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꽃이라서 이리도 고운가
세상사는 이야기-꽃이라서 이리도 고운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18 14:41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숙자/시인
백숙자/시인-꽃이라서 이리도 고운가

어느 화가가 겨우내 밤잠을 설쳐가며 심혈을 기울여 그려 놓은 수채화, 큰 붓끝의 터치다. 오로라로 산란하는 빛을 형형색색 아름다운 물감으로 반죽하여 우리의 세상에 찬란하게 풀어 놓은 것인가.

산에도 강가에도 밭두렁에도 도로에도 옆집 담장을 넘는 싱그러운 나무줄기도 내 집 꽃밭에도 차례로 피어 순한 파도같이 살랑 걸린다. 어린 바람도 숨바꼭질하는 듯 꽃 숲을 드나든다. 참새도 까치도 이름 모를 고운 새도 석류 가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른다.

옛 시인들은 그래서 터질 듯 황홀한 이 봄을 청춘이라고 이름 짓고 시와 노래로 예찬하였을까?
꽃 피는 봄날은 먼 먼 곳에서 향기처럼 나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 그래서 더욱더 반갑다.

내 속내를 다 드러내고 수다를 떨어도 흉보지 않고 내 말을 다 들어 주는 참 좋은 벗. 반갑고 고맙고 아름다운 봄 손님, 이들의 모습이 나를 한동안 우쭐거리게 해 오래도록 마당을 서성인다.

철없던 유년이 아니라도 이토록 무작정 나를 사로잡을 수 있는가! 무지갯빛으로 내리는 햇살도 마냥 신기루다. 살아있음이 정녕 이토록 기이로 운 행운일 줄이야! 눈뜨는 아침이, 따스한 한낮이 무사한 저녁이 기쁨이요 감사인 것을, 또 그대들 덕분인 것을 어찌 말로 다 하랴!

나목의 표피를 뚫고 배시시 눈뜨는 매화와 우윳빛 목련으로 환희의 종을 울리고 시작한 개화가 남강 둔치와 나지막한 망경산 능선에 오일장 튀밥 통 터지듯이 마구 화포를 쏘고 있다.

뒤따라 뛰어오는 어린 양의 웃음 같이 그리고 별빛 같은 아이의 눈망울에 어린 꿈 같이 웃는 얼굴들, 개나리 진달래, 나비처럼 화사한 벚꽃의 만개가 화룡점정이더니. 알을 품는 어미같이 오랫동안 인내하던 모란이 자줏빛 꽃 자락을 주저 없이 펼친다.

일 년 만의 화려한 여왕의 귀환, 부귀의 으뜸이다. 손바닥만 한 비단 자락을 흔들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그것이 스스로 품격을 표현하는 존재감 아닐까. 베틀에서 손수 바디를 당겨 짜놓은 여왕의 위 저고리같이 곱다, 노란 꽃술 자줏빛에 맺힌 눈물 같은 아련한 저 속살. 아름답다는 말도 무색하리만큼 경이로운 빛, 자연의 선물!

이 꽃이 지고 나면 또 다른 꽃이 피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듯이, 여린 연두가 녹색으로 바뀌듯이,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진다’라고 하였다. 하얀 마스크가 입술 색을 대신 표현하는 것도 이제 아주 자연스러운 감각적인 입술의 포인트가 되었다.

지금 우리의 이 긴장되고 우울한 날들은 그동안 최선을 다해 달려온 그대, 꽃님들을 위한 휴식의 시간이라 믿자.

건강한 내일을 위해 한 박자 느리게 내딛는 발걸음이라면 마음이 훨씬 가볍고 여유롭지 않을까,
행복한 마음으로 꽃들을 바라보며 이들이 남겨줄 치유의 선물을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