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땅은 거짓도 없고 용서도 없다
(3)땅은 거짓도 없고 용서도 없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7.1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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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선조들이 좋은 집을 강조한 이유는 ‘사람도 우주의 산물’이라는 진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좋은 집이란 우주질서에 반하지 않고 자연의 힘과 조화를 이루도록 안배되어야 한다. 모든 생명체는 땅에서 태어나서 땅에 몸을 붙이고, 땅에서 생산된 것을 먹고 살다가 죽어서는 땅으로 되돌아간다. 따라서 땅의 순리를 거역하거나 잘못 다루게 되면 언젠가는 큰 화를 당하게 된다. 땅을 잘 이용하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무분별한 개발, 땅의 생기 죽여

근래에 들어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생기의 생성과 보전에 관한 원리를 무시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아무 땅이든 중장비를 동원하여 심하게 깍고 메워서 부지를 만드는 일이 많다. 작은 산 하나쯤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되고 말았다.

또 우리도 그런 땅들의 겉모습이 좋아 속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땅의 생기에는 관심이 없고 단순히 이용하기 편리하고 보기 좋은 땅을 만든 다음 그 위에 건축물을 짓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한다. 인공조경을 하면서는 아무 곳에나 함부로 연못을 파고, 미적인 감각만을 중시해 위치나 크기 등을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동산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행위는 주거공간에 생기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거주자에게 나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으로 돈으로 인한 인위적인 불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땅을 대할 때는 항상 ‘땅은 거짓이 없고 용서도 없다’는 자연의 법칙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땅의 생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진리이자 화두이다. 땅을 함부로 훼손하면 반드시 그로 인한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역사의 수 많은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땅을 대할 때는 가장 먼저 ‘땅은 살아있는 생명체’ 이며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영물’로 보는 마음가짐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땅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고 땅을 사랑하면서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기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로서 음과 양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형성된 생기는 외부의 다른 기의 영향을 받아 좋거나 나쁘게 변질되는 원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생기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특성을 지닌다.

바람이 고요하면서 물을 만나는 땅이 명당

일반적으로 땅위에서 산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으므로 ‘음(陰)’이라 하고, 물은 흐르는 것이므로 ‘양(陽)’이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산이 음이고 물이 양이 되는 고정된 원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상대적인 성질을 갖는다. 땅의 생기도 음양의 조화로 생성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의 조화와 같다. 마치 음인 여자와 양에 해당하는 남자가 서로 만나 결혼하여 새로운 생명을 지닌 자식을 낳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주 만물에는 항상 음양이 함께 존재해야 하고 또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좋다.
우리가 보통 ‘풍수’라고 말하는 것은 ‘풍수(風水)’와 ‘지리(地理)’를 합한 용어이다. 풍수는 ‘땅속의 기운에 관한 지혜’를 말하고, 지리는 ‘지표현상에 대한 기술’을 말한다.
그러므로 풍수는 땅속의 기운, 즉 땅에 생명을 불어 넣은 지기의 작용원리에 관한 것으로 좋은 기운을 가진 땅을 찾는 방법을 알게 하는 이론이다. 또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인 말로 그 속에는 ‘바람이 고요하면서 물을 만나는 땅이 생기를 지닌 땅’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생기가 좋은 땅을 지칭하는 ‘명당’은 이와 같은 좋은 여건을 갖춘 땅을 의미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즉 땅은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땅이 되며, 풍수지리의 핵심도 바로 구성 요소들 간의 조화를 통한 생기의 최적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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