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조직개편안 통과 막후조정역할 기억에 남아
시청 조직개편안 통과 막후조정역할 기억에 남아
  • 정리 김봉철 · 사진 이용규 기자
  • 승인 2012.12.0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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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효운 진주시의원

 
화려하지 않지만 지역구 일을 제대로 챙기는 의원이라는 평을 듣는 천효운 시의원은 정촌면에서 태어나 60년 이상을 정촌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다. 64세가 되어서야 시의원에 도전할 정도로 정치에 입문이 늦었으나 오랜 연륜으로 인해 시의회와 집행부 간에 어려움이 생기면 막후에서 보이지 않게 조정역할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시의원들의 맏형으로서 공사간에 어려움이 생기면 인생의 선배로서 상담역할도 병행하는 천 의원은 이창희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시청 조직개편이 벽에 부딪혔을 때 막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냈다. 당시 시청 조직개편안 중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분야가 농업기술센터가 본청에서 이전하는 문제였다. 농민단체들이 농업 홀대라며 극렬 반대하고 나섰던 것. 이러한 농민들의 반발을 천 의원이 직접 14개 농민단체 대표들을 만나 동의를 이끌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천 의원은 당시 이창희 시장과의 담판을 통해 국제농업박람회 개최 약속과 농민에 대한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내고 농민단체를 직접 설득하러 나선 것. 말이 쉽지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해 냈다. 그 외에도 내동면 쓰레기 매립장을 둘러싼 복잡한 민원을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서로간의 조정역할을 해 낸 것, 또 자신의 지역구 일이 아님에도 선학산 보행교에 대한 시의회의 거부감을 희석시켜 결국 통과시키도록 한 것 등 천 의원은 막후조정자로서 보이지 않은 역할 을 수행해 가고 있다. 다음번 선거에서도 출마하여 이번에 이루지 못한 시의회 의장의 꿈을 꼭 실현시켜 볼 것이라고 자신의 정치적 꿈을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는 나이 답지 않은 정치에 대한 의욕을 엿볼 수 있었다.

▲ 천효운 진주시의원은 본지 황인태 회장과의 대담을 통해 “나이 64세에 시의원에 도전하여 당선된 사람으로 사심없이 의정활동에 임하고 있다”고 밝히고 “다음번에도 출마해 꼭 당선되어 시의회 의장을 해보고 싶다”고 자신의 정치적 꿈을 이야기 했다.
다음은 천효운 의원과의 인터뷰 요지이다. 

-전반기 원 구성 투표에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는데.

▲그렇다. 저는 의장선거와 부의장 선거에 나섰다. 그런데 의장선거에서 세 번째 투표에서 1표차이로 졌다. 그런데 1표가 제 이름을 잘 못쓰는 바람에 나온 무효표였다. 제 이름이 천효운인데 강민아 의원이 천효윤으로 썼다. 그래서 무효표 처리됐다. 이름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다.
-이름을 정확하게 알기가 쉽지 않은 이름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호윤으로 알거나 천효윤으로 생각한다. 천효운으로는 발음하기도 어렵고 잘 모른다. 강민아 의원도 당연히 천효윤으로 안 것 같다.
-어떻게 해서 의장 선거가 3차 투표까지 갔나.
▲진주시의회 구성이 당시 한나라당 의원 10명, 비 한나라당 의원 10명이었다. 그래서 김두행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제가 비한나라당 대표로 출마했다. 원구성 비율이 이렇게 돼 있으니 1,2차 투표에서 10대 10으로 나왔다. 3차 투표까지 동수이면 나이가 많은 제가 의장이 되게 돼있다. 그런데 3차 투표에서 제 이름을 잘못 쓰는 바람에 김두행 의원이 의장에 당선됐다.
-운으로 봐야겠다.
▲저도 운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부의장에 출마한 것인가.
▲그렇다. 의장 선거에서 안타깝게 낙선하니 부의장에 출마하라고 해서 강우순 의원과 부의장 경선을 했다. 부의장 선거에서는 강민아 의원도 이름을 제대로 썼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제가 부의장이 됐다.(웃음)
-후반기 원구성에서도 부의장에 출마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는데 왜 출마하지 않았나.
▲당시 선거법 위반사항이 재판에 계류 중이었다.  그래서 정치 도의상 출마할 수 없었다. 또 제 3자의 불출마 희망도 있었다. 그래서 출마하지 않았다.
-선거법 위반은 어떤 내용인가.
▲제가 유권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는 내용인데 법원에서 80만원 벌금으로 종료됐다. 저도 잘 모르고 했던 일인데 결과적으로 물의를 끼쳐 죄송하다. 선거법이 너무 강화돼 사실 잘 모르고 행하는 경우도 많다. 저도 제 지역구 유권자가 아니라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것도 법에 위반이 되는 사안이었다. 다행히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처벌이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크게 교훈을 얻었다.
-초선으로서는 의장 출마와 부의장 당선이라는 쉽지 않은 성과를 얻었는데.
▲동료의원들이 잘 봐주어서 그렇다.
-이력이 어떻게 되나.
▲1947년 진주시 정촌면 출생이다. 정촌면에서만 60년 이상을 살았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예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천중학교를 나왔다. 고등학교는 울산공고를 졸업했다.
-왜 울산공고인가.
▲당시 형님이 울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래서 울산에 가서 공부했다.
-학교 졸업하고는 무엇을 했나.
▲울산공고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전신전화국에 근무했다. 현재 KT이다. 그런데 당시 전신전화국은 한 달 월급이 1만2천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시골에서 송아지 한 마리 키우면 연봉이 된다. 그래서 그만두고 고향인 정촌으로 귀향을 했다.

▲ 천효운 진주시의원이 지역 행사장을 방문해 주민들을 위로·격려하고 있다.

-귀향해서는 무엇을 했나.
▲주로 농사를 지었다. 당시 포도농사를 지었는데 진주에서는 제가 제일 처음 지었다.
-포도농사만 했나.
▲그렇지는 않고 농업회사 법인을 설립해 임차농을 했다.
-임차농이 무엇인가.
▲남의 토지를 빌려서 농사짓는 것이다. 당시 정촌, 내동 등에는 도시사람들이 산 토지가 많았다. 그런데 농사를 짓지 않으면 세금이 나오니까 다른 사람이 농사지어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임차농을 해도 세가 그리 높지 않았다. 이 임차농을 통해 그래도 돈을 많이 벌었다.
-사회생활은 어떤 것을 했나.
▲농사를 지으면서 남부농협 이사를 8년 했다. 그 외에도 정촌면 의용소방대일을 했다. 32년간 정촌면에서 의용소방대원으로 봉사했다.
-시의원은 어떻게 출마했나.
▲사실 저는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남부농협 이사를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조합장이었다. 친구가 조합장을 3번만 하고 4번째는 저한테 물려준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4번째 되자 친구가 계속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주민들이 지역을 위해 일을 해 보라고 권유해 출마하게 됐다.
-학교를 진주에서 나온 곳이 적어서 정치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다. 아무래도 학연이 적어서 정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학연 뿐 아니라 저는 혈연도 없다. 시골은 아무래도 혈연이 중요하다. 그런데 ‘천’가는  제 지역에 13명 뿐이다. 학연과 혈연이 없이 선거를 치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시의원에 당선됐나.
▲2010년 6대에 처음 시의원에 도전했다. 당시 미래연합이라는 정당의 후보로 출마했다.  제 지역구는 문산, 나동, 금곡, 정촌이다. 문산이 가장 인구가 많다. 그런데 6대 때는 문산 출신 출마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문산 표가 갈렸다. 그래서 제가 당선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운이 좋아서 당선되었는데 다음번에도 출마할 것인가.
▲지역구민들이 출마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번에 제가 의장을 했더라면 다음번에는 사실 출마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임기에 의장을 못했다. 그래서 한번 더 출마해서 다음번에 의장을 하고 시의원을 그만둘 생각이다.
-목표가 분명해서 좋아 보인다. 지난번에는 운이 좋아 당선되었다는 데 다음번에도 당선될 자신이 있나.
▲제가 부의장으로서도 최선을 다했고 나름대로 지역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있다. 지역민들이 충분히 평가해 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음번에는 공천제도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공천제 페지가 쉽나. 저는 회의적으로 본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새누리당 복당을 신청해 놨다. 지금은 대선 기간이라 복당이 쉽지 않은데 대선 끝나면 복당이 될 것 같다. 그러면 공천을 신청해 출마할 생각이다.
-지역구 사업 중 기억에 남는 일은.
▲6대 의회 개원하고 이창희 시장이 업무를 시작한 이후 행정기구 개편작업이 있었다. 행정기구 개편 중에서도 농업기술센터를 본청에서 내 보내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농민단체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던 일이 있다. 그래서 시장을 독대하여 본청에서 내보낼 때 발생할 여러 문제들에 대한 대책방안 마련을 약속받고 나서 농민단체들을 직접 설득했다. 14개 농민단체들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조례안을 통과시키도록 했다. 이때 시장과 담판과정에서 국제농업박람회가 도입된 것이다. 첫 해에 15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제농업박람회를 개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농업기술센터 이전에 동의해 준 것이다. 농업박람회는 지금 아주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시의원으로서 보람있었고 기억에 남는 일이다.
-내동면 쓰레기 매립장 관련한 민원도 적극적으로 해결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 내동면 쓰레기 매립장 주변 주민은 17년간이나 공해로 고생을 한 사람들이다. 올해 말이면 쓰레기 반입에 대한 진주시와 약속기간이 만료된다. 그런데 쓰레기 반입을 연장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폐기물 처리시설 및 주변 영향권에 있는 주민 135세대에 태양광을 설치에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고 주민과 합의했다. 이창희 시장이 한해에 5억씩 15억 원의 지원을 약속했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태양광 사업이 시작될 것이다.
그 외에도 쓰레기 매립장 중간 복토공사를 완료했고 침출수 집수정 진입로 그루빙 설치공사를 실시했으며 폐기물 자원화 공사, 매립가스 자원화 사업을 완료해서 전기가 내년 4월부터 생산되기 시작한다.
-고향인 정촌면 관련 사업은 없나.
▲정촌면 산업단지 조성이 12월말이면 완성된다. 그래서 정촌면 실이봉산에 해돋이 사업을 위해 팔각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진주시에서는 행사용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라고 해서 농정기획과와 녹지공원과에서 가로수 식재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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