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봄
중년의 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3.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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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시인

중년에 피는 꽃이라고 꽃마저 중년이랴. 중년에 부는 바람이라고 바람마저 중년이랴. 초록의 봄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첫사랑 입술 같은 봄이여! 내 사랑이 개나리로 물들어 노랗게 피는 것은 가슴에 묻어둔 그대, 아직도 그리운 까닭이며 내 사랑이 진달래로 물들어 분홍 꽃으로 피는 것은 추억에 새겨둔 그대, 아직도 못 잊는 까닭이며 내 사랑이 장밋빛으로 물들어 빨갛게 피는 것은 못 잊어 보고픈 그대, 아직도 사랑하는 까닭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밤, 잊었던 노래가 생각나는 것은 내 청춘의 봄날을 기억하는 까닭이며 아무도 부르지 않는 아침,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은 가슴에 사무친 그대, 문득 만나고 싶은 까닭이다.
애써 초연한 뜰에도 바람 한 잎 꽃 소식이 불어오면 연둣빛 편지지에 새싹 같은 사연을 쓰고 싶은 것은 떠나도 못 떠난 그대, 내내 안부가 궁금한 까닭이다.

꽃잎의 날개마다 나비는 춤추고 잃었던 노래는 그대를 부르는데, 긴 잠 깨어난 추억의 오솔길을 걷노라면 솔바람에 흔들리는 풀 포기가 그대 속눈썹처럼 고운데, 지저귀는 새소리 차마 홀로 듣고 못 가는 것은 나 그대 사랑하기에 이 봄이 너무 짧은 까닭이다.

나이가 들수록 꽃이, 꽃빛이 예쁜 것은 놓아버린 인연의 애잔함 때문일까. 앞뒤 세월에 꽃은 만발하여도 어쩌다가 꽃잎의 인연으로 살지 못하고 바람처럼 불어가고 물처럼 흘러가버린 사람이여! 천지에 봄이 오고 지천에 꽃이 피면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잊혀져간 그 하나하나의 꽃 이름 떠올리면, 초록빛 숨결로 무지갯빛 꿈을 꾸고, 활짝 핀 꽃 가슴엔 꽃 향기가 가득하다.

중년의 봄이라고 봄마저 중년이랴. 피는 꽃은 만발하여도 내 꽃 하나 그리워 자꾸만 꽃잎으로 물들여지는 가슴, 오늘은 왠지 꽃을 사고 싶다.

꽃은 사람이 좋아 자꾸만 피는가/ 사람은 꽃이 좋아 사랑을 하네/ 내 나이를 묻지 마라/ 꽃은 나이가 없고 사랑은 늙음을 모르지/ 그러나 꽃의 아픔을 모른다면 사랑의 슬픔을 모른다면/ 쓸데없이 먹은 나이가 진정 부끄럽지 않은가

-이채의 시 “중년의 가슴에 3월이 오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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