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부터 흘러나오다
빛으로부터 흘러나오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5.3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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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조/ Premiere  발레단 단장
지난 26일, 급히 일과를 마무리한 뒤 아내 정두순씨와 함께 해운대 문화회관을 찾았다. 부산에 자리한 채, 대표인 신승민씨와 단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점점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M-note 현대무용단이 준비한 무대가 우리를 반길 터였다. “빛으로부터 흘러나오다 - streaming out from the light”라는 제목이 붙은 움직임의 향연. 기대가 컸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작년 언젠가 부산의 한 극장에서 봤던 “Mr. Nobody”(안무 및 출연: 신승민)라는 작품을 떠올렸다.

“힘, 해석을 향한 힘의 무한한 증가”, “영원회귀”, “차이와 반복”등의 니체-들뢰즈 철학적 화두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라벨의 ‘볼레로’를 작품음악으로 선택한 과감함, 또 들뢰즈가 “기관 없는 신체”의 개념을 가다듬는데 영감을 불어넣었던 프란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을 무대 위로 옮겨 놓은 듯한 안무, 무대구성, 그리고 움직임의 고안을 위한 치열함 등이 떠올랐다. 이제 내 귀에는 다시 그 ‘볼레로’의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다.

Scene 0.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세기). 볼레로의 아름다움이 관객들을 하나둘 적셔가는 가운데 무대의 전면을 가로지르는 일자의 불빛이 길게 늘어진다. 그 위에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한 남자 무용수. 빛의 단선적 움직임위에 겹쳐진 움직임들은 바닥에서 서서히 꿈틀대다가 급기야는 일어서서 빠르게 소용돌이치듯 변해간다. 마치 현대인을 지배하고 있는 통시적 과학적 시간관을 형상화한 듯 뻗어가는 일자의 조명 위, 그 시간관의 폭력에 희생을 강요당하는 일그러진 현대인, 그리고 그 폭력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고통스러운 움직임들... 해방인가? 이제 문 하나를 둔 무대장치 위로 빛, 파동, 그로 인해서 생성되는 파장들이 한데 어우러진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영상이 비친다. 이제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무너져 내린 듯 보인다.

2.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반야심경)과 3. “빛의 속력은 인간의 눈으로 가시적인 사이클 수를 측정할 수 없지만 공간을 이동할 때의 진동을 들을 수 있다”(하인리히 헤르츠)가 선취되는 순간이며, 4. “‘바끔히 입을 열고 있는 공허한 공간’ 카오스”(헤시오도스-신통기)가 열리는 순간이다. 무용수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낸다. 가상과 현실의 구분자체가 무의미한 시공간적 변화에 적응해 가는 인간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여럿이서, 때로는 혼자서... 서로 다른 시공간을 점유하는 데서 오는 차이를 존중하려는 모습들이 내 눈앞에 가득하다:

9. “살아남는 종은 강한 종(種)이 아니고, 또 똑똑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 (찰스 다윈). 관객들의 눈들이 움직임에만 익숙해질 무렵, 갑자기 무용수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주 해학적이다. 객석에서는 유쾌한 웃음들이 터져 나온다. 8.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르네 데카르트). 7. “생각의 구름을 걷으라, 그러면 내면의 푸른 하늘이 보일 것이다. 깊은 침묵과 무념의 상태에서 순수한 다르샨(darshan) 즉 지켜봄만 있다”(오쇼 라즈니쉬). 6. “몸과 마음이란 의식이 사라진 자에게는 더 이상 헤아릴 기준이 없다”(숫타니파타).
 
5.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비트겐슈타인). 이 모두가 한꺼번에 성취되는 장이다. 무용수들은 “지켜보고 있다”, “침묵하라”, “나는 생각한다” 등의 말들을 무작위로 쏟아내며, 언어의, 언어에 의한, 언어를 위한 인간인식의 능력과 지평의 한계를 조롱하는 듯하다. 마이크 하나가 내려온다.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하게 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바라보는 기대와 두려움의 역설을 극복하려는 의지, 이러한 현대인의 삶에 드리우는 운명을 사랑해야만 하는 삶의 당위성: 1. “amor fati...”(프리드리히 니체). 삶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사랑할 때, 삶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부정성의 경계와 어둠은 걷히고, 다시 0. “광명은 한량이 없어 ‘시방(十方)’의 온누리를 비춘다”(아미타경). 무용수들은 퇴장하고 음악은 계속 흐른다. 끝인지 아닌지 관객들이 의아해 하는 가운데 공연은 끝이 나고, 다시 ‘볼레로’... 시작과 끝은 아무것도 아니다. 끊임없는 해석의 미숙함이 지닌 힘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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