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거동 인라인 스케이트장 건립 4억원 예산확보
평거동 인라인 스케이트장 건립 4억원 예산확보
  • 정리 김봉철 · 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2.11.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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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진주시의원(신안, 평거)
▲ 배철현 시의원이 행정사무감사에서 집행부를 상대로 시정에 관한 질의를 하고 있다.


배철현 시의원(신안, 평거)는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공부하는 자세가 시의원으로서 모범을 보인다는 게 동료 시의원들의 평가이다. 배 의원은 최구식 전의원의 공천으로 시의회에 진출했다. 새누리당 진주갑 청년위원회를 창설해 1,2대 위원장을 맡았다. 이런 인연으로 최구식 의원에 의해 6대 지방선거에서 공천이 돼 당선됐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무소속 구자경 의원과 자신이 당선됐다. 배의원은 시의원이 평생할 직업이라고 말했다. 시의원 역시 전문직으로서 오래해야 시민들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시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평거동 인라인 스케이트장 예산을 확보한 점, 평거, 신안지역의 오랜 숙원이던 도시가스 문제와 도시도로 계획부분등을 위해 노력한 점등이 시의원으로서 잘한 일로 꼽았다. 시의원들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집행부를 잘 견제했으면 좋겠다는 배의원은 이창희 시장에 대해서는 비교적 후한 평가를 했다. 그러나 이창희 시장이 일은 잘하지만 부하 공무원, 시민과의 소통문제는 아쉬운 점이 많다는 지적도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배철현의원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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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시의원을 하려고 했었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학교 다닐 때 학생회 간부도 하고 우리대학 다닐 때는 민주화 바람이 있었는데 그때 전대협 출범식에도 참여하고 해서 정치에 관심은 있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의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언제인가.
△우연히 그런 기회가 왔다. 최구식 전의원측이 청년회 활동을 해 달라고 해서 한나라당 진주갑 청년위원회를 제가 만들었다. 제가 만들어서 1~2대 위원장을 제가 맡게 됐다. 그런데 최구식 전 의원이 18대 총선에서 낙천을 하게 됐다. 낙천을 하게 되니까 제 지역구인 진주시 신안평거동 지역의 시의원들이 모두 최구식 전의원을 떠나게 됐다. 그런데 최의원이 무소속으로 당선이 되고 당시 한나라당에 복당이 되자 6대 지방선거에서 제가 공천을 받게 된 것이다. 만약 최 전 의원이 낙천됐을 때 당시의 시의원들이 그대로 최전의원 편에 있었다면 최전의원의 성품상 그분들이 그대로 공천을 받았을 것이다. 저로서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6대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자는 누구인가.
△저하고 정경천 전의원이다.
-당선은 누가 되었나.
△저하고 구자경 의원이 당선됐다. 구자경의원은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구자경 의원은 도의원 출마하기 위해 사퇴를 해서 시의원 선거가 다시 치러졌다. 보궐선거에서 서은애 의원이 무소속으로 당선돼 저하고 서은애 의원이 신안, 평거지역의 시의원이다.
-시의원 해보니까 어떤가. 당초 생각했던 것과 같은가.
△시의원이라는 자리가 진주시에 중대한 결정들을 하는 자리이다. 시의원들이 결정한 사항들이 시민과 직접적인 연관이 많다. 조례나 규정, 예산등을 결정할 때 많은 공부를 하게 되는데 시민들을 대변하는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2년 남짓 시의원을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
△제 공약 사업이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 지원센터를 건립하는 일이다. 현재 진주시는 예산 25억원을 투융자 심사를 받아놓은 상태이다. 물론 친환경 급식센터를 만드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경남에서는 거창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시행착오로 인해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진주시도 아직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년 동안 시의원 한 성과는 무엇인가.
△평거동 강변길이 확장이 되면서 인라인 스케이트장이 없어져 버렸다. 지역민들이 애용하던 장소인데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바로 옆 평거동 둔치에 4억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만들기로 했다. 예산이 확보되었으니까 조만간 설치될 것이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것은 어떤 것들인가.
△저는 초선으로 2년남짓 시의원을 하고 있다. 신안, 평거지역에는 수십년 된 해묵은 현안들이 있다. 도시가스문제도 그렇고 도시계획 도로문제도 그렇다. 이런 수십년 묵은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일정정도 성과가 있었다.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시의원으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사실 저같은 경우는 행정을 접한 것이 시의원 되고 부터이다. 시원들이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제안을 할 수가 있다. 집행부의 관련 공무원들은 20~30년을 그 분야에서 종사해 온 분들이다. 이분들을 대상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다.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하는 데 지역구 활동도 해야 하고 행사도 참석해야 하고 의회활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시의원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제가 지금 조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 진주시 공공디자인 조례인데 진주시의 도시 디자인과 관련된 것이다.
-내용이 어떤 것인가.
△진주는 혁신도시가 들어서고 기존의 관광도시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도시 미관을 계획성 있게 하지 못한 점이 많다. 무분별한 개발로 도시 미관이 파괴된 것이 많다. 그래서 공공조례를 만들어 도시를 체계적이고 앞날을 내다보는 도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 조례이다. 제 전공이 디자인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도시가 전체적인 미관을 고려하면서 개발해야 한다.
-시의원 해보니 체질에 잘 맞나.
△저는 잘 맞는 편이라 생각한다. 6대 시의회 20명의 의원 중에서 5분자유발언과 시정질문을 가장 많이 할 정도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또 지역구민들을 만나고 지역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이 재미있다.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지만 시의원들이 제대로 하면 시민들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다.
-평생 할 것인가.
△기회가 된다면 현재로서는 한번 더 해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시의원이 되고 싶다.
-최근 시의회와 진주시 집행부가 갈등이 있다. 어떻게 보나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는 갈등이라고 보고 있는 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갈등이라기 보다는 집행부와 시의원들 각자의 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어떤게 시민을 위하는 길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고 그 다양한 견해들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창희 시장과 집행부는 잘하나.
△제가 볼때 이창희 시장은 다방면의 인맥을 활용해서 진주시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고 잘하고 계신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상하수도 요금도 현실화하는 등의 노력과 예산절감으로 900역원의 부채도 갚았다. 다만 저의 관점에서 볼때 아쉬운 점은 공무원들과의 소통, 시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한 게 아닌가 그런생각이 든다.
-시의원 공천제도가 정당들의 대선 공약에 의해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공천을 받아서 시의원이 되기는 했다. 그래도 시의원들에 대한 정당공천제도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특히 시의원이 되어서 의정생활을 해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의 87%가 기초의원,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도 폐지를 찬성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인가.
△우리 진주시도 그랬지만 지금 우리나라 기초의회 중 70%이상이 의회 의장단 구성에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것이 대부분 정당공천제도와 연관이 있다. 지방의회가 중앙정치에 예속이 되다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다. 괜히 싸우지 않아도 될 일을 중앙정치의 바람을 타 지방의회에서도 싸우게 된다. 기초의회는 시민이 우선돼야 하는 데 어떤 경우에는 시민보다는 중앙정치의 눈치를 더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점 때문에 정당공천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시의원을 해 보면서 아쉬운 부분은 무엇인가.
△진주시 의회 내에서 여러 가지 후반기 원구성에 있어서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부분들이 갈등을 빚는 게 있었다. 이런 점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좀 더 소통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그런 면에서 더 노력하려고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이력이 어떻게 되나.
△하동 청암 출신이다. 청암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는 하동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학은 울산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경남과학기술대학에서 창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원래 미술을 전공하려고 했었나.
△그랬다. 원래는 동양화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취직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디자인으로 바꿨다.
-대학 졸업 후에는 무엇을 했나.
△서울에 있는 기업에서 디자인실에 근무했다. 한 3년 근무했다.
-그런데 진주에는 왜 오게 됐나.
△집안에 형님이 계신데 형님은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다. 그런데 아들 중 한명이 부모님을 가까이에서 모셔야 하지 않나,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형님은 진주에 올 처지가 못돼, 제가 내려오게 됐다.
-처음 내려와서 무슨 일을 했나.
△지금은 농협인데 당시는 경남낙농영농조합이라고 불렸다. 거기에 4급 계장으로 스카웃 돼 일을 했다.
-계속 그 일을 했나.
△아무래도 직장보다는 자신의 일을 하는게 좋겠다 싶어 1997년 오와이 디자인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회사는 잘 됐나.
△그리 어렵지 않게 잘 됐다. 일년에 버는 게 직장 다니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금도 이 회사는 운영을 하고 있나.
△지금은 시의원을 하고 있다보니 회사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아무래도 초선이다 보니까 조례, 규칙등 공부할 게 많다. 시에대한 집중을 해야하기 때문에 시의원과 사업을 병행하기가 어렵다. 시민들은 시의원 하는 게 무엇이 어렵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 해보면 그렇지 않다. 공부할 게 많다. 전담을 해도 쉽지 않은 일이 시의원이다.
▲ 배철현 시의원이 동료의원, 시의회 직원들과 10월 축제를 앞두고 시내일원에서 승용차 이용하지 않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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