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투표 안 해!
난, 투표 안 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12.06 14: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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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 시인 이상숙

“난, 투표 안 해!”

“ 엄마는 누굴 찍을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우편함에서 꺼낸 선거홍보물을 내밀면서 물었다.
“ 너, 선거의 4대 원칙 몰라. 그건 비밀이잖아!”
그러자 금세 좀 토라진 얼굴로 그 봉투를 뜯으며 1번부터 후보자들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읽어내려 가면서 독백조로 “아싸! 나도 이제 5년 후면 드디어 투표할 수 있다! 다음 대통령선거 때부터는......”
그게 뭐가 그리 좋은지 물어보려다가 그만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만 할 땐 나도 그랬으니까. 그때 얘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엄마, 오늘 XX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얘들이 선생님은 이번에 대통령 누구를 찍을 거여요 라고 묻자 XX샘이 뭐랬는지 알아!”
“ 난, 투표 안 해! 그랬다. 4.11 총선 때도 투표 안하고 데이트 했대. 참 한심하지!”
“ 그러면서 어떻게 선생님을 해? 적어도 교사라면 얘들아 엄마 아빠 꼭 투표하시라고 해라.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이들 앞에서 수업 중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 며, “ 요즘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다 선생이 아니고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정말 몇 명이 안 된다니까.”라고 푸념까지 곁들였다.
순간, 어릴 때부터 괜히 삼국유사와 그리스로마신화를 읽혀 역사를 좋아하도록 만들었나? 후회스러울 정도로 가슴이 철렁했다. 저 맘 때는 제 또래 아이들처럼 케이팝에 정신이 빠져서 이런 문제는 관심 대상이 아니길 바랐건만.
그러나 일제고사와 대입시험 등 교육제도의 근간이 대통령의 교육철학과 직결되어 있어 그런지 아이들은 의외로 선거에 관심이 많았다. 오히려 현실 정치에 무관심한 부모나 교사들보다 후보자들을 더 잘 꿰고 있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초등학교 6학년이면 투표와 참정권에 대해 다 배우는데 그게 뭐가 놀랄 일이냐고 되물었다.
반면에 교사와 그 부모 그룹들은 몇 번을 투표해 봐도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더라. 그러니 이젠 그 누구라도 기대도 안 하니까 투표도 안하고 싶다고 했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그 심정 백 배 공감도 간다. 솔직히 우리나라 유권자 중에 선거 세 번 이상 한 사람 치고 이런 생각 한번 안 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랴!
하지만 우리가 이런 감정적 차원에서 자기 선거권을 포기해서는 정말 곤란하다. 더군다나 국민들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교사나 공직자라면 더욱 그렇다. 전공이 사회과나 역사가 아니라고 당사자는 자기 변병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투표 안 해!” 라는 그 말을 내 뱉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또 다른 교원평가서 한 장을 만들고 말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모평가서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투표용지 한 장이 내 손 앞에 놓이기 까지 지난 수 십 년, 수 백 년, 아니, 수 천 년 동안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제 목숨을 그 제단에 바쳤던가를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여자들은 더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찍을 사람이 없어서 투표를 못하겠다고 말하기에 앞서 정 그러면 두 눈을 감고라도 투표장에는 가야한다. 기표소에 가서도 찍어줄 사람이 안 보이면 그때는 기권 표를 행사하더라도.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이고 이 선거는 곧 내 투표권 한 장 이기에 이런 아름다운 꽃밭으로의 초대장을 찢어버리면 이는 잔치판을 짓밟고 훼손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민주시민의 에티켓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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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사랑 2012-12-17 17:17:41
초등학생 아이가 뒷짐지고 나라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 진지한 표정을 보면 엄숙(?)하기조차 합니다. 저의 한 표는 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소중한 한 표입니다. 지난 선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투표소로 갈겁니다. 그리고 너희의 엄마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너희의 미래를 생각하는 부모로서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을 꼭 보여 줄 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