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원 되자마자 진주시 인권조례 제정에 기여
시의원 되자마자 진주시 인권조례 제정에 기여
  • 정리 한송학 · 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2.11.2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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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애 진주시의원 (신안 평거)

 
서은애 시의원(45)은‘진주하면 인권도시’로 기억되도록 하는 게 자신의 의정활동 목표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져 진주 여성민우회를 창립했고 주로 여성차별 철폐등을 위한 활동을 했다. 저소득층을 위한‘해야해야 공부방’을 만들었고 여성축구단도 창단했다. 이런 활동을 평가받아 지난번 4.11 보궐선거에서 야당단일후보로 출마해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새누리당 아성이라는 신안·평거지역에서 당초 예상을 뒤엎고 당선된 것이다.
시의원이 된 후 발 빠르게 움직여 진주시 인권조례를 발의했고 마침내 지난 10월 4일 공포되게 했다. 인권도시 진주를 위한 기반을 잡은 셈이다. 자신은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정책이나 예산이 얼마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지를 눈여게 보게 된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 둘 모두를 대안학교에 보낼 만큼 아이들의 교육에 나름대로의 철학이 확고한 서의원은 시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이 폐지돼야 진정한 시의원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 서은애 진주시의원(왼쪽)은 본지 황인태 회장과 대담을 통해 “남편도 가부장적인 사람이었으나 현재는 자신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 줄 만큼 변했다”고 말하고 “진주가 인권중심도시로 태어나도록 하는 게 저의 의정활동 목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서은애 의원과의 인터뷰 요지이다. 

-이력이 어떻게 되나
▲1967년 진주시 상봉동에서 태어났다. 봉곡초등학교와 선명여중, 삼현여고를 졸업했고 대학은 서울로 유학가 상명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뭐했나.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결혼 후 주로 여성운동을 했다.
-여성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대학교 때 교양강좌로 여성학을 듣게 됐다. 여기서 여성문제에 눈을 떴다고 할 수 있다. 잘 산다고 해서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졸업후 주로 여성권익운동을 해 왔다.
-주로 어떤 단체에서 활동했나.
▲결혼 후 양산에 정착했다. 여기서 3년 살다가 진주로 왔다. 진주에 오면서 경상대 총여학생회장 출신들을 중심으로 여성권익신장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이 나중에 진주 여성민우회의 모태가 됐다. 저는 진주 여성민우회 창립멤버이고 여성민우회 활동을 계속했다.
-여성민우회 창립멤버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여성성폭력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강문순 소장과 박강익 목사등이 창립멤버이다.
-여성민우회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
▲2002년 생활보호 대상과 맞벌이 부부, 저소득층을 위한 공부방인‘해야해야 공부방’을 만들었다. 저소득층은 아이들이 학교가 마친후 갈 곳이 없다. 일반 학부모들은 학원에 보내지만 그렇지 못하는 저소득층은 아이들을 돌 볼 마땅한 장소가 없다. 그래서 공부방을 만들었다. 이현동에다 만들었는데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회원들의 후원비로 하려니 굉장히 힘들었다. 집행부와 간부들이 고통을 분담해 가면서 운영했다. 2005년에 지역아동센터로 전환되면서 지금은 시의 보조금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다. 유기농 생협 매장을 운영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다른 활동은 없는가.
▲진주 최초로 여성축구단을 만들었다. 여성민우회 축구단이었는데 2003년 창단했다.
-어떻게 해서 여성축구단을 만들게 됐는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없었다. 그런데 2002년 월드컵 이후에 우리도 축구단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 있었고 그래서 만들게 됐다. 만들어 놓고 보니 여성들이 느끼지 못하는 유대감이 형성돼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소모임으로 작게 출발했는데 여성축구단이 없다 보니 진주를 대표하는 여성축구단이 됐다. 제가 단장을 맡아서 했다. 전국대회 나가서 우승도 하고 그랬다.
-본인도 축구를 하나.
▲그렇다. 단장이다 보니 선수가 없으면 선수로 띄고 그랬다. 축구를 하면서 남자들이 왜 축구에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게 됐다. 축구가 상당히 중독성이 있는 운동이다. 한참 할 때는 하지 않으면 몸이 뻐근 한 게 중독이 되더라.

▲ 서은애 진주시의원이 국화전시회장을 찾은 어린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의원에 출마한 동기는 무엇인가.
▲저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20년간 했다. 그런데 시민사회단체 활동은 한계가 많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많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역시 제도권에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도권에 들어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많이 느꼈다.
-시의원은 어느 당으로 출마한 것인가.
▲지난번 4월11일 보궐선거에서 저는 야당 단일후보로 출마했다.
-원래의 정치성향은 어느 당인가.
▲저는 진보성향이다.
-그럼 진보정당 인가.
▲저는 당에 대한 정체성은 별로 없다. 지금까지 시민운동을 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특정  정당 활동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당에 대한 정체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의원은 당의 정체성이 오히려 필요 없다는 게 제 지론이다.
-시의원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게 제 의정활동의 목적이다. 시민운동과 시의원이 다른 것은 시의원은 법과 제도를 통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의원으로서 잘 한일은.
▲제가 시의원에 당선된 뒤 바로 진주시인권조례를 발의했다. 진주시는 2009년 전국에서 최초로 인권조례를 발의해 놓고도 폐기된 곳이다. 그래서 제가 당선 되자 마자 인권조례를 발의했고 지난 10월 4일 공포됐다.
-시의원 당선 되자마자 대단한 성과인데 인권조례가 공포된 지역이 몇 개나 되는가.
▲아직은 많지 않다. 광역시를 포함해 18개 지역에서 인권조례가 제정됐다.
-시의원 해보니 어떤가? 당초 기대와 같은가.
▲실제로 해보니 당초 기대보다 시의원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시의원이 엄청 중요한 직책이다. 시민사회단체 운동은 어느 한분야만 알면 되지만 시의원은 시 전체를 잘 알아야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다. 전문성을 가져야 하고 시야도 넓어야 한다.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시의원이 되고 나서 시민들이 정말 시의원을 잘 뽑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시의원을 계속할 것인가.
▲이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계속할거다. 저는 현재 배우는 과정에 있다. 열심히 배워서 제가 시의원을 하면서 시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하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
-진주는 보수성향이 강한데 여성으로서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이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제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할 때도 여성으로서 활동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저는 한결 같이 사회적 약자를 대신해서 꾸준히 해 왔다. 이것이 좋은 반응을 보인 것 같다. 제가 봉사를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에 대해 주민들이 평가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 저는 뭐든 진정성을 가지고 하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시의원을 하면서도 시의 정책과 행정이 집행될 때 이것이 얼마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면서 이루어지는 가를 집중적으로 보게 된다.
-현재 시의원 공천제 폐지가 논의중인데
▲시의원이 되기 전에도 그랬지만 시의원을 하면서 정말 시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굳히게 됐다.
-어째서 그런가.
▲시의원은 사안이 발생하면 시민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정당이 개입하게 되면 정당의 성향에 의해 그것이 굴절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을 자주 겪다 보니 시의원이 정말 시의원을 위한 활동을 하려면 시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은 폐지돼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장도 정당공천이 폐지되면 훨씬 더 나은 시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의원 하면서 어떤 진주를 만들고 싶은가.
▲저는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해 왔다. 그래서 진주하면 ‘인권도시’라는 게 연상될 정도로 진주가 인권문제를 생각하는 그런 도시가 됐으면 한다. 그것이 제 의정목표이기도 하다. 진주는 농민항쟁과 형평운동의 발원지이다. 이런 지자체가 별로 없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주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된다.
-인권도시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진주가 행정을 하면서 모든 행정의 기본에 ‘인권을 중심에 두는가’를 보는 것이다. 행정의 기본에 이를 두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
-화제를 돌려보자. 진보성향의 정치인에 대해 시민들이 관심을 갖는 소위 종북 문제이다. 자신이 진보성향이라니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한은 우리민족이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소위 종북문제라는 3대세습,핵개발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저는 평생 폭력을 반대하는 운동을 해 온 사람이다. 핵개발은 이미 있는 것도 폐기해야 하는 마당에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찬성할 이유가 없다.
-진보단체가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사실 진보단체가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몰랐다.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됐다.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아 보았나.
▲선거 때 많이 받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의 생각을 분명히 시민들에게 말씀드렸다.
-아이들은 어떤가.
▲아들 두명 두고 있다. 큰 아들은 군에 가기 위해 준비 중이고 둘째는 고 2이다.
-어느 학교 다니나.
▲둘 다 제천에 있는 간디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아이들이 크기에 보통 학교보다 대안학교를 보내는 게 그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대안학교를 보냈다. 대학을 가는 것 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했다. 그래서 큰 아이는 아직 대학을 가지 않고 있다.
-잘했다고 보나.
▲저나 남편은 그게 최선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그러나 대안학교라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미래가 행복할지는 지금 예단할 수는 없다. 단지 우리는 부모로서 이게 최선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남편은 본인의 활동을 잘 이해하나.
▲남편도 진주 사람이라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고가 많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참으로 많은 대화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저의 활동을 이해하고 적극 지원해 준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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