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감사하자, 살아있다는 감동을
세상사는 이야기-감사하자, 살아있다는 감동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15 14:0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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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수필가
김창동/수필가-감사하자, 살아있다는 감동을

이른 새벽 창가에 서니 전날 내린 봄비로 온통 생명의 밭! 새순이 불뚝불뚝 솟아오른다. 멀리서 새벽을 여는 소리가 너무 아련하다. 여명이 밝아 오는 꼭 같은 시간이면 들리는 오토바이소리,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는 발소리, 삶의 연속, 새로운 하루, 살아 있음이 감사하다. 살며시 거실을 지나 작은 방의 불을 켠다. 방안 가득, 환한 빛이 넘쳐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마음에 든다. 양치질하고 물 한잔을 마신다. 폐부에 차가운 냉기가 스며든다. 세포들이 살아난다. 현관을 지나 밖으로 나가면 신선한 공기가 가슴으로 파고들어 온다. 걸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 교회의 기도실에 오르면 그분의 따스한 손길이 나를 반긴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참으로 귀한 사람들이다. 아침 햇살이 밝아오면 기도실 문을 나선다. 성도들의 옅은 미소와 환한 웃음으로 정겨운 인사를 나눈다. 삶이 감사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메아리가 떠난다. 그리고 메아리가 사라진 산은 더욱더 황폐해진다. 메아리는 반응이고 그 반응은 다름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심과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관심과 배려는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이것들은 크게 부지런 하지 않아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남들에게 베풀 수 있다. 도를 넘는 지나친 간섭은 오히려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무시나 무관심은 사람을 멀어지게 하고 종국에는 떠나게 한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구절이 있다. 별것 아니지만 본인에게 터럭만큼 이라도 도움이 되거나 배려를 받은 구석이 있다면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소박한 교훈이다. 물론 성경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는 말도 있다. 두 말이 서로 모순되고 상반되는 말이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 둘을 합친 이야기가 바로 ‘받은 고마움은 절대 잊지 말고 베푼 일은 곧바로 잊어라’ 이다.

이승에서 한평생 살다가 저승으로 가는 게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 숙명을 거역하기 힘들다면 하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할 때 평화롭게 웃으며 갈 수 있도록 살아있는 동안 베풂과 배려에 집중하자. 배려와 베풂을 꼭 물질적인 것으로만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된다. 주위의 고마운 분들에게 ‘내가 시간이 없어서’, ‘너무 바쁘다 보니’, ‘늘 생각은 하는데’, ‘진심은 그게 아닌데’ 라고 자기합리화와 변명을 하기 보다는 단 1분만, 아니 30초만 할애해도 만사가 잘되고 무난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지 않고 구차한 변명에 급급한 경우가 허다하다. 차라리 침묵이 나을 법한데...

사람 사는 세상의 기본적인 윤리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부유하되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인생을 한껏 살다 간다는 것은 장관의 감투나 대부호가 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만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기쁠 때도 있지만 고독하게 우는 날도 있고, 성공의 희열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절망하는 날도 반드시 온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은 생명이 살아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살아 있는 동안 감사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 내게 힘이 되어주는 가족,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들, 나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회사,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지인들, 오늘 점심식사를 만들어준 요리사, 마실 물과 숨 쉴 수 있는 맑은 공기, 그리고 하느님이 내려주시는 은총과 부처님의 가피, 감사할 줄 아는 나 자신...아마 종일 써내려가도 끝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내 주위는 감사할 일로 가득하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잊고 살았을 뿐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자신을 구할 뿐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알고 지내는 주위 사람들과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하여 세상과 창조주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또 그런 대로 감사할 일이다. 궂은일에도 감사할 수 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멀쩡할 수 있었음에, 더 큰 흉한 일을 당하지 않았음에 감사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생로병사 자체가 감사할 일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감사일기’ 를 쓴다고 하는데, 시도해 봄직하다. 매일 감사해야 할 일을 적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을 성찰하는 기회도 되고, 당연하다고 여겼거나 하찮게 생각했던 것들과 자신의 삶이 사실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것인지를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고 했던가. 내가 가진 것, 그리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부르시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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