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이재명과 추미애 선조들의 인연
진주성-이재명과 추미애 선조들의 인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7.07 14:3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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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이재명과 추미애 선조들의 인연

경기도지사 이재명(李在明)의 선조는 안동의 권문세가 경주이씨 국당파 이천 선생이다.

경주이씨 검교정승 문충공 이제현(李齊賢) 선생이 지은 <익재난고(益齋亂藁)>는 2016년도에 보물 1892호로 지정되었고 <역옹패설(櫟翁稗說)>은 2016년에 보물 1893호로 지정되었다.

<익재난고>와 <역옹패설>등에 보면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편저자 노당(露堂:魯堂)과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 기재하고 있다.

노당 추적 선생이 과거에 급제하여 첫 번 관직이 안동서기(안동 장서기)가 되었고 임기가 다 되어 개성(개경)으로 귀가해 저자 이제현의 작은 아버지 이세기를 만났다.

이세기에게 농담하기를 “이 소년의 수염이 갑자기 자랐군”라고 말했다. 작은 아버지(季父)가 그 말을 듣자마자 대답하기를 “추사록(8품)의 허리와 배가 공연히 커졌습니다”라고 하니 그 때 사람들이 잘한 대답이라고 말했다.

노당 추적은 직사관(直史館)이 되었는데 노당 추적 선생은 성격이 활달하고 거리낌이 없었고 뒤에 늙어도 식사를 잘하였다라고 기재되었다.

추 선생은 항상 말하기를 “손님을 접대할 때에는 다만 하얀 쌀밥을 부드럽게 짓고 생선을 잘라 국을 끊여 대접하면 된다”, “비록 백금을 허비하여 팔진미를 차려도 입을 한번 지나가면 마찬가지야”라고 기재되었다.

노당 추적 선생이 용주(용만)부사가 되었을 때 개성 왕륜사 인조 스님이 용만부에 들어와 관리에게 추시랑(차관급)에 대하여 물어보니 관리가 대답하기를 “우리 추 사또는 항상 붓과 벼루를 벗 삼으니 아전들이 어찌하지 못합니다. 훌륭한 선비님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제현의 부친은 노당 추적의 부친 추영수의 제자이며 막내 삼촌 이세기(李世基)는 노당의 친구이며 노당은 국학(성균관)교수로 재직했다.

이제현 선생이 <역옹패설>등에서 수백여 명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오직 추적 한 분에 대하여 ‘선생‘이라고 기재한 것은 스스로 제자임을 인정한 것이다. 국학은 왕자들과 3품 이상 아들, 손자들이 입학하기 때문이다.

파조 이천 선생이 호를 노당(露堂)과 비슷한 가을꽃의 상징인 국화 국당(菊堂)이라 한 것도 서로 깊은 인연 때문이다.

추적 선생은 민부상서(장관급) 예문관대제학을 역임한 명신(名臣)이라고 <고려사>, <고려사 절요>, <조선역대명신록>등 800여 권에 기재되었다.

경주 이 씨 파조와 추적 선조가 755년간 긴 인연을 가졌음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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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2023-11-06 23:35:10
문충공 이제현은 검교정승이 아니라 고려시대 수상격인 우정승, 문하시중을 역임했습니다. 또한 국당공 이천의 가계 서술이 불명확하여 부연하자면, 문하평리 증 상서좌복야 열헌공 이핵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이 성암공 이인정, 차남이 검교첨의정승 임해군 이진, 3남이 검교정승 이세기입니다. 문충공 이제현은 이진의 차남이고, 첨의참리 국당공 이천은 이세기의 장남입니다. 참고로 이세기의 3남 상서공 이과(국당공 이천의 동생)의 8대손이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오성부원군 이항복('오성과 한음'의 오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