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일제 욱일기, 한국 650만명 학살
진주성-일제 욱일기, 한국 650만명 학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1.18 15:5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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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일제 욱일기, 한국 650만명 학살

일제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 아래에서 우리 민족 650만 명이 학살(총살,피납,교전,행불,사형언도,징병,징용,살육)되었다. 1894년 동학란 의거부터 학살이 시작되었고 민비(명성황후)시해 사건, 남도 대토벌작전, 피납, 의병들과 교전 등으로 광복 1945년 8월 15일까지 최소한 우리 민족 650만 명이 학살되었다.

우리나라 인구가 일본 인구의 40%밖에 안되는 이유가 위와 같이 죽었고 일제의 총알받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욱일기(旭日旗)는 일본 에도시대(1603년경)부터 일본 전통 문양, 상징이 되었다. 욱광(旭光)은 일본 황실 가문을 나타내거나 민간에서 출산, 명절, 결혼, 축하식에 등장한다.

1870년 5월 명치 유신 때 욱일기를 군기로 인정했고 해군에서도 채택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침략 전쟁을 전개하면서 육군, 해군본부에서 욱일기를 전면에 내걸게 했고 패랑 섬에서 일본 기지에 독일 해군 보트가 파견되었을 때 독일 해군을 위한 일본군 황명식이 열렸다. 이때 독일 나치의 상징인 하겐크로이츠와 함께 나란히 게양되었다. 일본은 각종 모임, 종친회에서도 고유 문양이 정해져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면서 일본군도 해체되었고 욱일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54년 7월 자위대가 창설되면서 욱일기가 등장하게 되었고 부산에서 국방부 직속 해양소년단 본부가 창설되어 13세~18세 소년병을 조직하면서 일제에 대항하는 조직이 생겼다. 일본 해상 자위대는 변형된 8줄 욱일기를 채택하였고 항공 자위대는 단순한 붉은 원을 사용하게 되었다. 일본 해상 자위대 창설 7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우리 해군을 초대하자 그 전에 참석한 전례가 있다면서 동해에서 해상 자위대를 향해 경례를 실시하니 박카(馬鹿) 한국이라고 놀리고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인들이 욱일기를 관중석에 달고 외치다가 철거되기도 했다.

일본은 2000년대부터 우경화되었고 아베가 행동으로 옮겨 독도와 가야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적극적으로 교육하다 자국민에 의해 총살되었다. 2015년부터 자위대의 자위권이 가능하다. 방위비를 국가 예산의 2% 증액을 발표했다. 곧 제2 위안부, 제2 징병, 징용이 실시되고 또 650만 명이 학살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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