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민자전거보험 실현시킨 것 자부심 느껴
진주시민자전거보험 실현시킨 것 자부심 느껴
  • 정리 한송학 · 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2.11.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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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아 진주시의원 (상대하대)

 
강민아 의원은 “진주시 시의원으로서 즐겁고 신이난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만큼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민주노동당에서 시작하여 통합진보당까지 진보계열에서 활동해 재선의원이 됐다. 지난번 6대 지방선거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인 하대1, 2동, 상대동에서 1등을 했다. 진보계열의 시의원이 지역구에서 1등하기가 쉽지 않는 일이다. 특히나 진주가 노동자 도시도 아닌 점에서 강민아 의원의 성적표는 평가할 만하다.
강의원은 이창희 시장 등 시 집행부와는 격렬히 논쟁하면서도 지역구에 들어서면 딸처럼 동생처럼 행동해 의외로 그녀의 지지기반은 넓다. 최근 오랫동안 몸담았던 정당을 탈당해 무섭고 두렵다고 말하는 강의원은 그럼에도 진보정당이 가야할 길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분명한 자신의 생각을 견지했다. 북한의 3대 세습과 핵개발은 잘못된 것이며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도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라고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했다. 시의원은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갈 수 있는 정책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강의원은 앞으로도 분명한 진보정치인으로서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 강민아 진주시의원(왼쪽)은 본지 황인태 회장과의 대담을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 겠다, 무엇을 하고 싶다,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이라”며 “앞으로도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도움이 되는 곳에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민아 의원과의 인터뷰 요지이다. 

-강민아 의원은 지금 소속이 어딘가.
▲무소속이다.
-원래 통합진보당이었는데 언제 탈당했나.
▲지난 9월 탈당했다.
-왜 탈당했나.
▲통합진보당은 제 마음의 고향이었다. 97년 국민승리21시절부터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과 인연을 맺어왔으니 적지 않은 세월이다. 그래서 이번 탈당 때 참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당이 당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새롭게 거듭나야 되겠다, 생각해서 탈당하게 됐다.
-김미영 의원, 류재수 의원 등 동료의원들도 탈당했나.
▲아니다. 탈당은 저만 했다. 김미영의원과 김경애의원, 류재수의원은 탈당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플텐데
▲많이 서운하다. 그러나 그분들과 인간적인 서운함은 없다. 의회에서 활동할 때도 여전히 그분들과 연대를 한다. 비록 당을 떠나 왔지만 존경하고 믿는 분들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당 흐름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기존의 통합진보당 흐름도 있고 진보정의당 흐름도 있고 권영길 전 의원이 주장하는 노동자 중심 정당흐름도 있다. 또 제가 모르는 흐름도 있을 수 있고. 저는 통합진보당 밖의 여러 흐름들이 통합되기를 바라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흐름들이 정리되면 저도 그 흐름에 합류할 것이다.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장 많은 의문이 북한에 대한 생각이다. 소위 종북문제인데 종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한을 좋아하느냐, 미국을 좋아하느냐, 중국을 좋아하느냐를 물으면 애매하다. 사안별로 물어보아야 정확한 답을 할 수 있다.
-그럼 김정은 3대 세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잘못됐다.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어떤가.
▲잘못됐다. 애국가가 원래 태생도 그렇지 않고 실제로도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이념에 경직된 자세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그나마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민주화 된 지금에 와서까지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지나게 갇힌 생각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어떤가.
▲그것도 잘못됐다. 어떤 경우도 핵개발은 잘못된 것이다.
-원래 정치를 하려고 했었나.
▲전혀 아니다.
-그럼 무엇이 되려고 했나.
▲저는 참 한심한 게 무엇이 되어야 겠다 무엇을 이루고 싶다 이런 것이 없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우습게 생각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냥 제 주변에 불행한 사람이 없고 제가 할 일이 있고 저를 필요로 하고 제가 신이 나고 즐겁고 그것이 목표이다.
-그럼 시의원이 즐겁고 신이 나나.
▲즐겁다. 신이난다.
-무엇이 그리 즐겁고 신이나나.
▲제가 시민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이난다.
-시의원이 언제 됐나.
▲지난 2006년 5대 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
-어떻게 해서 시의원에 출마하게 됐나.
▲그때 제가 평거동에서 문화패 활동을 하고 있을 때이다. 당시는 민주노동당이었는데 여성에 대한 30%의 할당제가 있을 때이다. 여성 30%를 할당하려 하니 사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래서 주변에 저를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추천받고 바로 승낙했나.
▲저도 처음에는 당혹스러웠고 황당했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특히나 제가 그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즐겁지 않을텐데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이 강민아가 제일 낫다고 격려해 주시고 밀어주셔서 용기를 내어서 출마했다.

▲ 강민아 시의원이 추석을 앞두고 중앙유등시장을 방문해 전통시장 이용 캠페인을 벌이며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의원으로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많다. 특히 제가 5대의원일 때인데 진주시 시민 자전거 보험을 성사시킨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도 잘 모르는데 진주시시민자전거보험이 무엇인가.
▲진주시민이면 자동적으로 가입되는 것인데 자전거를 타다가 4주이상의 진단이 나오면 보장을 받는 보험이다.
-그런 게 있었나.
▲그렇다. 제가 발의해서 만든 정책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제법 된다.
-정말 좋은 정책 같은데 홍보를 많이 해야겠다.
▲언론인도 모르는 것을 보니 홍보를 많이 해야겠다. 사실 자전거 도시라고 하면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에서 정책을 발의한 것이고 2009년부터인가 시행되고 있다.
-그 다음에 기억나는 일은 무엇인가.
▲6대 때 와서는 시정 질문을 많이 했다. 지금 제도는 시장에게 너무 권한이 집중돼 있다. 물론 시장의 권한을 20명의 시의원들에게 고루 분배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시장의 권한이 시정질의를 통해 검증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정 질의를 많이 하지만 집행부와 대화가 잘 되는 편은 아니다.
-어떤 면이 그런가.
▲시정 질의를 통해 공청회를 요구하거나 간담회를 요구해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강 의원은 싸움닭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특히 이창희 시장과 많이 다툰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특히 어르신들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시의원으로서 집행부를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매사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도 주신다. 어르신들이 많이 하시는 데 애정 어린 충고라고 생각한다.
-이창희 시장은 어떤가. 잘하고 있나.
▲그분의 경력이 그래서 그렇겠지만 행정을 잘 아시는 것 같다. 그런데 잘 아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도리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걸림돌이 될 수 도 있다. 개인적 바램은 두루두루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면 한다.
-그래도 시정은 잘 운영하고 있지 않나.
▲이 시장의 최우선 목표는 지역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알고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목표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너무 한쪽에 편중돼 있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이 시장은 기업유치에 너무 편중돼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우리 진주가 가지고 있는 기업, 진주가 갖고 있는 자산을 소흘이 하는 경향이 있다. 진주는 소상인들의 숫자가 많다. 상인들과 전통시장, 골목상권을 키우고 보전하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토끼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토끼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야기를 돌려보자. 어떻게 살아왔나.
▲1971년 전남광양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6살 때까지 살았고 7살 때 진주로 이사를 왔다. 진주에 와서 연화유치원, 배영초등학교, 진주여자중학교, 제일여자고등학교, 경상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아직도 전라도 말이 남아있나.
▲완전히 진주 말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뭐했나.
▲대학교 때 문화패 활동을 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에 노동자가 되려고 마산수출자유지역에 노동자로 취직했다.
-어떤 일을 했나.
▲전화선을 만드는 일을 했다.
-월급이 얼마였나.
▲첫 월급이 43만원이었다.
-생활이 되던가.
▲그 때 친구랑 자취를 했는데 제 부담분이 10만원이었다. 적은 돈이었지만 그 돈으로 생활했다.
-노동운동을 위해 현장에 뛰어든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노동운동을 하려 노동현장에 간 것은 아니다. 정말 노동자로 살고 싶어서 간 것이다. 노동자를 선도하겠다, 이런 뜻이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동안 일했나.
▲마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진주 상평공단에도 있었다. 6년 정도 일했다.
-그럼 노동자 생활을 그만두고 뭐했나.
▲진주 평거동에 있는 노래패에 상근을 자원했다.
-월급은 받았나.
▲제가 만들어 썼다. 후원인도 만들어 가고 또 노동조합등에 공연할 때 공연비도 받고 하여 살림을 꾸려 나갔다.
-본인이 보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저는 의외로 단순하고 그냥 보통사람이다. 그냥 올바르게 살려고 갈등하는 사람이다.
-시의원을 계속할 건가.
▲계속할 거다.
-진보정당을 계속할 건가.
▲그렇다. 지금은 탈당을 한 상태이지만 진보정당의 흐름이 정리되면 합류할 것이다. 끝까지 이익이나 손해를 따지지 않고 진보계열의 의원으로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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