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자식들 교과서에서 얻은 지혜
아침을 열며-자식들 교과서에서 얻은 지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5.26 15: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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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행정처장
김종광/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행정처장-자식들 교과서에서 얻은 지혜

우리 집 두 아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가끔 집에서 아들 공부를 봐주다 보면, 30년 전 내 공부를 봐주시던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난다. 두 분 모두 학창시절 우등생이셨고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덕분에 나는 그 당시 부모님 과외 찬스를 누린 운 좋은 학생이었다.

80년대 내가 공부하던 교과서는 부모님이 공부한 50-60년대 교과서와 하늘과 땅차이었다. 종이는 희고, 사진은 천연색이며, 활자도 깔끔하다. 사회과 부도에 정교한 지도와 지역별 통계는 어른들에게도 흥미로운 정보였다. 과학 교과서에 “유전공학”과 “8비트, 16비트 컴퓨터” 등의 내용은 당시 첨단 지식이었고, 부모님 세대에는 충격이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두 아들의 교과서를 보면서, 나 또한 부모님께서 느끼셨을 법한 충격을 받고 있다.

예컨대 큰 아들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나온다. 절대 불변인줄 알았던 시간과 공간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고, 원자만큼 작은 세계에 삶과 죽음이 중첩된 고양이가 있다고 한다. SF 판타지나 교수·학자의 영역인 줄 알았던 첨단 과학이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갖춰야할 기본 소양이 된 것이다. 어설프게 만든 SF영화는 중고등학생들의 냉혹한 팩트 체크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작은 아들 중학교 역사 교과서도 만만치 않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역사 교과서’에 통합시켰다. 서로를 관련시켜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유럽에서 ‘민주화’, ‘인권’과 같은 개념이 태어나고 정착된 과정과,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민주화 과정이 연결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우리만의 특수한 역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큰 흐름에서 파악된다.

나의 학창시절 ‘국사’, ‘동양사’, ‘서양사’는 별개의 고립된 역사였고, 한참을 그 인식의 틀에 갇혀 살았다. 나이 마흔 즈음 불던 인문학 열풍에 남들 따라 책을 읽기시작하면서, 그제야 인식의 틀이 깨지기 시작했다. 역사를 비롯해, 시대별 거장들의 생각과 업적, 문화와 예술의 변화 등에 관심이 생겼다. 어릴 적 SF영화를 좋아했기에 과학 서적에도 도전했다. 얼핏 이 세상의 역사, 사상, 과학, 예술, 인물들이 이루는 얼개가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들놈 교과서 수준이었던 것이다.

세대가 지나면서 교육의 수준이 더 높아짐을 실감한다. 학교 교육 뿐만 아니다. 유튜브, 인터넷 강의, SNS에서 최고수준의 지식을 훨씬 더 쉽게, 더 재밌게,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효율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콘텐츠 전문성의 깊이는 메이저 방송사 수준을 뛰어넘는다. 이런 세상에서 배우고 익힌 지금의 젊은이들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의 인재들이다.

그런대 이런 인재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최악의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정의와 공정의 잣대도 더 엄격하다. 지식과 가치관에서 젊은이와 기성세대간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 같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르쳐야하는 선생님들의 고충을 생각해보라. 기성세대들이 그들의 아성을 지키려면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배움과 익힘에 소홀하다 자칫 젊은이들 발목 잡는 뒷방 늙은이가 될지도 모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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