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깨질 듯 끝내 깨지지는 못하고
시와 함께하는 세상-깨질 듯 끝내 깨지지는 못하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2.08 17:27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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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깨질 듯 끝내 깨지지는 못하고

빗방울들 손과 손을 맞잡고 질펀하게 누워 있다
검은 거울을 만들고 있다
거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거리의 모든 것을 비춘다

먹구름이 지나가고 웅성거리며 가로수들이 걸어 들어간다
어깨를 접은 건물이 거울 속에 웅크리고 있다
개미들이 거울을 벗어나기 위해 사투 중이다
거울 한복판에서 죽은 세포를 발견하게 될 때의 경악!
사람들은 오래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붙들리게 된다

거울은 깨져야 한다
깨지는 일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듯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거울은 얼굴을 흩뜨리며 깨지는 연습을 한다

그러나 튀어나간 물 파편들은 또 다른 거울을 만들 뿐,
복제 거울이 판치는 거리를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움켜잡은 채 빠르게 귀가하고 있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움푹움푹 골이 패이는 거울
깨질 듯 끝내 깨지지는 못하고
사람들 얼굴에도 들러붙어
번질거리기 시작한다

(문성해의 ‘깨지지 않는 거울’)

참 재미있으면서 늘 바라보면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삶을 노래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빗방울들이 손을 잡고 누워있다는 사실, 그리고 누워있는 물들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잡고 있는 손과 손이 밀집되어 빛으로 반사되고 있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 웅덩이에서 반사된 것들이 거리를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반사되는 거울에는 구름과 가로수와 건물도 비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개미들은 홍수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그 홍수로 정말 목숨을 잃은 개미도 발견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그 거울은 깨져야 한다. 거울은 저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어서 깨뜨리고자 빗방울을 세차게 떨어뜨리기를 원하고, 그때마다 웅덩이라는 거울이 깨지듯 하지만, 끝내 깨지지 못하고 깨어지는 연습만 하게 되고, 빗방울이 그치면 여전히 거울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럼 빗방울에 깨졌던 거울은 사라지고 현재 존재하고 있는 거울은 여전히 복제된 거울처럼 웅덩이 물이 마를 때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빗물이 넘치면 또 다른 웅덩이가 생기기 때문에 거울의 파편처럼 또 다른 웅덩이(거울)가 생기게 된단 논리다.

그리고 웅덩이의 파편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귀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파편이 생기면 생길수록 땅이 움푹 패고 패인 웅덩이 속에 갇힌 빗물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거려서 비치는 물건들이 번질거린다는 것이다.

빗길 운전을 여러 번 경험을 했다. 그럴 때마다 도사린 위험 때문에 운전에만 신경을 쓰지, 빗물이 떨어지고 고이는 현상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의 예리한 눈에는 그러한 것들이 다 보이고 또한 보이는 만큼 상상력도 무수하게 몸집을 부풀어가게 된다. 빗길 물웅덩이가 거울로 인식될 수 있다는 발상과 그리고 파편처럼 거울이 자꾸만 세포증식을 한다는 발상이 너무 신선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 시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가 있다. 사물을 비춰주기 위해 거울의 목표가 깨지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깨진 거울이 사물을 제대로 비춰줄 수 있을까도 문제인데, 그 깨진 거울이 오히려 더 많은 사물을 비춰준단다. 이러한 현상은 아이러니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깨짐으로써 더욱 많은 사물을 더욱 분명하게 비춰주는 거울 그의 이름은 웅덩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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