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회상
중년의 회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5.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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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시인

강 건너 저 산 위에 삶이 있는 줄 알았다. 깊고도 푸른 강을 건너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살아가는 일인 줄 알았다. 키보다 깊은 강물의 출렁임, 거부할 수 없는 그 무게와 부피에 남아 있는 호흡이 가파라져와도 저 강을 건널 수만 있다면 저 산을 오를 수만 있다면, 그곳에서 천국의 새를 만나고, 숲을 만나고 훨훨 날으는 행복을 만날 줄 알았다. 불혹을 걸어 지천명에 닿아도 높은 산보다 더 높은 욕심아 깊은 강보다 더 깊은 흔적만 남겼구나. 건너지 못할 강둑에 서서 이순, 아니 그 이후에도 못 오를 저 산을 바라본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하늘은 하나구나.


거품처럼 사라질 꿈일지라도 그것을 의지하고 그리고 믿으며 살아왔다. 언제나 저 바다에 배를 띄우고 보이지 않는 항구를 꿈꾸며 끝없는 항해를 시도했지. 무슨 욕망을 더 갖겠는가. 하늘의 표정이랄까, 바다의 마음이랄까.

중년이 되어가는 나이에 얼만큼의 고독과 외로움을 뉘고, 인생이라는 집, 그 집에서 힘겨운 여로는 고요히 쉬고 싶다. 아무래도 과거의 내가 아니기에 무엇을 봐도 이제는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그럴수록 사람의 나이에 스며드는 것은 왜 이렇게 외로운 것인지. 세상은 내게 덤을 주지 않았거늘 외로움은 왜 덤으로 오는 것인지. 시간은 빠르고 나이는 들어만 가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없이 나의 존재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오늘도 날은 지고 밤은 또 오는가.

버려야 할 것들은 버려야 했다. 포기해야 할 것들은 포기해야 했다. 잊어야 할 것들도 잊어야 했다. 그래도 남은 것들이 아직은 많아 언제쯤이나 가벼워질 수 있을까. 새벽 꿈에 맥박이 뛰고 아침 공기에 다시 꿈을 마시며 가로수 길을 누빈다. 오늘도 짙푸른 가로수 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복잡한 하루의 이야기를 꺼내 다시 읽어보고 지울 것을 지우려 애를 쓴다. 삭제라는 것,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그래도 웃음짓게 하는 몇 가지들이 용기로 남아 퍼덕이는 하늘, 그 푸른 하늘에 죽어도 용기만은 살아 남고 싶다.

왜 그랬을까.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아침이 오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스스로 묶여 얼굴을 붉혔던 후회, 한때 빠져나올 수 없어 힘겨웠던 공간에서 삶의 면적을 넓히려 얼마나 깊은 고뇌를 했던가. 허허로운 욕망에 써버린 시간들 만에 하나라도 돌려 받을 수 있다면 유유히 날으는 새들과 푸른 노래를 부르리. 갓 피어난 꽃들에게 말을 건네리. 어제 내린 비, 그 오후의 무지개가 참으로 아름다웠노라고..
-‘중년의 회상’ 이채의 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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