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지리산 최고의 약초꾼 김종선씨(상)
<4>지리산 최고의 약초꾼 김종선씨(상)
  • 정리 한송학·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3.06.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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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약초 하동 구례방면 없고 산청 함양방면 많아

▲ 김종선 선생은 완전한 채식주의자다. 그냥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멸치국물도 먹으면 속이 뒤틀려서 고생을 할 정도이다. 그래서 15년 전부터는 곡식과 자신이 심은 채소이외에는 먹지 않는다. 그럼에도 70이 넘은 나이에 건강한 것을 보면 채식을 한다고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에 살고 있는 김종선(71)선생은 지금은 은퇴했지만 지리산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약초꾼이다. 약초꾼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2살에 산을 타기 시작해 은퇴할 때인 65세까지 53년을 지리산에서 약초꾼으로 살았다. 김 선생은 6년 전부터는 더 이상 돈도 싫고 일하는 것도 싫어서 약초꾼을 하지 않고 있다. 특별한 사람의 부탁이 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소일거리 외에는 약초를 캐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리산에서 약초와 관련된 사람들은 김종선 선생이 최고의 약초꾼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김종선 선생은 육식을 전혀 하지 못한다. 원래 제대로 된 약초꾼이라면 육식을 하기가 어렵다는 게 약초꾼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약초꾼들은 된장 하나면 반찬이 충분하다. 된장을 싸가지고 가서 산에 있는 약초를 캐 반찬을 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채식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약초꾼들의 생태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약초꾼들은 대부분 채식주의자가 많다. 김 선생은 원래부터 육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15년 전부터는 아예 고기 근처에도 가지를 못한다고 한다. 어쩌다가 고기를 먹기라도 하면 배탈이 나서 고생을 엄청 한다. 김 선생은 그냥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선, 심지어 멸치와 젖갈류도 먹지를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김 선생은 외식을 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식당에 가자고 해도 식당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식당에는 갈수가 없다. 김 선생은 언제나 집에서 자신이 심은 채소류와 밥으로만 식사를 한다. 김치도 소금에 절인 정도밖에 만들 수 없다. 먹을 수 없어서 그렇다.
이렇게 채식만 하고 살지만 건강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집안의 유전으로 혈압이 높기는 하지만 그것만 빼면 지금도 잔병은 앓지 않고 지낸다. 보통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만 하면 힘이 없고 피부가 빨리 노화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김 선생의 경우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로 15년 이상을 살았는데도 김 선생은 힘은 팔팔하고 나이에 비해 그리 늙어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어려서부터 좋은 약초를 많이 캐 먹은 약초꾼과 일반인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긴 하겠다. 그러나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건강을 잃을 것이라는 점은 김 선생을 보면 사실이 아닌 것 같다.                                   /편집자 주

▲ 김종선 선생은 지리산약초꾼이 모두 인정하는 최고의 약초꾼이다. 그런데 지금은 은퇴해 특별한 사람의 부탁이 아니면 약초를 캐지 않는다. 김 선생은 약초꾼은 하다보면 저절로 미치게 되기 때문에 되도록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12살 때 약초 캐기 시작해 65세에 은퇴

김 선생은 약초꾼은 되지 말라고 했다. “요즈음이야 약초꾼이 되려는 사람도 없겠지만 약초꾼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미치게 돼 있어요. 그래서 가정도 팽개치게 됩니다. 약초에 미치는 것이 도박에 빠지는 것보다 더 지독해요. 약초에 빠져 지내다가 약초를 어느 정도 알겠다 싶으면 이미 나이가 다 들어버려요. 인생이 다 지나가야 약초에 대해 조금 알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되도록 후배들에게 약초꾼은 되지 말라고 합니다. 별로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김 선생 자신도 평생 혼자 살았다고 한다. 가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혼자 사는 습관이 되다보니 지금도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한다. 김종선 선생은 그러나 효심이 지극해서 몇 년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를 평생 모시고 살았다. 이런 이유로 김혁규 경남지사에게서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김 선생이 처음 약초꾼으로 산에 다닐 때는 정말 약초가 무궁무진했다. 지금은 산림이 울창해져서 약초가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조식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덕산 덕천서원 근처에 감태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습니다. 당시 감태봉에는 시호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어요. 시호는 해열제로 주로 사용되는 데 당시에는 약이 많이 없던 시절이라 시호에 대한 수요가 많았어요. 약방에서 시호를 캐달라는 주문이 많았어요. 그러면 산에 가기만 하면 한 짐씩 해가지고 내려올 정도로 시호가 지천이었지요.”
김 선생은 자신이 처음 약초꾼으로 활동하던 때를 회상하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초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많던 시호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감태봉에 가도 시호를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요즈음 약초가 사라진 것은 사람들의 남획 보다는 숲 때문이라는 게 김 선생의 진단이다.
“약초가 아무리 음지식물이라 해도 일정량의 햇빛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숲이 울창해지면 햇빛이 들어오지 못해 약초가 자라지 못해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산불이 나거나 벌목 등으로 나무가 없어지면 어디서 왔는지 약초가 자라기 시작한다는 게 김 선생의 이야기이다.  김 선생은 약초는 오랫동안 발아를 하지 않다가 발아할 여건이 되면 싹이 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김 선생 이웃집의 구리뽕 나무.
쥐치에서 나오는 자초롱, 어린아이에게 최고의 영약

김 선생은 요즈음 볼 수 없는 약초가운데 귀한 것으로 쥐치(자초)를 들었다.
“당시에는 야생 쥐치가 흔했어요. 그런데 요즈음에는 야생 쥐치(자초)는 거의 찾기가 어렵게 됐어요. 이것도 숲이 울창해져서 그렇습니다. 쥐취는 보약 중의 보약인데 야생 쥐치를 하나 먹으면 평생 추위를 타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약효가 좋아서 약초꾼 사이에는 산삼과도 바꾸지 않는 게 쥐취입니다. 그런데 쥐취에는 재미있는 것이 있어요. 쥐치를 캐다가 보면 뿌리 근처에 쌀눈 처럼 생긴 혹이 있어요. 뿌리와 줄기가 갈라지는 곳에 하얗게 붙어있습니다. 이것을 자초롱이라고 합니다. 이 자초롱은 흙에 떨어지면 녹아버려요. 그래서 자초롱을 캘 때는 종이를 깔고 틀면 종이에 떨어집니다. 이를 모아서 한지에 싸서 보관하는데 이 자초롱을 젖먹이 어린아이에게 먹이면 열 살까지는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 영약입니다. 그런데 이 자초롱은 재배하는 쥐취에게서는 볼 수가 없어요. 야생 쥐치에만 생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약초이지요.”
김 선생 동네에서도 쥐치를 캐 먹은 사람은 평생 병치레를 하지 않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그만큼 쥐취는 몸에 좋은 영약이다. 김 선생은 요즈음은 야생 쥐취를 찾을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한다. 요즈음은 재배 쥐치가 시중에 많이 나오는 데 재배쥐치는 약효가 없다고 했다.

▲ 김 선생 댁에 있는 반하. 김 선생은 해수·천식에 쓰는 약초라고 했다.
왕더덕 캐먹고 12년간 점심 안먹어도 배고프지 않아

김 선생이 약초를 캐면서 먹은 약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더덕이라고 한다. 32살 때인가 현재의 동의보감촌 주변 왕산 근처에서 1.8l짜리 패트병만한 더덕을 캤다. 그런데 한 입 먹으니 너무 매워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싸가지고 집에 가지고 왔는데 아버지가 더덕을 보시고는 좋은 약이니까 얼른 먹으라고 해서 억지로 한입씩 베어 먹었다.
“억지로 먹고서 이불에 기대어 누웠는데 잠이 들었어요. 아버지가 일어나라고 고함을 쳐서 일어났는데 벌써 해가 졌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는 저를 보더니 너 얼굴이 왜 그렇느냐,고 하시는 거예요. 더덕을 먹고 얼굴이 빨개져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더덕을 먹고 저는 그 이후 12년간 약초 캐러 산에 갈 때 점심을 안 싸가지고 다녀도 배가 고프지 않았어요. 정말 그 더덕은 신기할 정도로 효과가 좋았습니다.”

▲ 김 선생 댁에 가다가 만난 50년생 뽕나무 군락. 오디 수확이 한창이엇다. 12그루 나무에서 나오는 오디가 4천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지리산에서도 하동 구례 방면은 약초가 없어

약초는 주로 음지 식물이다. 그래서 약초가 많기로 유명한 지리산에서도 하동이나 구례는 약초가 없다. 지리산에서 약초가 가장 많은 곳은 지리산 하봉에서부터 현재 엑스포가 열리는 동의보감촌이 들어서 있는 왕산 주변이라는 게 김 선생의 주장이다. 그 중에서도 왕산주변에는 없는 약초가 없을 정도로 약초의 보고였다고 한다.
“구례, 하동, 남원의 뱀사골 주변도 약초가 없습니다. 약초는 지리산 중에서도 산청과 함양의 마천면 정도에 있습니다. 지리산 약초는 대부분 하봉에서 지금 엑스포 행사장이 들어서있는 동의보감촌 주변 왕산 일대가 약초의 주산지였습니다. 왕산에는 수백종류의 약초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어요. 지금은 그 많던 약초가 다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왕산 주변에는 봉삼을 비롯하여 야생 약초가 더러 나옵니다.”
김 선생은 지리산 약초라고 해서 지리산 전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청과 함양의 마천면 정도에 약초가 있고 다른 곳에서는 약초를 거의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선생이 활발한 약초꾼 활동을 하던 60~70년대에 약초꾼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이 하봉 일대인 지금의 치밭목 산장 주변의 산들이다.
“당시 이 산에는 약초꾼들이 모여 살았어요. 약초꾼들이 며칠씩 바위굴에서 잠을 자면서 약초를 캘 정도로 약초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지요. 그런데 희한한 게 치밭목 산장 주변에는 산돼지도 많았어요. 그래서 약초꾼과 산돼지들이 서로 부딛힐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산돼지가 신기하게도 약초꾼들은 잘 피해 다니는 것입니다. 잘 모르고 온 등산객들은 산돼지에 부딛혀 사고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약초꾼은 그런 사람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어요.”

산돼지들이 산신령의 부탁을 받아서 그런지 약초꾼하고는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 김 선생 댁에 있는 이름 모를 약재나무. 김 선생은 이 나무의 이름은 절대 가르쳐 줄 수없다며 비밀이라고 했다.
산청 왕산 동의보감촌 주변이 약초의 보고

김 선생이 지리산 약초의 보고로 들고 있는 곳은 동의보감촌 주변의 왕산이다. 왕산과 필봉 일대가 지리산에서는 약초가 가장 많이 자라는 곳이었다는 것.
“지금 동의보감촌이 들어서 있는 왕산은 수많은 약초의 보고이기도 하지만 특히 봉삼이 많았어요. 지금은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돼 있지만 사실 독성이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 약초입니다. 이 봉삼이 왕산 주변으로 자생하고 있어 지천으로 많습니다.”
김 선생은 요즈음 유행하는 봉삼이 당시에는 그리 좋은 약초로 쳐 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왕산 주변에는 봉삼 외에도 백부자, 초롱단, 현삼, 자연초 등 귀한 약초가 많이 자생했다고 한다.
“약초라는 게 꼭 심산유곡에 들어가야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주변의 야산에도 얼마든지 귀한 약초가 있습니다. 오히려 야산에 좋은 약초가 더 많아요.”
심산유곡에 있는 약초로 귀한 것으로 김 선생은 천삼을 들었다. 천삼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약초이다. 꼭 두릅나무처럼 생겼다고 한다. 심장에 아주 좋은 약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데 잘은 모른다고 했다. 신선들이 먹는 약초란 전설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천삼도 지금은 잘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선생이 보관하고 있던 천삼의 향을 맡아보니 정말 좋은 향이 뭍어 나왔다.
산토끼풀도 왕산 주변에 있는 귀한 약초이다. 약명은 속단이라고 하는 데 뼈마디를 힘 있게 쓸 때 필요한 약이라 차력약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다고 한다.

▲ 김 선생 집에서 만난 땅두릅. 뼈가 아플 때 먹는다고 한다
산청군 단성면 칠정리 앞 자양뒷산에 백하수오가 많아

“자양뒷산에 가면 백하수오가 많았어요. 당시는 백하수오가 지천으로 깔려있었는데 요즈음은 사람들이 남획을 해서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어요.”
김 선생은 자양뒷산에는 백하수오가 많아서 약방에서 백하수오를 찾으면 그날로 여러 뿌리를 캐서 줄 수가 있었다고 한다. 백하수오는 적하수오를 구할 수 없어서 대용으로 쓰다가 대중적인 약초가 된 것인데 자양뒷산이 군락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양뒷산은 도회지인 진주에서 가깝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그 많던 백하수오 군락지가 다 사라졌다고 한다.
“또 자양뒷산 산에는‘모학년’이라는 약초가 있었어요. 정식 이름은 산연풀인데 잎은 연꽃처럼 생기고 뿌리고 사람 머리카락 처럼 생겨서 모학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어요. 이 약초는 다양한 처방에 들어가는 데 음식먹고 죽을 정도로 아플 때 먹으면 신기하게 잘 나아요. 요즈음은 식중독 약이 많아서 큰 문제가 없는데 당시는 약이 없을 때라 배탈이 났을 때 먹으면 신기하게 잘 나았습니다.”
단성면 칠정리 앞의 자양뒷산에는 당시 약초가 많아서 많은 약초꾼들이 몰려들었던 곳 중 한 곳이라는 게 김 선생의 이야기이다. 자양뒷산도 약초가 많기로 유명한 봉우리 중의 하나였다는 것.

▲ 김 선생 집에 있는 구룡목 묘목. 큰 구룡목에서 열매가 떨어져 자연 발아돼 생긴 것들이다.
‘구룡목’ 군락지, 지금도 조개골 독바구 먼당에 있어

“지리산 하봉에서 조개골 쪽으로 가다보면 독바구 먼당(산등성이의 경상도 사투리)이 나옵니다. 그 주변에 지금도 구룡목(九龍木)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는 아름드리 나무도 많았는데 지금은 아름드리 나무는 없고 그래도 제법 군락지를 이루어 구룡목이 살고 있습니다.”
구룡목은 지리산 이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지리산 대표 약초나무이다. 간질환과 근육통, 근육마비, 허리아픈데, 중풍, 신경통, 관절염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지리산 일대 사람들은 오갈피나무, 엄나무, 마가목, 구룡목, 산뽕나무를 지리5목이라 하여 귀한 약재로 친다. 구룡목은 아직 한약계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앞으로 연구과제가 많은 약초나무라는 게 경남과기대 신용욱 교수의 주장이다.
김 선생은 경남도에 구룡목이 퍼지게 된 게 자신 때문이라고 했다.
“28살 때 독바구 먼당에서 구룡목을 가져다가 집에 심었습니다. 지금 그 구룡목은 아직도 제 집 앞에서 잘 커고 있습니다. 그것을 동네에 사는 양신필이라는 사람이 제 집 나무에서 묘목을 얻어다가 번식을 해서 경남도 전역에 보급을 했습니다. 구룡목은 꽃이 하얗고 청조한 게 관상수로도 좋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박사문 선생댁에 있는 구룡목도 제집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김 선생은 박사문 선생댁에 있는 세 그루의 구룡목이 김 선생 자신의 집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계리 박사문 선생 마당에는 세 그루의 구룡목이 있어 매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 김 선생의 뜰에는 50년이 넘은 산작약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에서 캐다 심은 것 들이다.
‘마가목’군락지 지금도 가현마을 뒷산 선굴산에 있어

김 선생은 지리5목의 하나인 마가목 군락지도 아직 지리산에 있다고 한다. 마가목은 금서면 방곡리 가현마을 뒷산 고등재 위에 있는 선굴산의 7~9부능선에 가면 군락지가 있다는 게 김 선생의 이야기. 방곡리는 6.26때 국군에 의해 민간인이 대량 학살된 지리산의 오지이다. 민간인 학살로 인해 가현마을 오봉마을 등이 당시 초토화 되었었다. 지금은 방곡리에 학살추모공원이 조성돼 있다. 지리산 둘레길 5구간이 지나가는 중간에 고동재가 있다. 이 고동재 위에 선굴산이라고 있는데 여기에 마가목 군락지가 있다는 게 김선생의 주장. 필자는 아직 선굴산에서 마가목 군락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김 선생과 함께 마가목 군락지를 방문해 보고 싶다.
 마가목 역시 수형이 아름답고 가을이 되면 빨간 열매가 있는 것이 아름다워 요즈음은 관상수로도 많이 쓴다. 엑스포가 열리는 동의보감촌에 가면 마가목을 많이 심어 놓았다. 마가목은 나무의 껍질이나 열매를 약용으로 쓰는 데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다. 열매는 천식을 억제한다. 열매를 술을 담가 마시면 기관지에 좋아 감기예방이 되기도 한다는 게 약초꾼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김 선생은 마가목의 효능에 대해 조금 다른 주장을 했다.
김 선생은 마가목이 신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보신제라고 한다. 그런데 신장을 튼튼하게 해 준다고 해서 정력제라는 말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소변이 강해지고 성기가 튼튼해지기는 해도 그것을 바로 정력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김 선생은 강조했다.
“선굴산 주변에 가면 ‘왕등습지’라는 습지가 있어요. 산위에 습지가 있는 경우가 드문데 여기는 있어요. 이 왕등습지에 석창포가 많았어요. 60~70년대에는 석창포가 지천으로 있었는데 남획으로 다 사라졌어요. 그랬던 것이 지난해 봄에 가보니 석창포가 또다시 군락을 이루고 있어요. 이렇게 약초군락지가 한번 사라지고 나서 다시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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