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나의 인생, 정책 통해 복지 증진시키겠다
봉사는 나의 인생, 정책 통해 복지 증진시키겠다
  • 정리 김봉철 · 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2.11.1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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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순 진주시의원

▲ 강우순 진주시의원은 “자신은 평생 봉사활동을 해 왔고 그 결과 진주시 시의원이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서게 됐다”며 “시의원으로서 단순한 봉사활동 보다는 정책을 통해 복지를 증진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강우순 진주시의원은 소신과 강단이 있다는 평을 듣는다. 여성이지만 남성 의원 못지 않는 소신으로 초선임에도 비교적 활발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주변의 평가이다.
봉사활동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강 의원은 봉사활동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정치에까지 진출하게 됐다. 그래서 그는 봉사활동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정치를 하는 이유도 봉사활동을 보다 구체화 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봉사활동은 그녀 자신의 인생이다. 시의원이 돼서 성지동 경로당을 신축할 때 그는 인생 최고의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2억5천만원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역구만 챙길수 없는 입장에서 이 돈을 마련하느라 경남도와 시를 상대로 일을 하느라 어려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통해 2억5천만원의 예산을 마련해 경로당 개소식을 할 때 시의원으로서 보람을 느끼게 되었던 것. 이외에도 그녀는 여러개의 경로당을 리모델링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정책을 통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시의원으로서 매력이라는 그녀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시의원에 계속 도전해 복지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최구식 전 의원을 최 의원이 국회에 진출하기 전에 만나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 강우순 시의원이 어르신 급식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르신을 격려하고 있다. 강 의원은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 일을 많이 했다.

다음은 강우순의원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력이 어떻게 되나
△1951년 진주시 망경동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선명여상을 나왔다.
-원래 정치에 뜻이 있었나.
△전혀 아니다. 원래 직장생활도 하지 않는 전업주부였다.
-그런데 어떻게 시의원을 하게 됐나.
△참 그게 우연인데 설명하자면 좀 길다. 그래서 인생에는 운명 같은 게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운명인가.
△제가 38살 때 많이 아팠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해보라고 누가 권하더라. 그래서 봉사활동 자체도 좋지만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해 보았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건강이 좋아졌다. 봉사활동이 마음뿐 아니라 육체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저는 체험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
△그렇다. 지금은 건강진단을 해보면 모든 게 정상으로 나온다. 그런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봉사활동을 한 처음에는 하루 봉사 나가면 1주일을 몸져 누워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제 남편이 늘 아내 건강이 어떻냐고 인사 받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봉사활동이 거듭되면서 거짓말처럼 몸이 건강해졌다. 봉사활동으로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봉사활동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 것인가.
△그렇다. 저는 봉사활동을 통해 다시 태어났고 봉사활동이 저에게 제2의 인생을 주었다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봉사활동이 저를 정치로 이끌게 됐다.
-봉사활동이 정치를 이끌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여러 정치인들로부터 정치를 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됐다.
-처음 받은 게 누구인가.
△하순봉 국회의원이 현역시절에 정치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그때는 정치할 생각이 없어서 거절했다.
-최구식 의원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시의회에 진출했는데.
△그렇다. 하순봉 의원의 요청은 거절했는데 아무래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니 최구식 전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보자고 해서 만났다. 그런데 처음 보니 사람이 성실하고 진주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와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최 의원과는 쭉 함께 활동을 해 왔다. 그렇게 함께 해 오다가 6대 지방선거에 출마해 보라고 해서 출마하게 된 것이다.
-시의원 선거가 어렵지는 않았나.
△저는 어렵지 않았다. 태어난 곳인 망경동에서 선거를 했고 봉사활동 등을 통해 잘 알던 사람들이어서 선거운동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재미있게 즐기면서 했다.
-당시 출마자들이 누구인가.
△문쌍수 의원과 류재수 의원, 박미경씨등이다.
-몇 등을 했나.
△문쌍수 의원이 1등을 했고 제가 2등을 했고 류재수 의원이 3등을 했다.
-시의회에 진출해 보니 어떤가. 당초 기대했던바와 차이가 있나.
△저는 복지산업위원회 소속이다. 의회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평생 해 왔던 봉사와 관련된 분야에서 의회활동을 하고 있고 그래서 성과도 좋은 편이다.
-시의원 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드나.
△아무래도 큰 틀에서 복지를 다뤄볼 수 있고 제가 평소에 생각해 왔던 복지 관련 생각들을 정책을 통해서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 시의원을 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하고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이 든다.
-시의원 되고 나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올해 4월20일 날 개소식을 했는데 성지동 경로당을 신축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예산이 2억5천만 원이 들었는데 도비 1억5천, 시비 1억 원으로 신축을 했다. 예산을 마련하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동료의원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무사히 경로당을 짓게 됐다. 개소식 때 너무 뿌듯했다. 시의원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그 외에도 강 의원은 일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로 경로당 사업을 많이 했다. 망경동에 동신경로당이라고 있는데 시설이 노후화 된 것이 있었다. 이를 보수해 제대로 다시 만들었고 호탄동에 있는 호탄경로당 리모델링 가호경로당 리모델링, 칠암경로당 건물 도색 및 보수공사도 했다. 남가람 경로당 건물 도색사업을 했고 남강경로당 리모델링을 했으며 봉곡동 경로당도 리모델링을 했다. 이처럼 저는 주로 경로당을 보수하거나 리모델링하는데 많은 주안점을 두고 시의원 생활을 했다.
-경로당 일만 했나.
△(웃음)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복지에 관심이 많다 보니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 일을 많이 하게 됐다. 그 외에 강남동 옛날 역전자리에 인도가 없었다. 그래서 사고위험도 있었고 주민들이 많이 불편해 했었다. 여기에 인도를 설치한 것도 제가 나서서 한 일이다. 이것 역시 기억에 남는 일이다. 또 천전시장 내에 도로를 포장했고 망진산 등산로에 먼지털이 시설을 설치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시의원에 재미를 붙인 것 같은데 다시 출마할 것인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출마하고 싶다.
-새누리당에서 기초의원 정당공천 배제를 이번국회에서 법제화 하자고 문재인 후보측과 안철수 후보측에 제안했던데, 언론에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적어도 기초의원 공천은 없애는 것으로 입법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도 공천을 받아 시의원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시의원을 해 보니 공천제도는 사실 문제가 많다. 그래서 폐지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 공천에 목매는 것 보다 지역활동을 하는 게 훨씬 힘도 적게 든다. 공천제도가 폐지되면 시의원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
-여성들은 공천제도가 오히려 득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이다 남성이다, 하는 것이 득표에 유,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저도 선거를 해 보았더니 여성이라 어려운 점은 없었다. 지역과 얼마나 소통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 의원은 특이한 것이 남편 장사문 선생이 늘 함께 하고 있던데
△남편은 농업전문가이다. 경남 농업기술원에 재직하다가 산청 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2010년 퇴임했다. 퇴임하면서 당신이 평생 내조를 했느니 당신 시의원 생활하는 동안 자신이 외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늘 함께 다닌다. 남편이 오래 공직에 있었기 때문에 공직사회의 생리나 분위기등을 잘 안다. 그런 남편의 조언들이 제가 의원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 남편과 함께 다니니까 지역민들이 좋아한다. 어떤 때 혼자 다니면 남편 어디갔느냐고 묻는 지역민들이 많다.
-남편이 시의원에 다시 출마하는 것을 찬성하나.
△그런 얘기를 나눠 본적이 없어서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제가 하고 싶다고 하면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시의원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
△그리 큰 어려움은 없다. 저는 지역민이 말하기 전에 제가 먼저 문제제기를 하는 편이다. 제가 민원이 될 만한 일을 먼저 찾아서 관련부서에 이야기 하는 편이기 때문에 시의원 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다.
-부지런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새벽 4시면 일어난다.
-굉장히 일찍 일어나는 데 무엇 때문에 그리 일찍 일어나나.
△습관이 되어서 그렇고 실제 주부역할을 다 수행하기 때문에 새벽에 할 일이 많다. 시의원 활동을 하다보면 저녁에 일찍 들어가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밥 짓고 빨래하고 집안일을 직접 다한다. 그런 일을 다 해 놓고 새벽 일정이 있을 때는 일찍 나오고 그렇지 않을 때도 9시면 시의회에 출근을 한다.
-잠은 언제 자나.
△12시쯤 잔다.
-그럼 하루 4시간 밖에 자지 않나.
△그렇다. 오래 습관이 돼서 4시간만 자도 괜찮다.
-수험생도 아니고 그리 적게 자고도 건강에 이상이 없나.
△보시다시피 이리 건강하다. 잠은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이창희 시장과 가까운 사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가 이 시장을 좋아한다. 정말 이 시장은 일은 잘한다.
-이 시장이 일만 잘하나.
△직원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최근 시의회와 집행부 간에 갈등이 있었다.
△집행부와 소통이 부족해 그런 일이 발생했다. 집행부에서 의회에 설명하는 것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집행부와 의회의 관계는 어때야 하나.
△의회가 사실은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감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일을 잘 못한 것 같다. 저도 그 점에서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앞으로는 저도 집행부를 감시, 감독하는 의회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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