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중용’의 해제(解題)
‘대학’과 ‘중용’의 해제(解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7.1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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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한국국제대학교석좌교수
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대학’·‘중용’은 본래 ‘소대례기(小戴禮記)’중의 2편이다. ‘예기’는 공자 문하의 70제자가 기록한 것이라고 하나 그 저작 연대는 전국시대 말년인지 또는 전한 때인지 설이 일정치 않다. 그 가치도 원래 ‘논어’·‘맹자’의 훨씬 아래에 있는 것이나 송대의 정이(程?)가 이 두 편을 ‘예기’에서 빼내어 특별히 제창하였고 송의 주희(회암晦庵)가 ‘논어’ㆍ‘맹자’와 더불어 사(자(子))서(사서(四書))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그 순서는 ‘대학’ㆍ‘논어’ㆍ‘맹자’ㆍ‘중용’이었다. 이러하여 근 7, 8백 년 이래 이 두 편의 지위는 갑자기 높아져서 거의 여러 경서들을 능가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 하겠다.
 소편인 ‘대학’ 한 권이 본래 누구의 소작(所作)인지 알 수 없으나 주희가 짐짓 ‘경(經)’과 ‘전(傳)’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놓고 말하기를 ‘경’의 1장은 대개 공자의 말을 증자가 조술한 것이고 ‘전’의 10장은 증자의 생각을 문인들이 기록한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모두 추측에 속하는 것이고 실증이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주희는 또 그 책에 자기의 이상과 전적으로 부합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잘못 끼어든 글이라고 단정하고 임의로 순서를 뒤바꾸어 놓았으며 또는 탈락된 것이 있다고 하고 스스로 ‘격치(格致)’ 전(傳) 1장을 지어서 보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실로 학자적 태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어서 명·청 시대에 내려오자 ‘대학’을 제 경서와 나란히 세울 뿐만 아니라 주희가 보충한 ‘전’을 거의 공자의 말과 동일시하기에 이르렀다. 중간에 왕양명이 ‘고본대학(古本大學)’을 주장하여 주희가 고치고 보충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대학’그 자체를 중시하는 관념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청초에 진건초(陣乾初)(확(確))라는 이가 ‘대학변(大學辨)’ 1편을 써서 이 책이 공자와 증자가 지은 것이 아님을 역설하고 또 “‘대학’이 오로지 ‘지(知)’를 말하고 ‘행(行)’을 말하지 않은 것은 공자가 가르치는 법도와 상반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이 처음 세상에 나타나자 공격이 벌떼같이 일어나 일제히 성인을 비난하는 무법한 말이라고 하였고 그 후로는 ‘대학’의 내력에 대하여 문제 삼는 사람도 없이 사서의 제일 첫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대학’에 나오는 ‘치지격물(致知格物)’네 글자는 무수한 이론을 불러일으켜 이를 논하는 저작이 이루 헤아릴 수 없으나 요약하면 공자가 사람의 덕을 행하는 첫걸음을 가르친 말이라 하여 이 말을 체득하지 못하면 아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으로는 ‘대학’1편은 진(秦)·한(漢) 연간의 한 유생의 말에 불과한 것이며 원래 이처럼 존중하여 고수할 만한 가치는 없다고 하겠다.
 ‘중용’을 주희는 “자사(子思)가 지어서 맹자에게 전수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근거 없는 말이다. 책 속의 어떤 구절은 맹자의 말을 따서 약간 고친 곳이 있는데 최동벽의 고증에 의하면 이 책은 ‘맹자’이후에 나온 것이 틀림없다. 내용 중에 인간의 ‘심’과 ‘성’을 논한 것은 매우 정련된 말이 많으며 철학사상에 대단히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대학’과‘중용’은 유가의 두 명저임에는 틀림없고 이를 읽으면 수양에 매우 유익하며 또한 사람들이 송습한 지가 1천 년에 가까워 국민상식의 일부분을 형성하였으므로 오늘의 학자가 불가불 일독해야 할 책이다. 다만 너무 지나치게 숭앙할 것은 없으며 그것은 도리어 그것에 알맞은 위치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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