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황금고사리산 약초농원 김성윤 대표
<1>황금고사리산 약초농원 김성윤 대표
  • 정리 한송학·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3.06.11 20: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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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농사는 욕심내면 실패 3년이 되면 돈이 보인다

▲ 김성윤 황금고사리 농원 대표는 자신은 처음에 고사리를 심어 소득을 바로 올릴 수 있었던 게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경우는 짧은 시간에 소득을 올렸지만 일반적으로 약초는 소득이 발생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사정에 맞추어 품종선택을 잘하는 게 약초농사 성공의 키워드라고 말했다. 사진은 농원에서 약초를 손질하고 잇는 김대표와 부인 이정임여사.

김성윤 왕산약초판매장 대표(50)는 전형적인 귀농 약초인이다. 2006년도에 산청으로 귀농하여 햇수로 8년 째이다. 김 대표는 현재 산청군 금서면 주상리에 왕산약초판매장과 금서면 방곡리에 황금고사리 산약초 농원을 운영하고 있다. 귀농 약초인으로는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게 산청군의 평가이다. 김 대표 자신도 귀농할 때 함께 온 큰 아이가 벌써 대학4학년이다. 산청에 와서 지금까지 먹고 살았고 아이 세 명을 키웠으니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김 대표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산청으로 귀농한 이유는 한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중장비 일을 할 때부터 서울생활이 너무 싫어 시골로 가야지...하고 있는 데 우연히 방곡에 왔다가 지금은 이웃이 된 법전암 원신스님을 만났다. 스님을 만나고 나서 바로 산청으로의 귀농을 결심해 버렸다. 워낙 창졸간의 일이라 가족들과 상의할 틈도 없었다. 2006년 추석 때 일이다. 추석 연휴에  법전암에 가족들을 데려와서 여기로 와서 살거라고 하니 모두들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아내도 남편이 언젠가는 농촌에 가서 살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갑작스럽게 귀농을 하자고 하니 눈물만 났다. 당시는 농원에 전기도 수도도 없었다. 그런데도 김 대표는 그해 11월에 기어이 지금은 황금고사리 농원이 된 방곡리 오봉마을 600고지의 산 1만6천 평을 2억2천5백만원에 사서 귀농을 해 버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해 학교를 마치고 2007년 초에 합류했다. 아내 이정임 여사는 처음 남편이 사 두었다는 산에 가보고는 기겁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길도 나 있지 않아서 걸어서 산에 가는데 한나절이 걸렸다. 해가 있을 때 아랫마을에서 출발했는데 산에 도착하니 밤이 되었다. 전기도 없고 물도 나오지 않아 정말 울고만 있었다. 울고 있으니 귀농을 권유한 원신스님이 너무 무안해 하는 것이었다. 스님에게 미안해서 눈물을 훔치고 정신을 차렸다. 또 울어 봤자 되돌릴 수도 없는 터라 마음을 추스르고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데 정말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이정임 여사도 이제는 오밤중에도 혼자 산에 올 정도로 익숙해졌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산청 오지에서의 약초농사가 이제 제법 자리가 잡혔다. 자신들만의 약초판매장도 생겼고 그 때 심은 고사리 등이 제법 소득이 된다. 산에다가 심은 호두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 아직 성공했다고 내세우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미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현재 상태로만 가도 3년 후에 1억 이상의 소득은 느끈히 된겠다는 게 김 대표의 전망이다. 김 대표는  약초농사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김 대표는 자신은 워낙 급작스럽게 귀농을 결정했지만 약초농사는 준비만 잘하면 전망 있는 분야이고 누구나 잘 해 나갈 수 있는 분야라고 했다. 귀농한 후 3년이 되니 산에서 돈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김 대표는 그러나 약초농사는 욕심을 내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고 한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주변에서 욕심내면서 약초농사 한 사람은 모두 울면서 다시 도시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늘 법정스님의 소욕지족(小欲知足)이란 말을 되새기며 살고 있다. 왕산약초판매장 김 대표의 책상 앞에 소욕지족(小欲知足)이란 경구가 걸려있었다.                                                                      /편집자주

▲ 김성윤 대표가 처음 산을 사서 지은 집. 전기도 없고 물도 없었는데 지금은 전기도 끌여 왔고 지하수도 팠다. 앞으로 여기에다가 황토집을 지어 아픈 사람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고 한다.

2006년 11월 한 스님의 권유에 그 자리에서 귀농 결심

-언제 귀농을 했나.
▲2006년 11월 달에 귀농했다.
-원래 산청출신인가.
▲아니다. 경북 청도가 고향이다.
-그런데 어떻게 산청으로 귀농을 하게 됐나.
▲방곡리 공개바위 있는 곳의 법전암의 원신스님 때문에 그렇게 됐다.
-어떤 이야기인가.
▲원신스님을 두 번 만났는데 여기에 산이 1만6천평이 있으니 사서 오라고 해서 두말도 않고 따랐다.
-원신스님은 원래 아는 사람인가.
▲아니다. 전혀 모르던 분이다.
-그런 중요한 결정을 말 한마디에 따른다는 말인가.
▲저는 인생에는 다 그 사람이 가야할 자리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는 여기 이 자리에 있어야 될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스님 말을 듣자마자 따랐다.
-그 산이 지금 황금고사리 약초농원인가.
▲그렇다.
-그 산을 2억2천500만원을 주고 샀다는 말인가. 한 평에 1만4천원 정도 하는 셈인데.
▲그렇다. 알고 샀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스님이 좋은 땅이라고 해서 산도 보지 않고 샀다.
-스님이 사기꾼이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나.
▲지금까지도 그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이 땅의 가격이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이 땅에 오고 나서 저한테는 새로운 삶이 열렸다. 원래 이 땅은 조계종 종정을 하신 법전스님이 욕심을 내던 땅이다. 제가 이 땅을 사고 나서 법전스님이 와서 땅을 팔라고 하셨다. 그런데 땅을 팔고 나면 할 일이 없어서 못 판다고 했더니 할 일이 없으면 해인사에 가서 할 일을 만들어 줄 테니 팔라고 하셨다. 그런데 스님이 마침 법전암을 지으신다고 용돈을 다 써 버려서 당시 땅 살 돈이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팔지 않아도 됐다. 그런 인연으로 이 땅을 제가 가지고 있고 이 땅으로 인해 결국 성공이 왔다.
-법전암은 조계종 종정을 하신 법전 스님의 법명을 따 지은 암자인가.
▲그렇다. 원신스님은 법전스님의 제자이다. 원신스님은 100만 배를 하신 스님이다. 하루에 5천배씩 일요일에만 쉬고 꼬박 8개월에 걸쳐 100만 배를 하셨다고 한다. 우리 같은 사람으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다. 우리나라에 100만 배를 한 스님이 몇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 한 분이다. 스님 자신은 100만 배를 하고도 도를 통하지 못한 한심한 사람이라고 하는 데 평소에 스님이 하시는 것을 가만히 보면 도를 통하신 분 같다.

▲ 김 대표의 야심작인 호두나무. 김 대표는 농원에 5백주의 호두나무를 심었다. 3년이 되었는데 내년부터는 열매가 나올 거라고 한다. 호두나무는 10년생이 되면 한 나무에서 일 년에 30만원의 소득이 가능하다.

|서울생활할 때 언젠가는 시골에서 농사짓겠다 생각

-왜 귀농을 하려고 했나.
▲서울에서 중장비 사업을 했다. 돈도 잘 벌었다. 그런데 돈을 버는 게 너무 힘이 들더라. 이렇게 돈만 벌어서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아무래도 시골에 와서 살 팔자여서 그랬는가 싶다. 그래서 이곳 저곳을 다녔다. 2006년 여름 휴가 때 우연히 오봉마을에 왔다. 계곡이 참으로 좋았고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원신스님을 만났고 추석 때 와서는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았나.
▲땅 사고 가족들 법전암에 데려와 이야기 하는 데 아내와 아이들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 마침 큰애가 고등학교 다녔는데 정말 아이들이 많이 울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모두 데려와 함께 살았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아이들 둘은 커서 대학에 갔고 막내는 중학생인데 함께 살고 있다.

▲ 황금고사리 농원에서 방목되고 있는 염소들. 김 대표는 풀이 하도 자라서 풀을 베기 보다는 차라리 염소를 키워서 풀을 뜯어먹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염소를 방목해 키우고 있다. 그런데 염소들이 희한하게 약초들만 뜯어먹는다고 했다.
처음 와서 고사리는 바로 소득이 될 것 같아 심었다

-처음 와서 무엇을 했나.
▲처음 와서 할 일이 없어서 지금 농장에 고사리를 심었다. 2006년 11월에 왔으니까 그때부터 심었는데 그 다음해 아직 고사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돈도 다 써버리고 빈털터리가 됐다. 그 다음해 6월에 이웃마을인 생초에 있는 레미콘 공장에 중장비 기사로 취직을 했다.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다시 취직을 했다. 기술이 있으니 여기서도 취직은 되더라.
-그럼 취직생활을 얼마나 했나.
▲그해 겨울까지 했다. 봄이 되니 농장에 심은 고사리가 나서 그 고사리 채집하느라 직장에 다닐 수 없었다.
-그때 이후는 돈 벌러 중장비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됐나.
▲그렇다. 고사리가 나고부터 소득이 생겨 돈 벌러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됐다. 물론 충분한 돈은 아니다.
-그게 황금고사리인가.
▲그렇다.
-왜 황금고사리인가.
▲황금 고사리는 스님이 지어주신 이름인데 브랜드이다. 실제 이름은 지리산 먹 고사리이다. 지리산 먹 고사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이 좋은 고사리 품종이라고 한다. 실제 매년 약초축제가 열리면 이재근 산청군수께서 지인들을 제 부스에 모시고 와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고사리”라고 홍보하시고는 지인들보고 사라고 하신다. 그 덕분에 황금 고사리가 유명해졌다.

▲ 김 대표 농원 이웃집 풍경. 김 대표보다도 2년 전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 들어올 당시 신장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아예 치료를 포기한 상태였다고 한다. 김 대표가 8년 되었으니 이웃은 벌써 10년째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당시 병원에서 포기한 사람이 아직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고사리 연 매출액이 4천만 원 정도 나가

-1년에 판매액이 얼마정도인가.
▲요즈음은 연간 4000만 원 정도 된다.
-그 정도면 생활이 되지 않나.
▲그렇다. 적지 않은 돈이다. 시골에서 이만한 규모의 돈을 버는 게 쉽지 않다.
-고사리만 하나.
▲그렇지는 않다. 3년생 호두나무를 500주 심었고 1500평에 오미자를 심었다. 또 감나무도 있고 더덕도 심었다. 봄에는 고사리와 취나물, 여름에는 고추, 가을에는 오미자, 겨울에는 곶감을 하도록 구성했다. 이렇게 계절마다 해야 돈의 흐름이 원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연간 소득은 얼마나 되나.
▲고사리가 4000만 원 오미자가 1000만 원, 그 외 취나물, 고추, 더덕, 곶감 등에서 소득이 나온다. 약 7000만 원 정도가 나온다.
-그 정도면 좋은 편 아닌가.
▲저는 만족한다.
-앞으로 전망은 어떤가.
▲호두나무를 500주 심었다. 3년 지났는데 내년부터는 열매가 나온다. 내년부터도 열매가 나오니까 어느 정도는 소득이 될 거다. 호두나무는 10년생이면 한 나무에 30만원의 소득이 나온다고 한다. 그럴 경우 호두에서만 연간 1억5천만 원이 되니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 김 대표의 왕산약초판매장 전경. 왕산은 원래 지리산 약초의 메카였던 곳이다. 이곳에 김 대표는 2010년 5월 판매장을 열었다. 원래 산청군이 만든 것인데 비어있던 것을 김 대표가 사용허가를 받은 것이다.
산에 3년 다녔더니 산에 돈이 보이더라

-언제 수지가 균형이 되든가
▲귀농 후 3년 지나니까 되더라. 3년이 지나니 산에 가면 돈이 보였다. 이제는 무엇을 하면 될지 안다. 이렇게 노하우가 생겼다는 게 가장 큰 소득이다. 노후가 보장된 셈이니까.
-이곳 왕산약초판매장에서는 소득이 나오지 않나.
▲여기서도 매출이 나온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최근에는 소문이 나서 점점 고객이 많아지고 있다.
-판매장은 언제부터 했나.

▲2010년 5월에 오픈했다.
-어떻게 해서 판매장을 하게 되었나.
▲원래 이 판매장은 산청군에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할 사람이 없어서 비어 있는 것을 제가 사업계획서를 군에다가 제출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판매장과 함께 탕제원을 한다.
-탕제원은 왜 하게 됐나.
▲고객들이 약초를 사가서는 잘 해 먹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만들어서 주는 게 고객들에게 편리하다. 또 산청에는 물이 좋지 않으냐. 그물로 약을 달이는 것과 도시에 가서 수돗물로 다리는 것은 차이가 있다. 지금은 단골들이 생겨서 아예 전화만 하면 달여서 택배로 보내준다.

▲ 김 대표의 왕산약초판매장에 진열된 약초들. 판매장에는 지리산에서 채취된 자연산을 취급한다. 김 대표 자신이 직접 지리산에서 약초를 채취하기도 하고 약초꾼을 통해 자연산 약초를 수집하여 여기서 판매한다.
2010년 5월 왕산 약초판매장 오픈

-여기 약초는 어떻게 수집한 것인가.
▲주로 제가 야생에서 채집한 것이고 어떤 것들은 산청에서 재배한 것들이다. 주로 자연산을 원칙으로 하여 판매하고 있다.
-김 대표가 직접 채약하나.
▲농장의 일이 뜸하면 지리산에 올라가 채약을 한다.
-주로 어떤 종류를 채약하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약초란 약초는 다 한다. 아무리 흔한 약도 꼭 필요한 사람이 있더라. 채집해 놓으면 꼭 찾는다. 저는 약에는 임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약초에 대해 잘 아나.
▲공부를 많이 했다. 약용관리사 자격증도 땄다.

지리산에서 캔 산삼은 가족이 모두 먹어

-지금까지 지리산에서 캔 약초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무언가.
▲아무래도 산삼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산삼을 보고도 그냥 지나갔다. 원신 스님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은 데 스님은 두 세뿌리를 캐는데도 저는 한 뿌리도 못 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하다 보니 눈이 트이더라. 지금은 잘 캔다.
-지금까지 몇 뿌리나 캤나.
▲열 뿌리 이상은 캤다.
-캐서 어떻게 했나.
▲산삼은 모두 가족들이 먹었다. 하나도 팔지 않았다.
-효과가 있던가.
▲산삼은 진짜 효과가 있다. 제 막내가 키가 크지 않은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산청군 초등학교 체육대회에 나가서 씨름에서 1등을 했다. 그리고 2단 줄넘기도 선수다. 특별히 훈련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 산삼을 먹어서 그런 것 같다. 산삼은 어릴 때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마 막내 녀석은 커서도 건강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지리산에서 산삼은 주로 어디서 나나.
▲왕산에서 고동재로 해서 오봉 마을 뒷산 500~700m 정도에 있다.
<그것을 가르쳐 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배석한 이정임 여사가 말렸다. 그랬더니 김 대표는 가르쳐 줘도 일반인은 알 수가 없다며 괜찮다고 했다.>
-지금도 가면 산삼을 캘 수 있나.
▲바로 캘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면 반드시 캘 수 있다. 
-그 외 귀한 약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천삼도 귀한 약재인데 주로 남자들에게 좋다고 한다. 치료목적이 아니고 보약으로 사용한다. 지리산 1300m 고지에 가야 볼 수 있는 약초이다. 향기가 아주 좋은 약초이다. 두릅나무처럼 생겼다.

야생 하수오는 정말 머리가 검어진다

-김 대표가 경험한 약초 중 좋은 것은 어떤 것들인가.
▲야생 하수오는 정말 머리가 검어진다. 제가 머리가 원래 하얗게 되었는데 하수오를 먹었더니 밑에서부터 머리 색깔이 검어지더라. 제가 직접 경험했다. 그래서 하수오는 진짜 머리가 검어지는 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고객 중에서는 좋은 약초를 경험한 사람이 없나.
▲비수리라고 일명 야관문이라 불리는 약초가 있는 데 그리 귀한 약초는 아니다. 야관문이라 불리는 것은 밤에 문을 연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정력제로 쓰인다. 제 판매장에 부부가 와서 사갔는데 다음에 부인이 와서 남편이 귀찮아 죽겠다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봤다.
-병을 고친 고객은 없었나.
▲부산에 사는 청년인데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다고 찾아왔다. 그래서 개똥쑥 하고 와송을 권했다. 그랬더니 달여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유의태 약수터에 가서 물을 받아다가 개똥쑥하고 와송을 달여서 보내줬다. 효과가 있었는지 그 이후에도 몇 번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다. 그런데 그 후에 찾아 와서 엄마가 나았다고 선물을 사가지고 왔었다. 아들이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인데 효성이 지극했다. 너무 고마워했다.

유방암에 걸린 환자 개똥쑥과 와송 먹거 낫는 것 봐

-고객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에 어떤 것이 있나.
▲저는 십전대보탕을 권한다. 어디에서나 알 수 있는 처방이고 약재만 제대로 쓰면 효과가 있다.
-어떤 약초든 구해달라고 하면 구해줄 수 있나.
▲시간만 충분히 주면 구해줄수 있다.
-직접 가서 채약하나.
▲직접 하기도 하고 또 저는 약초꾼 네트워킹이 있으니까 제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부탁하면 된다.
-산청에 와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처음에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병이 들었다.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병원에 가봤다. 제일병원에 갔었는데 무슨 병인지 알지를 못하고 대학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래서 경상대학병원에 가서 정밀진찰을 하는 데 온몸의 근육이 다 파열돼 있다고 했다. 심장근육까지 파열이 돼 심장이 뛰다가 말다가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요령이 없이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 병은 다 나았나.
▲다 나았다. 그리고 이제 그런 병이 걸리지 않는다. 요령이 생겼다. 일도 너무 욕심내면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마을 사람들과는 어떤가.
▲마을 사람들과 지내기가 참 어렵다. 귀농한 사람끼리만 어울리면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고 하고 그렇다고 접근하기도 쉽지 않고... 귀농하는 사람들의 최대 고민일 거다. 제 경우는 마을일을 많이 해 준다. 그렇게 해서 마을 사람들과 마음의 문을 열었다.
-술친구도 많나.
▲술친구는 서울 생활보다 더 많다. 시골사람들이 술은 더 잘 마신다. 그런데 시골에서 마시는 술은 도시에서 마시는 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술을 마시는 것이 즐겁다.

약초농사는 욕심내면 반드시 망해

 -후배 귀농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저야 워낙 급작스럽게 귀농을 했다. 요즈음 귀농하는 사람들은 준비를 많이 하더라. 그래서 철저히 준비하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약초농사는 전망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몇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첫째 귀농하려면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3년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과 싸워서 일이 안 된다. 저도 아내랑 많이 싸웠다. 돈이 없으면 힘들어지고 그러면 서로 원망하게 된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난다. 싸워서 돌아가는 사람을 많이 봤다.
-두번 째는 무엇인가.
▲부지런해야 한다. 약초농사는 다른 농사도 마찬가지이지만 풀과의 싸움이다. 풀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은 성격이면 절대 농촌에 오지마라.
-세번 째는 무엇인가.
▲세번 째는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약초농사는 욕심내면 반드시 실패한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초농사는 그렇더라. 그냥 자연이 좋아서 도시의 팍팍한 삶보다는 자연과 지내는 것이 좋아서 해야 한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지만 원래 돈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시골보다는 도시로 가야한다. 그런 사람은 시골에 살 수 없다. 저는 늘 소욕지족(小欲知足)을 마음에 새기면서 산다. 지금 보시다시피 제 책상 앞에 소욕지족이라고 써 붙여 놓고 산다. 약초농사는 돈 외에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성공한다.
-욕심내다가 망한 사람 봤나.
▲제 주변에서 많이 봤다. 돈 다 깨먹고 울며불며 가는 것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약초농사는 조그만 꿈을 가지고 하도 보면 반드시 성공한다.
-앞으로 어떤 약초가 전망이 밝다고 생각하나.
▲저는 산양삼이 밝다고 보고 삼채도 밝다고 본다. 초석잠도 많이 하는 데 산청에 하는 사람이 많아서 별로 전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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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6-02-06 11:48:05
기사 내용 중 야간문이 아니라 야관문(夜關門)이죠.아울러 산림청 고시 제18조의3(보호종의 굴취·채취 금지 등)에 의하여 산작약,산청목,천삼 등은 채취금지 보호종입니다.천삼 보호해야할 귀한 식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