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석 칼럼- 관상 봐주고 죽도록 매 맞은 사건
윤창석 칼럼- 관상 봐주고 죽도록 매 맞은 사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6.19 17: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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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석/시인
윤창석/시인-관상 봐주고 죽도록 매 맞은 사건

한국전쟁의 여운이 강원도 깊은 산골 물 여울 따라 귀곡성처럼 울고 있는 1960년 초겨울이다. 동부전선 최전방 문등리 계곡의 눈바람은 차가웠다. 산과 계곡이 온통 흰 눈으로 덮여있고 창공의 달빛은 교교(皎皎)하여 고향 생각이 간절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보초를 서고 식당으로 가는데 선임하사인 윤 중사가 식사를 하고 자기를 좀 보자고 한다.

제대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윤 중사는 늘씬한 키에 얼굴이 갸름하고 신사풍의 모습이다. 제대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윤중사는 무슨 걱정이 있는지 말이 적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윤 병장이 나를 불렀다.

“윤 병장이 관상을 잘 본다고 하던데 내 관상을 한번 봐 주게”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귀상도 아니고 천하의 천한 상이었다. 코는 칼날같고 미간은 찌그러져 있고 하관은 빨아져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귀상으로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니 빈상(貧相)입니다. 재물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좋은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겠습니다. 이럴 때는 마음을 넓게 먹고 심신수련을 해야 좋은 운을 말날 수 있습니다. 관상과 운명은 스스로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습니다.” 위로의 말까지 하고는 막사를 나왔다. 보름쯤 지났을까 윤 중사가 나를 찾는다고 한다. 관상을 다시 볼려고 나를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중대본부로 달려갔다.

나무 때는 난로는 벌겋게 달아 있고 내무반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윤 중사는 연탄 월말 보고서 작성을 엉터리로 했다는 업무 트집을 하면서 주먹이 날아왔다. 그때서야 얼마 전에 봐준 관상 때문에 분풀이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윤 중사의 구둣발이 내 정강이를 강타했다. 순간 나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윤 중사는 물푸리 나무 몽둥이로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려쳤고 나는 기절을 했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것을 알고는 정신을 차렸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위생병의 응급치료를 받았고 며칠간을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지냈다.

제대 선물로 나에게 매타작을 하고 간 윤 중사가 어떻게 사는지 꼭 한번 만났으면 했는데, 그 사람 소식을 몇 해 전에 들었다. 속초 부둣가에서 고기를 운반해 주는 품팔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십년이 지난 후 설악산 단풍 구경을 가면서 그 사람을 찾아갔다. 윤 중사는 부인과 일찍이 이혼하고 홑몸으로 노동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요즘 와서는 몸이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떤 사이냐고 묻길래 군대 생활하면서 관상을 봐주고 매맞은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고기 파는 여인들이 자기들 관상을 한번 봐달라며 매달리는 것을 겨우 뿌리치고 동해안 밤바다를 따라 내려왔다.

나는 신기(神氣)가 있는지 가끔 신통 하게도 내 예견이 맞아 들어서 겁이 날 때도 있긴 하다. 타고난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노력만 하면 바꿀 수 있다. 운명을 바꿀려면 먼저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마음은 타고난 천성이다. 천성을 바꾼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 어렵다. 그런 노력만 하면 운명이 바꾸어진다. 마음은 항상 너그럽고 여유 있게 가져야 한다. 조급하면 실패가 많고 욕심이 많으면 반드시 재물에 손실이 있고 몸에 해롭다,

부부간에는 서로 존경해야 한다. 무시하고 천대하면 결국에는 파탄이 온다. 내 주위에 궁합이 너무 나쁜 부부가 살고 있다. 원진살(元嗔煞)이란 것이 있다. 이 살은 서로 미워하는 살이다. 그리고 부인은 고과살(孤寡煞)이 있고, 남자는 패가망신살(敗家亡身煞)이 있다 그런데도 두부부가 너무나 정답게 잘 살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음식점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주방 일을 보고 여자는 손님맞이를 한다. 눈빛만 봐도 뜻이 어떤가를 알고 마음과 뜻이 척척 잘 맞는다. 이 두 사람은 손님한테나 부부간에 인상을 쓰거나 성질을 내는 일은 한 번도 못봤다. 서로 아끼면서 존경과 사랑으로 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 이들의 성품을 좋게 만든 것은 종교의 힘이다. 처음에는 어려운 살림을 살면서 의견충돌이 있었는데 남편이 부인을 위로하고 달래면서 미래의 희망을 종교의 교리로 힘을 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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