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어르신 어떻게 다를까
노인과 어르신 어떻게 다를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11.2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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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우리나라는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으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가 중에서 노인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이 1위라는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속살을 갖고 있다.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 나 사회차원에서 노년 인구의 삶의 질과 복지에 대한 정책은 뒤처져 있는 현실이다.
우리말에는 ‘늙은 사람’을 표현하는 다섯 가지 말이 있다. 나이만 든 사람을 비하할 때 늙은이라 하고, 중립적으로 표현할 때 노인, 노인을 높여서 불러야 하는 상황에서 노인장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표현에는 육체적인 늙음은 있을지언정, 정신적인 의미는 없다. 하지만 어른과 어르신은 다르다. 늙은이, 노인, 노인장과 어른, 어르신을 구분하는 경계는 바로‘얼’이다. ‘얼’은 생명의 본질이고 만물의 근원이며, 정신이다. 얼을 깨우쳐야 어른이 되고 어르신이 될 수 있다. 어른과 어르신은 육체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인 기준, 양심의 나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우리는 ‘얼’의 의미를 ‘얼굴’이라는 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어로는 face, 한자로는 안면(顔面)으로 서로 마주 대하는 면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말 얼굴은 ‘얼’과 ‘굴’이 합해서 나온 말이다. 얼굴에는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구멍 등 많은 굴이 있고, 그 굴로 얼이 드나든다는 정신적인 의미이다. 얼굴은 ‘얼이 드나드는 굴’ 또는 ‘얼이 깃든 굴’이라는 의미이다.
얼굴은 사람에게만 쓰고, 동물에게는 쓰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당연히 얼을 가져야 한다. 얼을 가지면 얼굴을 들고 당당하게 살 수가 있다. 하지만 얼이 빠지면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다. ‘얼’이 빠진 사람을 ‘얼간이’라고 한다. ‘얼’을 가지면 조화로운 ‘좋은 사람’이 되고, ‘얼’이 빠지면 나만 아는 ‘나쁜 사람’ 이 된다. ‘나쁘다’는 것은 ‘나뿐’인 상태이다. 자기만 알고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이기적인 욕망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곧 나쁜 사람이다.
어른과 어르신에는 나이가 든 좋은 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얼을 깨우치고 살아가면 ‘어른’이 되고, 그 얼이 신의 경지에까지 이르면 ‘어르신’이라 한다. 그래서 ‘어르신’은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큰 마음(大德)을 품고, 사람과 세상을 살릴 수 있는 큰 지혜(大惠)가 열리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온 힘(大力)을 다해 애쓰는 분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흠모를 받는 분이다.
우리가 ‘늙었다’나 ‘노인’이라는 표현을 싫어하는 내면적인 이유에는 얼을 갖고, 정신을 차리고 살아서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존경받는 어른, 어르신이 되어야 한다는 마땅한 사람의 도리를 유전 받아서 일지도 모른다. 나이만 먹지 말고, 어른과 어르신으로 좋은 사람, 홍익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렇듯 우리말은 국학의 정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우리말은 바로 국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얼을 가진 어른과 어르신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렇지 못하고 노인만 많으면 그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어른이 되고 어르신이 될 수 있는 내면의 공부와 실천을 하는 노년 인구가 많아지면, 건강하고 행복한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평균수명 80세,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비율이 10%를 훨씬 넘어선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대처하는 가장 슬기로운 길이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른과 어르신이 많이 사는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우리말 속에 이렇듯 깊은 뜻과 정신이 숨어 있다. 우리말 속에 사람이 살아가는 할 도리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물론 세계적인 정신문화대국이 될 수 있는 정신이 샘물처럼 담겨있다. 그 정신의 샘물을 퍼 올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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