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황강과 함께 펼쳐진 도도한 자태
푸른 황강과 함께 펼쳐진 도도한 자태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1.07.07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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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 (34)악견산·의룡산

▲ 악견산의 멋진자태를 뒤로하고 산행을 재촉한다

아무리 산세가 아름답다고 해도 관망자가 산에 들어 그 곳에 묻혀 버리면 산속의 나무와 바위의 아름다움을 볼지언정 산세가 아름다움을 보기는 힘들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 는 것은 지금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더 크고 창대한 꿈은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굳이 사자성어를 불러들인다면 ‘작은 일로 인해 큰일을 그르친다 ’는 뜻의 교각살우(矯角殺牛)라면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다.
합천 악견산(嶽堅山, 634m)이 이런 느낌을 가진 묘한 산이다.
즉 산속에 들어서 나무나 바위 산성만을 본 뒤 “아, 경치 좋다”하고 돌아서서 하산 길을 재촉해 버린다면 악견산의 진정한 모습을 놓친 것이다.
예컨대 악견산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악견 산세의 아름다움을 관망하듯 다시한번 봐야한다. 이 산세를 온전하게 볼 수 있는 산은 인근에 있는 의룡산이다.
이런 이유로 취재팀과 악우들은 악견산과 의룡산 연계산행을 실시했다.
합천 대병면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인근 금성산 허굴산과 더불어 합천 삼산이라고 부르며 서북으로는 군립공원 황매산을 두고 있다. 조망은 합천호의 수려한 모습이 좋다. 수위가 내려가 황톳빛을 드러낸 모습이지만 나름의 운치는 발견할 수 있다.
접근하기 쉽게 설명하면 합천호 2km 못 미친 지점 용문정에서 강 건너 장막처럼 막아서는 바위와 육산이 악견, 의룡산이다.
이 산의 해발 491m지점에 있는 악견산성은 조선시대 임란을 계기로 권양 박사겸 박엽 등 합천의 의병들이 주민과 함께 축성했고 이들은 왜적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다. 이 전쟁에는 왜적을 물리치기위해 의병들이 짜낸 기발한 아이디어가 전해진다.

숲을 피해 묘하게 이어진 암릉길

▲산행코스는 합천호 200m못미친 지점의 주차장에서 ‘동광가든’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200m정도 가면 왼쪽 산으로 붙는 길이 열린다. 조망바위→산성→ 철계단→갈림길→악견산 →안부→의룡산,하산→황강 도강→용문정. 대략 10km에 휴식시간 포함 5시간 10분이 걸렸다.
▲시작부터 된비알이다. 숲은 토종소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20여분 만에 위태로운 난간의 조망바위를 만난다. 합천호 쪽으로 열려 있고 왼쪽으로는 금성산이 우뚝하다. 합천지역은 강수량이 절대적으로 적어 합천호의 만수위를 기록하기가 쉽지 않다. 댐 건립 후 지금까지 방류한 적이 별로 없는 댐이다.
최민식 주연의 영화 ‘올드 보이’의 무대가 된 곳이다. 고교시절 이우진(유지태분)과 그의 누나 (윤진서분)자매간 정분이 오갔던 은밀한 장면을 오대수(최민식분)가 목격한다. 떠벌리기 좋아하는 오대수는 이런 사실을 또 다른 친구에게 무심코 내뱉게 되고 이것이 확대되면서 두 사람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돼 이우진의 누나가 합천호 댐에서 몸을 던진다.
40여분 만에 산성을 만날수 있다. 많이 허물어져 성을 가로지르는 등산로가 있는가 하면 성을 우회하는 길도 있다

     
 

커다란 바위들이 엉켜있는 암굴


▲이 성터는 임란 때 왜적과 대항한 전적지이다. 서두에 언급한대로 기발한 전설이 하나 있다. 전쟁이 치열해지자 왜적은 장기전을 펼쳤다. 이에 맞선 의병들은 맞은편 금성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악견산과 줄을 연결해 전립(삿갓모자)에 붉은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공중에 띄웠다. 이 모습은 마치 신상이 하늘에서 내려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를 본 왜적이 귀신에 홀린 듯 혼란을 일으켰다. 이를 본 왜적들은 청강홍의 장군이 왜적을 전멸시킬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패주했다. 경남기념물 제218호이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 1439년에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사결과 1592년무렵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존상태가 좋은 곳은 석축의 높이가 3m 정도 된다. 조선시대의 산성 축조기법이 잘 나타나 있으며 정상부근에는 지휘소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남아 있다.
성터를 지나고 다른 등산로에서 올라오는 갈림길, 이어 경사가 큰 철 계단이 막아선다.
지난봄의 화마는 이곳도 빗겨가질 못했다. 곳곳에 토종소나무가 죽은 채 방치돼 을씨년스럽다. 당국에서는 하루 빨리 벌목을 하던지 정리 작업이 필요해 보였다.
1시간을 조금 넘길 즈음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이 나온다. 건물터로 추정되는 넓은 마당의 안부와 곧바로 집채만한 크기의 울퉁불퉁하고 불규칙적인 바위가 서로 엉켜 있다. 악견 정상이다.
바위 끝에 세웠던 정상석이 아래에 떨어져 비딱하게 드러누워 있다. 사방에 키큰 나무들로 인해 조망이 별로 없는 것이 아쉬움.
정상의 바위군은 제법 길게 이어지는데 서로 뒤엉켜 터널을 이루는 비경이 있고, 몸이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동굴바위가 있는가하면 모롱이도 있고 기어올라야할 곳도 있다.

 정상을 가리키는 표지판


의룡산으로 길을 재촉한다. 여름꽃 산수국을 비롯해 이름 모를 꽃이 드문드문 피었다. 산수국은 참 특이한 꽃이다. 보랏빛을 띠는 한 꽃망울에 형태가 완전히 다른 2∼3가지의 꽃이 피는데 소박하고 청초한 우리 특유의 야생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낸다.
정상에서 내려와 300m지점에서 의룡산으로 가는 길과 평학동 밤밭 방향 하산길이 있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가 얄궂다. 의룡산까지 300m로 표시돼 있는 것은 3km의 잘못이다. 하루 빨리 고쳐야할 대목이다.
“300m라고 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정상이 안보였어요.”의룡산에서 만난 부부산행객은 악견산 산행 후 ‘의룡산 300m’라는 이정표를 보고 가깝다고 판단해 따라 나섰다가 ‘낭패를 봤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합천군에서 하루 빨리 고쳐야 할 대목이다. 의룡산에 가기위해서는 주민들의 밤밭이 있는 곳까지 고도를 한껏 낮춘다. 숲이 들어차고 길이 희미해 독도에 주의해야한다. 또한 지천에 널려 있는 가시나무가 얼굴과 팔, 다리를 할퀸다. 아무리 더워도 산행에 반바지를 입어서는 곤란하다는 경험을 갖게 하는 곳이다. 숲 사이로 희끗희끗 멀리 보이는 산이 의룡산임을 알 수 있다. 밤밭을 벗어나면 임도, 100m정도 걸으면 작은 재가 나오고 다시 산 능선 등산길로 접어든다.
30여분 정도 오름길을 재촉하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드디어 악견산의 온전한 모습 즉 산세가 뚜렷이 보인다. 이를테면 숲을 벗어나 악견산세의 장쾌함을 가장 온전하게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산에 들었을 때 볼 수 없었던 악견산의 옹골찬 위용이 보는이를 압도한다.
거창의 미녀봉이 여인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면 이 산은 꼭 여인의 젖가슴을 닮았다. 왼쪽에 뾰족한 산이 금성산이다(메인사진). 또 한고비를 넘어서면 이제는 가까워지고 있는 쪽에 의룡산이 다가선다. 눈으로 봐서 멀게 느껴져도 20분이면 도착한다.
의룡산 정상도 암괴로 구성돼 있다. 하산길이 위험한 곳이 많다. 로프를 잡고 수직암벽을 타고 내려와야 한다.
산 아래 불현듯 합천댐의 황강줄기가 눈앞에 다가서고 강가에 합천영화테마파크가 작은 도시를 연상케 한다. 하산하면서 바라보는 악견산과 의룡산의 산줄기가 더욱더 아름답게 빛난다. 강으로 흘러드는 작고 예쁜 계곡을 만나면 악견·의룡산 산행이 마무리된다. 체면불구하고 계곡에 머리를 박고 ‘벌컥 벌컥’ 들이키는 산물이 온몸을 짜릿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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