 깃발로 펄럭거린다.

웅성거림이 토하는 외침의 거룩함이 꽃으로 피어난다. 빛바랜 관념의 외투를 벗지 못하고 속앓이 했던 계절은 기러기 꼬리 끝에 이끌려 멀어져 갔다. 녹슬었던 나팔이 4월의 햇살에 반작거린다. 북채 쥔 손아귀에 식었던 피 다시 데워져 심장을 두드린다. 앞선 이들이 머뭇거리면 따르는 이들이 서러워진다. 어제가 아닌 내일로 나아가야 한다. 따르라고 외치지 말고 앞서 나간다고 소리쳐야 한다.

천둥이 광란하는 먹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한결같이 빛나고 있다. 태양을 걸머지면 빗속에서도 무지개가 보이고 어둠을 걸머지면 그림자도 사라진다. 서두르다가 잃어버린 꿈, 짓뭉개어진 이상, 무심결이 놓아버린 인륜의 끈, 눈물이 말라붙어 시린 가슴에 4월의 햇볕이 애가 탄다. 넘어졌기에 일어서는 것이다. 길은 길로서 이어지고 벼랑은 추락의 끝으로 끝이 난다. 권력의 억압에 저항해야 하고 사회적 불의에 분노해야 하며 의로운 정의에 공감해야 한다. 맺혀진 멍울이 4월의 꽃으로 피어난다.

태산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하는 소리 내지 않고 흐른다. 실익 앞에 굴복하는 양심은 비참하고 권력 앞에 무릎 꿇는 정의가 참담하다. 방관과 침묵은 암흑의 서곡이다. 공감마저 안으로 삭이면 신선은 구름을 타고 떠나고 성현은 등을 돌리고 외면한다. 신기루 속으로 휘말리는 오늘이 애달프다. 잡나무의 바람 소리는 계절마다 다르고 소나무의 바람 소리는 천년이 한결같다.

서울과 부산을 휘젓고 다니는 낮도깨비들의 목쉰 소리에 4월이 더욱 서글퍼서 노들강변 봄버들은 휘늘어졌고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이 외롭다. 길을 잃고 방황하지는 않아도 좋을 만큼 선현의 발자국에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다. 멀어져서 더 가까워지는 그리움의 4월이 애가 탄다. 북악산 청기와집 가마솥에는 아직도 설익은 밥물이 부글거리는데 석탄 백탄 다 타는 속내는 그래도 모르는지 하얀 연기는 사방으로 한가롭다. 삭정이를 물어 나르는 백악산 까치도 한낮이 버겁고 애끓는 뻐꾹새 소리에 흑싸리 열 끗 가지에 앉은 두견새의 4월이 마냥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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