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밉상
아침을 열며-밉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12 15:0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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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밉상

할머니들이 포대기에 싸인 아이를 보고 “고놈 참 밉상이네~”하고 앙증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고놈 참 못난이네~”, “고놈 참 돌멩이네~”, “개똥이”, “쇠똥이”…예전엔 어린 아이들에게 참 많은 별호 같은 이름들이 있었다. 예쁘고 야무지고 잘생긴 아이를 보고 반어적으로 붙인 이름들이다. 마마(천연두)나 호열자(콜레라)등의 질병에 대하여 대응하기 힘든 시절에 예쁘게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험하게 불렀다. 좋은 일에 나쁜 액운(好事多魔)이 끼어들기 쉽고, 예쁜 얼굴은 단명하다(佳人薄命)는 속설에 대한 염려이고, 좋은 일을 끝까지 쭉 좋은 일로만 계속하고, 예쁜 얼굴은 계속하여 예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염원에서 사실과 다른, 속마음으로 참되게 바라는 ‘바람’과는 다르게 거꾸로 말하는 말본새다.

하지만 TV를 보면서 심심찮게 들리는 소리들. “야! 다른데 틀어라, 꼴도 보기 싫네”, “주는 것 없이 밉단 말이야”, “꼬라지가 딱 밉상이야” 이때의 ‘밉상’은 진짜 ‘밉상’이다. 진짜 꼴 보기 싫고, 괜히 싫어지고, 마음이 멀리 떠나 버린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왜 사람들은 사람들을 까닭 없이 미워하고, 이유도 없이 보기 싫어하는가? 실리적인 사람들은 이해득실을 따져 득이 되면 좋아하고 실이 되면 싫어하는데 세상살이에는 꼭 이해득실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쾌하면 좋아하고 불쾌하면 싫어하는데 쾌락과 고통의 자극에 따라 사람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듣기 좋은 노래는 유쾌하기에 좋아하고 듣기 싫은 노래는 고통이기에 싫어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는 꼭 유쾌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불쾌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든 이유야 불구하고 사람들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에 늘 부대낀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의 까닭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줄기차게 진행 중이다. 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눈 깜짝할 사이보다 빠르게 결정한 내용을 사람의 생각하는 기능인 두뇌는 옹호하고 지지하는 보조 기능을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생각보다 느낌이, 사유보다 편견이, 판단보다는 선호도가 먼저 작용한다고 한다. 하여 우리가 올바르게 옳다고 사유하고 계산하고 판단하여 결정이라는 것도 사실은 느낌과 편견과 선호도의 끌개가 작용한 결과물이자 탓일 수 있다. 드러난 현상은 지성의 작용 이전에 감성의 결정일 수도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과학적 원리를 규명하기 위하여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줄 안다.

하여 ‘밉상’이란 이 말은 노래, 드라마, 영화, 상품, 광고, 인물평, 특히 정치인과 정당의 투표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 ‘밉상’에 쉽게 감염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서울 부산 보궐선거의 판도는 사전 여론 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이지만 집권여당의 ‘밉상 짓’은 선거를 해보나 마나일 정도로 심하였다. 뭔가 알 수 없는 싫음, 뭔가 꼴 보기 싫은 거부감, 뭔가 재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등의 분위기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팽배한 분위기였다. 누구누구의 얼굴만 나오면 TV채널을 돌린다든지 아예 TV를 꺼버리는 사람도 있다.

미운 털이 박히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하여도 밉게 보인다. 이게 아니다 싶은 인상이 박혀 있으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하여도 그 뒤에 무슨 음모가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각인(刻印)된다.
이러한 새털처럼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밉상 짓’, ‘진상 짓’이 소리 소문 없이 하나씩 둘씩 모여들어 여론을 이룬다.

밉상 짓은 완장을 차고 세상 앞에 거들먹거리며 드러날 때 어김없이 나타난다. 내가 힘이 세니 나를 따르라.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라. 나는 무슨 짓을 하여도 흠결이 없으니 못나고 약하고 돈 없고 머리 나쁜 너희들을 나의 현란한 말에 복종하고 잘난 나를 섬기라는 듯한 완장효과에 스스로 도취 될 때 어김없이 나타났다.

과거의 정권에서나 지금의 정권에서나 이 패턴의 룰은 이상하게도 데자뷔되며 마치 하나의 법칙처럼 느껴진다. 기고만장(氣高萬丈) 오만불손(傲慢不遜) 무능위선(無能僞善)의 완장(腕章)은 어김없이 피식 웃는 ‘밉상’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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