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불천 자전거도로 개설해 환경 개선시킨 것 보람
나불천 자전거도로 개설해 환경 개선시킨 것 보람
  • 정리 김봉철 · 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2.11.2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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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도 진주시의원

 
박성도 의원은 소신과 주장이 분명하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번 후반기 진주시의회 원구성에서 의외의 사건이 발생했다. 박 의원이 작성한 것도 아닌데 자신의 진주시의회 부의장 출마 사퇴서가 의회 사무국에 접수된 것이다. 동료의원들이 사퇴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했던 것이다. 좋은 게 좋다며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박 의원은 끝까지 진실을 규명하고 있다. 시의회에서까지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이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 진주지청에서 조사 중이다. 박 의원은 부지런하기로도 유명하다. 그의 지역구는 이현, 판문, 명석, 수곡, 대평 등으로 아주 넓다. 이 넓은 지역을 매일 부지런히 돌고 있다. 그래서 한 달 자동차 기름 값만 100만원이 나올 정도이다. 시의원으로서 활동도 평가할 만 하다는 게 이 지역사람들의 평가이다. 명석에 하나뿐인 초등학교 이름이 명석초등이 아닌 것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한 점, 대평면에 농산물 직판장을 개설한 것, 수곡면 면사무소 앞 3거리를 확장하는 것, 나불천 자전거 길을 만든 것 등 초선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들을 해 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집 고쳐주기 사업에 헌신한 공로로 대통령상을 받기도 한 박 의원은 여기에 들어가는 기금을 모두 직접 노점상을 해서 벌었다. 자신의 일을 그렇게 했으면 큰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박 의원은 집 고쳐주기 사업에 함께한 나리 김밥집 한호진 사장, 향담이라는 식당을 경영하는 이원순 사장, 전업주부인 박경미 바르게살기운동 이현동위원장 등을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로 생각하고 있다.

▲ 박성도 진주시의원은 본지 황인태 회장과의 대담을 통해 “지난번 부의장 사퇴서 위조건은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히고 “ 이 일은 시정잡배들도 하지 않는 일로서 시의회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성도 의원과의 인터뷰 요지이다. 

-지난 총선에서 최구식 의원을 지지하기 위해 새누리당을 탈당했는데

▲아직 복당하지 않았다.
-왜 복당하지 않나.
▲아직까지 서로간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복당할 것인가.
▲하순봉 의원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20년간 새누리당 당원으로 지내왔다. 당연히 복당할 것이다.
-시의원 공천폐지가 새누리당 공약인데. 그래도 복당할 것인가.
▲그런 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때 가서 판단하겠지만 제 마음은 새누리당 당원이다.
-다음번 7대 때도 시의원에 도전할 것인가.
▲그렇다.
-왜 시의원이 재미있는가.
▲재미라기 보다는 보람 있는 일이다.
-어떤 점이 그런가.
▲제 지역구는 진주에서도 소외받는 지역이다. 그래서 손발이 닿을 곳이 많다. 그래서 다시 시의원이 되어서 제 지역이 소외를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지난번 후반기 원 구성을 두고 소란스러웠는데.
▲그렇다. 시의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가.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겨루면 될 일인데 사퇴하라며 강요를 하고 팔목을 잡아서 강제로 사퇴서에 사인을 하라고 하는 등 도저히 의원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현재 그 사건은 어떻게 됐나.
▲검찰에서 조사 중이다.
-아직 합의를 하지 않았나.
▲합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앞으로도 합의하지 않을 것인가.
▲합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고집스럽게 밀고나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의회에서 자리나누기를 하기 위해 후보자를 억지로 사퇴시키고...하는 일이 어떻게 상상이나 가나. 시정잡배들도 하지 않는 일이다.
-상대방에서는 단순 해프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절대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조사 중이어서 정확히 말하기는 그렇지만 아무튼 문서위조와 도장위조가 있었다.
-사퇴서가 본인이 작성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 사퇴서를 다른 사람이 쓰고 도장도 다른 사람이 파서 도장을 찍어서 의회 사무국에 제출했다. 저는 나중에 알았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
-시의원 활동으로 돌아가 보자. 시의원으로 기억에 남는 일은.
▲이현동에서 명석까지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다. 약 17억정도의 예산이 소요된 프로젝트이다. 이 사업으로 지저분했던 나불천이 깨끗해졌다.
-다른 일은.
▲명석초등학교 명칭 변경이 제 의원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었고 보람 있는 일이다. 

▲ 박성도 진주시의원이 행정사무감사 기간에 현장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과거 명석면에는 5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면소재지에 있는 용우초교를 제외하고 나머지 학교들이 모두 폐교가 되었다. 면소재지의 이름인 명석초교가 폐교되고 용우초교가 살아남은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출향인사들이나 면민들이 살아남은 용우초교의 이름을 명석초교로 바꾸어 달라는 요구가 일기 시작했다. 교육당국에서도 내심 이렇게 되길 원했다. 그런데 이는 용우초교 동창회가 동의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제가 마침 용우초교 졸업생이고 총동창회장이다. 그래서 지난 2년간 동창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을 해 마침내 승낙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 동창회 동의서가 들어갔고 이제 교명변경의 행정절차만 남았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함께 고생한 박병준 운영위원장께 이 기회에 깊이 감사 드린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명석에 전통목가구 연구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45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사업부지가 옛날 명석초교 자리였다. 그런데 명석초교 동창회에서 용우초교의 이름을 명석초교로 바꾸어 주지 않으면 부지사용에 동의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 명석이 목공예가구 중심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교명 변경을 위해 제가 그렇게 열심히 하게 된 것이다. 이제 교명변경이 이루어졌으니 이 사업이 시행될 수 있게 됐다. 교명변경을 하지 않았으면 이 사업이 표류될 뻔 했다.
-다른 동의 일은 없는가.
▲판문동에는 판문 주유소에서 소싸움장 가는 길을 확장했다. 이 길은 이 지역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도로이다. 그런데 도로가 좁고 인도가 없어서 늘 불편하고 사고의 위험이 많았다. 시에 집요하게 이야기 해 마침내 확장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수곡과 대평에는 어떤 일을 했나.
▲수곡면에는 면사무소 앞에 3거리가 있다. 이 길이 좁아서 큰 차는 턴을 할 수 가 없다. 그래서 여기도 확장계획을 수립해 확정지었다. 약 8억 5천만원정도의 예산이 들어간다. 대평면에는 대평 로타리 인근에 농산물 직판장을 건립하고 있다. 대평의 특산인 딸기와 수박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장소이다.
-초선으로서 일을 많이 했는데 시의원 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왜 어려움이 없겠나. 그러나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보람으로 느끼며 일하고 있다.
-시의원은 어떻게 해서 하게 됐나.
▲이현동 바르게살기 위원장을 할 때이다. 이현동 근처 유곡동은 참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여기에 집 고쳐주기 사업을 했다. 이것을 평가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겹치다 보니 주민들이 추천해줘 6대때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집고치기 사업은 돈이 많이 들텐데.
▲그래서 사업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설 전에 약15~20일간 이현동 사무소 앞에서 노점을 했다.
-어떤 노점인가.
▲건어물이나 과일 등을 가져와서 동사무소 앞에 천막을 치고 팔았다. 이것을 판 돈을 기금으로 삼아 집 고쳐주기 사업을 한 것이다.
-자기 일을 그렇게 하면 부자가 되었을텐데.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자기 일을 하는 것 보다 이렇게 노점을 해서 기금을 마련해 어려운 사람들 집을 고쳐주고 나면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종의 중독이 된다. 그렇게 해서 약 5년 동안 이 일을 했다.
-정말 힘든 일인데 혼자서 했나.
▲그렇지 않고 회원들이 함께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가.
▲중앙시장에서 나리 김밥을 하는 한호진 사장, 진주중학교 앞에서 향담이라는 식당을 경영하는 이원순 사장, 전업주부인 박경미 바르게살기위원장 등이 주로 함께 일을 했다.
-시의원 하면 돈이 들지 않나.
▲많이 든다.
-어떤 시의원은 돈이 안 든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잘 이해가 안 된다. 저의 경우를 보면 제 지역구에 동에서 인정한 단체가 120개나 된다. 또 제가 관리하는 사조직이 35개이다. 이외에 시단위 그룹들도 많이 있다. 하루 저녁에 가는 행사가 최소 5개는 된다. 이 가운데 3개는 가야 내 할 일을 한 것 같고 마음이 편하다. 이뿐 아니다. 제 지역구는 넓어서 한 달 기름 값만 100만원이 들어간다.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 의정비로 부족하나.
▲당연 부족하다. 아내가 꽃집을 하고 있는 데 아내가 보충해 준다.
-그럼 재정적으로는 마이너스겠다.
▲그렇다. 제대로 한다면 마이너스가 정상이다.
-부조는 하나.
▲부조는 법으로 못하게 돼있다. 그런데 이건 법이 잘못된 것 같다.
-왜 그런가.
▲예를 들면 제 큰 딸이 이번 12월22일 2시 과학기술대학에서 결혼을 한다. 그럼 저는 축의금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저는 받고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지 못한다면 이는 이상하지 않나. 그러나 현행법은 그렇게 돼 있다.
-이력이 어떻게 되나.
▲1957년 명석면 우수리 함박마을에서 태어났다. 용우초교, 진주남중, 진주기계공고, 경남과기대 미생물공학과를 졸업했다. 공고 졸업 후 부산의 태광산업에서 근무하다가 군 제대 후 진주에 정착했다. 진주에 와서 처음에는 진주 교육대학에서 근무를 했다. 교육대 학생들 군사교육요원이었다.당시에는 교대생들 하사관 후보생 제도가 있었다. 이 생도들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했다. 나중에 부산교육청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교대 직원을 그만둔 후 아내와 함께 다양한 사업을 했다. 현재는 아내가 꽃집으로 생업을 삼고 있다. 아이는 딸 둘과 아들이 있다. 딸은 모두 간호사이고 아들은 진주교대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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