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日(애일)의 마음
愛日(애일)의 마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12.2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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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관광과
▲ 진주보건대학교 관광과 길인숙

애일은 사전적 의미로 해를 아낀다는 뜻이며, 부모를 봉양하는 데 조금도 태만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경북 안동에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농암(聾岩) 이현보(李賢輔)의 ‘애일당’이라 불리는 별당이 있다. 중종 7년 이현보의 나이 46세 때 이 별당을 짓고 나이 90세를 넘긴 노부의 늙어 감을 아쉬워하여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에서 당호(堂號)를 애일당(愛日堂)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면 아래로는 아이의 진로 문제를 통해 공부를 하고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지켜보며 또 다른 인생 공부를 하게 된다. 언제나 나의 삶에 중추가 되어주실 것 같았던 부모님들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30년 후를 연상하게 된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나 역시 병들고 노쇠해져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어쩔 수 없는 수용을 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식물생태분야로는 세계적인 학자였고, 오로지 평생 연구 활동에만 전념하셨다. 정년퇴임하시기 전까지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등만 많이 보았던 것 같다. 늘 책상 앞에서 연구하시는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 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식물채집을 하셨고 간혹 어린 나를 동행하면 산에 있는 나무와 풀이름을 알려주시며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게 들려주시곤 했다. 학생들에게 매몰차면서도 실력을 인정받았고, 우수한 학자도 많이 배출하셨다.
하지만 정년퇴임을 하셨고, 그 때의 사진을 보면 큰 눈에 허전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그 당시 미국유학 중이어서 가족이 보내준 사진을 보았는데, 멀리서도 그 느낌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후에도 연구 활동은 지속되었고, 학교수업도 꾸준히 하셨지만 70세가 되면서 그만두셨다. 그러다가 파킨슨 증세를 보였고, 지금은 본인의 생리활동을 통제하지 못할 만큼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컴퓨터로 논문을 쓰고 계신다. 읽어보면 내용이 맞지 않고, 학회지에 싣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꺾지 않으시는 걸 보면 안타깝다. 우리 형제들과 사위들이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서 도움을 드리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다. ‘이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셔도 되는데..’라고.
놀아봐야 노는 방법을 안다고 했던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맏이인 나는 마음이 복잡하다. 어릴 적 가까이 다가가기엔 어렵기만 했던 분이셨는데, 이젠 멀리 사는 자식들에게 보고 싶다고 오라고 하시고, 자주 모습을 보이기를 원하신다. 왜 좀 더 일찍 그렇게 다가가지 못했을까 아쉬운 마음이 많다. 일전에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께 다니러 간 적이 있었다. 터미널에서 택시로 곧 간다고 전화를 드린 후 집 근처에 갔는데 어두운 골목 저 앞에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가 넘어져 못 일어나신 채 땅바닥에서 얼굴만 들고 계시는 것이었다. 우산을 들고 집 앞에 나오시다 넘어지셨고, 얼굴과 손, 무릎이 깨져 엉망이면서도 웃으시며 우리를 맞으셨다. 우산살이 다 부러지고,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그 고고하고 학식 있는 모습은 어디로 가고 병들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으셨는가. 그러나 우린 지금의 아버지가 더 소중하고 좋다. 조선시대 학자 농암 이현보가 90세 넘은 아버지를 위해 하루하루를 아끼는 의미를 담아 별당을 지은 그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나 역시 하루하루가 아깝다. 바쁜 일을 젖혀 두고 조금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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