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약초농사의 달인 박의관 선생
<5>약초농사의 달인 박의관 선생
  • 정리 한송학·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3.06.1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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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전 작약농사로 시작해 수 없이 많은 약초 재배

▲ 박의관 선생은 평생 약초농사를 지었지만 자신은 약초를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최근들어 술을 많이 마셔 간이 나빠졌는데 헛개나무를 보름감 먹고 완전히 나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헛개나무 농사를 지었으면서도 병이 나아지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고 했다.

대전-진주 고속도로 단성인터체인지를 나와 우리나라에서 제일아름다운 마을 1호인 남사예담촌이 나온다. 예담촌의 고가들을 보면서 계속 직진을 하다 보면 남명조식선생이 은둔했던 덕산으로 들어서게 된다. 덕산에서 삼장면 이정표를 보고 10km쯤 가다보면 홍계리가 나오는 데 여기서 2km쯤 더 올라가면 상촌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 지리산 약초농사의 달인 박의관 선생이 살고 있다. 지금은 이 마을까지 이렇게 길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삼장이라고 하면 지리산에서도 오지중의 오지였다. 해발도 높아서 마을이 해발 400m에 이를 정도로  예전에는 구름도 쉬었다 가는 지리산의 골짝 중에서도 골짝이다. 지리산의 골짝이다 보니 오히려 지금은 고랭지 사과농사로 유명해져 부농들이 많다.

▲ 박의관 선생은 50년이 넘게 작약농사를 지었다고 말하고 자신의 약초농사 경험으로 볼때 약초농사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시작하면 다른 농사에 비해서는 소득이 좋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이 산골에서 50년이 넘게 약초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떠나지 않은 약초농사꾼이 박의관 선생(70)이다. 박 선생은 이곳에서만 꼭 51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나갈 때 자신은 이곳이 좋아서 그대로 눌러앉아 약초농사를 지었다. 그랬더니 요즈음은 웰빙시대가 되어서 그런지 다 늙은 사람을 찾아 언론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박의관 선생은 원래 남해출신이다. 그런데 스무살에 홍계리 아랫동네에 있는 내원사에 일하러 왔다가 이 동네의 산과 물이 좋아서 그대로 눌러앉고 말았다. 박 대표는 내원사에서 대웅전 짓는 일이 있어서 그 일을 하러 왔다가 이 동네가 좋다보니 일이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고 눌러앉았다. 처음에는 동네에서 논을 빌려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 모두 도시로 나가는 게 대세였는데 자신은 그냥 이 동네가 좋았다고 했다. 박 선생도 처음에 약초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던 어느 해 지독한 감기를 알았다. 약방에서 약을 지어 먹어도 감기가 낫지 않았다. 보름이나 기침이 멎지 않고 몸에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면소재지에 있던 한약방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원장선생님이 약을 두 첩 지어주면서 먹어 보라고 했다. 두 첩 밖에 되지 않아 모자라는 것 같아 몇 첩 더 지어 달라고 하니 일단 먹어보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겨우 두 첩 먹으니 그렇게 낫지 않던 감기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박 대표는 약초라는 게 그리 간단하게 볼 게 아니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길로 약초농사를 시작했다. 평생의 일이 시작된 것이었다.

박 대표가 처음 시작한 것은 작약농사였다. 한약방에 물어보니 작약을 제일 많이 사용하고 또 재배도 용이하다며 작약을 재배하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시작한 작약농사가 50년도 더 지났다. 박 선생은 그 이후 수도 없이 많은 약초를 재배했다. 평생 아이들 셋을 대학 보내고 장가보내서 다 대처로 내 보냈다. 지금은 부인과 함께 둘이서 이 산골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나이도 들고 그래서 약초농사를 그만 지을까 하고 생각도 해 보지만 그래도 찾는 사람이 있어서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박 선생은 약초농사는 부지런한 것 외에는 다른 비법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약초농사는 부지런한 것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게 평생의 경험을 통한 박 선생의 약초 농사론이다.  박 선생은 또 약초농사는 길게 보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 오늘 내일 성과를 낼 것이라고 보고 조급하다가는 실패하는 게 약초농사의 본질이라고 했다. 편집자 주

▲ 작약밭:박선생의 대표약초 작약. 약 6백평정도의 밭에 작약을 재배하고 있었다. 5년 이상 된 것들이라고 했다.
지금은 대부분 작약농사 계약재배 통해 팔고 있어

박의관 대표는 작약농사를 평생 했다. 그런데 요즈음이 작약농사가 제일 쉽다고 했다. 대부분 계약재배를 하기 때문에 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렇다. 이렇게 계약재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산청군이 매년 여는 약초축제 때문에 그렇다. 약초축제에 작약을 가지고 나가서 팔았더니 작약을 써 본 사람들이 스스로 연락을 해 와 계약재재를 하게 됐다.
“6~7년 전이예요. 작약을 팔고 작약 논에 풀을 매고 있는데 한의사 두 분이 오신거예요. 경주 실로암 한의원하고 거창 일신한의원 원장들이었어요. 직접 와서 보고는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요. 그리고는 계약서를 써 가지고 왔으니 계약재배를 하자고 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제가 써보지도 않고 어떻게 계약을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약초축제에서 사서 써보고 지리산 작약이 좋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고 왔다는 거예요. 그분들이 직접 왔던 것은 축제장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제로 제가 그렇게 재배하는지 눈으로 보고 확인하러 온 것이었어요. 제 말대로 농사를 짓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계약을 하자고 했어요. 그때부터는 쭉 계약재배를 하고 있어요.”
박 대표는 지금까지 작약농사를 지으면서 제초제나 비료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퇴비  등을 통해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해 준다고 했다. 이렇게 농사를 짓다보니 지금은 믿는 사람이 많아져서 판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또 남는 것은 경남생약조합에다가 판매를 위탁하기 때문에 직접 판매를 하는 그런 걱정은 없다고 했다.

▲ 천마: 천마는 참나무 원목에다가 뽕나무 버섯균을 심은 다음 버섯균이 나오면 종마종자를 심는다. 올해는 수확이 끝났다.
천마도 농사 지은 지 40년 넘어

박 대표는 작약 다음으로 오래 농사를 지은 게 천마라고 했다. 그런데 천마는 재배하는 데 기술이 필요하다. 천마농사는 두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참나무 원목에다가 뽕나무 버섯균을 심는다. 그래서 뽕나무 버섯균의 균사가 나오면 그때 천마 종묘를 심는다. 천마는 흙에서 양분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뽕나무 버섯의 균사에서 영양분을 취하기 때문에 그렇다. 천마 농사가 이렇게 복잡하기 때문에 초보 농사꾼들이 도전하기에는 쉽지 않다고 했다. 박선생도 많이 실패한 이후에야 지금은 별 어려움이 없이 천마농사를 짓게 됐다.
“천마는 투자비가 많이 들어요. 참나무 원목을 준비해야 하고 뽕나무 버섯균을 심어야하고 그리고 다시 천마종마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천마 농사는 초보 농사꾼이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잘못하다가는 투자비를 잃을 수가 있어요. 천마농사는 욕심을 가지지 말고 천천히 경험을 쌓아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저도 지금은 농사면적을 많이 줄여서 200평 정도 천마를 재배하고 있어요. 이렇게 재배량을 줄였더니 이 천마가 없어서 팔지 못해요. 올해도 수확해서 다 팔고 가을에 엑스포 위해 조금 남겨두었어요.”
박 대표는 천마는 농사가 까다로워 귀농한 후배들이 바로 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천마 가격은 좋아서 농사를 지으면 제법 돈이 된다고 했다. 박 대표는 천마는 말려서 쓰는 게 좋다고 했다. 한의원에서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쪄서 말린 것을 주로 사용하는 데 천마의 특효가 열을 가해 찌면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는 것. 그래서 박 대표는 오랜 농사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천마는 말려서 분말을 만드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 고삼: 느삼이라고도 부른다. 대장염 등에 사용한다. 박 선생은 예전에는 고삼은 개울가나 산에 지천으로 있었는데 요즈음은 고삼도 귀하다고 했다. 박 선생은 뿌리를 쓰는 데 약초 중에 고삼 만큼 쓴 약초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
박선생이 재배한 천마 먹고 중풍 나은 사람 있어

박 대표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천마의 효능을 이야기해 줬다.
“원래 천마는 중풍을 고친다고 전해져요. 저는 한의사가 아니니 약성을 연구하는 게 제 일은 아니예요. 그냥 사람들이 중풍을 고친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농사를 지어요. 그런데 최근에 우리 마을에 중풍이 들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온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퇴원한 모습을 보니 한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동네사람들 모두가 걱정을 했어요. 나이가 62살로 아직 농촌에서는 젊은이에 속해요. 그래서 한창 활동을 해야 할 때이거든요. 한쪽 다리와 팔을 쓰지 못하니 자동차 운전도 못하고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예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 모두가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천마농사 짓는 것을 아니까 그 사람 부인이 저한테 와서 천마 가루를 사다가 계속 먹이는 거예요. 그렇게 한 6개월 먹더니 다리하고 팔이 다 나은 겁니다. 이제 경운기 운전도 잘하고 다니는데 아무 불편이 없어요. 천마가 중풍을 치료한다고 하더니 제 눈으로 직접 보기는 처음이예요. 우리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겠어요. 천마에 대해 동네 사람들이 다시 보게 된 것이지요.”
박의관 선생은 자신이 평생 천마 농사를 지었지만 정말 천마가 그렇게 효능이 좋은 줄은 최근에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도 늘 천마가루를 집에다가 보관해 두고는 하루 두 번씩 먹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을 것 같기에 그렇게 한다고 했다. 박 선생은 머리가 어지럽거나 할 때 천마를 먹으면 신기하게 잘 낫는다고 했다.
박 선생은 지리산에서 재배한 약초가 왜 좋은지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냥 써 본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서 찾아온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기후나 토양관계에서 약초에 잘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은 하지만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다.

박 선생은 이처럼 작약과 천마 뿐 아니라 그동안 두충, 황기, 오미자, 백출, 지황 등 재배해 보지 않은 약초가 없을 정도로 많은 약초를 재배했다. 그런데 박 선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충이라고 했다.

▲ 개똥쑥: 박선생은 요즈음 개똥쑥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최근에 재배하기 시작했다. 최근 개똥쑥의 항암효과가 발표되면서 인기가 좋은 약초이다.
두충나무 심어서 평생 가장 큰 돈을 벌어

“지금부터 30년 전이예요. 그때는 두충나무를 심은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누가 두충나무를 심으면 좋다고 해요. 두충나무는 저도 잘 모르는 나무라서 진주에 있는 한의원에 가서 물어보았지요. 그랬더니 원장선생이 우리는 수입해서 쓰니까 많이는 심지 말고 조금만 심어보라고 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300주를 심었어요. 그런데 이게 돈이 된 것이예요. 자기들이 채취해 가고 그 때 돈으로 2100만원을 받고 팔았어요. 그 때 이 돈이면 집을 두 채 사고 남는 돈이었어요. 제 약초농사 경력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약초였습니다. 진주 한의사 말을 듣지 않았으면 많이 심는 건데 괜히 한의사 말을 듣는 바람에 300주만 심은 것이 후회됐어요.”
박 선생은 두충나무를 심어서 자기 약초농사인생에서 가장 큰 돈을 만져본 것이라고 했다.그런데 그 두충이 지금은 완전히 똥값이 되었다고 한다. 20년 전에만 해도 1kg에 3만원하던 것이 지금은 2천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심어서 그렇다고 했다. 원래 많이 쓰지도 않는 것인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사람들이 심어 그렇게 됐다는 게 박 선생의 진단이었다. 박 선생은 이처럼 약초 농사는 때로는 바람이 불어서 흥하기도 망하기도 한다고 했다.

▲ 황기:여름철 대표약초 황기. 신진대사를 돕는 작용을 한다.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닭 백숙을 만들 때 넣어먹는 약초이다. 박선생댁에서 황기를 100평 정도 재배하고 있었다.
땅두릅(독할)심어서는 완전히 실패한 경험도 있어

이렇게 두충은 심어서 돈을 벌었지만 박 선생이 크게 실패한 사례도 있다.
“20년 전에 창녕에 있는 수련원에서 연수를 받을 때였어요. 옆에 함께 연수를 받는 창녕사람이 있었는데 ‘독할’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연수를 받다가 저녁에 택시타고 그 사람 농장에 가서 ‘독할’ 심어놓은 것을 보고 왔어요. 순이 꼭 두릅모양으로 생긴 게 재미가 있어 보였어요. ‘독할’을 땅 두릅이라고도 불러요. 그래서 집에 와서 심었지요. 봄이 되면 순이 올라오는 데 두릅나무보다 향이 더 좋아요. 그리고 순도 돈이 되고 뿌리도 돈이 되는 것이예요. 당시에는 값이 비싸서 독할 순을 라면박스 한 박스 분량을 따다가 진주시장에 가서 팔면 쌀 몇 섬을 살 수 있는 돈이 돼요. 그래서 동네사람들과 ‘땅두릅 영농법인’을 만들었지요. 영농법인을 만들어서는 산청군에 20정보나 심었어요. 누가 일본 수출을 주선해 준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예요. 일본 사람들이 땅 두릅을 좋아한다고 해요. 그래서 첫 수확을 해서 일본에 수출하려고 염장을 한 다음에 포장을 다 했지요. 그리고 산청에서 농사지어 일본에 수출 한다고 다들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웬걸....바이어를 잘 못 만나서 팔지도 못하고 다 폐기처분하고 말았지요. 그리고는 그 다음부터는 흐지부지해져 버렸어요. 크게 실패한 사례예요.”
그런데 그 독할이 지금은 한 근에 1만원 정도 한다. 그래서 박 선생은 올해부터 다시 독할농사를 시작했다. 밭에 가 보았더니 예전에 심었던 독할이 제법 커져서 자라고 있었다. 박 선생은 그때 다 없애 버렸는데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야생으로 살아나서 이렇게 자랐다고 했다. 그런데 이 독할은 쥐가 좋아해서 순이 날 때 쥐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 곰보배추: 활인초라고도 부른다. 작약밭에 잡초처럼 나는 것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니 꽃이 피고 씨가 떨어져서 점점 많아진다고 했다. 박 선생은 요즈음은 작약보다 곰보배추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감기에 좋다.
약초농사는 꾸준히 하면 돈이 된다

박 선생은 평생 재배해 보지 않은 약초가 없을 정도로 산청군에서는 약초농사의 달인이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약초나무도 적지 않다. 지리산에서는 멸종했다는 황백나무를 비롯하여 구지뽕, 마가목, 엄나무, 헛개나무, 산수유 등 일반인들이 알만한 나무는 다 심어봤다. 박 선생은 평생의 약초농사를 통해 얻은 지혜는 너무 급히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약초농사는 일반 농사하고는 많이 달라요. 올해 돈이 되지 않아도 기다리다 보면 돈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한 번도 약초농사 지으면서 짜증을 내거나 조급해 하지 않았어요. 아무튼 남해에서 뜻하지 않게 지리산에 들어와 지금까지 3형제 키우고 여태 건강하게 살았으니 약초 덕을 많이 본 거지요.”

▲ 헛개나무: 박선생이 술을 마셔 간이 나빠져 밥맛이 없고 술도 마실 수 없을 때 보름간 먹었더니 깨끗이 나았다는 약초. 요즈음 헛개나무에 대한 수요가 늘어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헛개나무 보름 먹고 간이 완전히 해독돼

박 선생은 약초 덕을 많이 보고 살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만큼 약초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약초 먹고 아픈 것 나은 경험을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최근 이야기를 해 줬다.
“저는 평생 말 술로 삽니다. 하루에도 술을 서너 번 마셔야 일을 할 정도로 술을 좋아해요. 그런데 몇 해 전에 밥맛이 없고 기운이 자꾸만 떨어져요. 술도 맛이 떨어져서 술을 안 마시니 살 맛이 없어요. 그러니까 아들이 마산 삼성병원에 건강진단을 신청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건강진단 하러 갔더니 여러 가지를 검사하는 코스가 있는 검사였어요. 마지막 코스에 갔더니 의사가 술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했더니 술을 많이 마셔서 간이 나빠졌으니 술만 안마시면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밥은 안 먹어도 술은 안마시고 살 수 없다고 답하고 나왔지요. 그리고는 집에 와서 헛개나무가 간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헛개나무를 가져다가 다려서 보름동안 먹었더니 아무 이상이 없었어요. 다 나은 거지요. 정말 경험해 보니 헛개나무가 간에 좋긴 좋은 것 같아요.”
박 선생은 자신이 수많은 약초나무를 심었지만 직접 약효를 경험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자신도 경험해 보니 그동안 들어왔던 헛개나무의 약효에 대해 놀랬다고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약초를 재배했지만 유난히 건강했던 터라 그동안 약초를 먹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 골담초: 약초 이름에 뼈골(骨)자를 사용한 것을 보면 뼈에 좋은 약초임을 알 수 있다. 실제 뼈에 좋아서 관절염, 신경통 등에 주로 사용한다. 박 선생은 골담초를 찾는 사람이 많아 아예 재배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돈만 목적으로 약초농사 하면 망한다

귀농하려는 후배들에 대해서 박 선생은 돈만 목적으로 약초를 지으면 못 짓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다. 박 선생 세대에는 중국산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중국산이 있어도 국산을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격이 괜찮아서 약초농사가 예전만큼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서 땀 흘려 부지런히만 한다면 약초농사가 괜찮은 분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약초농사는 아무래도 규모가 있게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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