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그곳
내 안의 그곳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6.20 1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채/시인

오늘날 복잡다양한 우리들의 삶, 벗어버리고 싶은 멍에와 책임과 근심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능이 저능한 동물보다 오지랖이 넓은 우리는 그만큼 근심과 걱정, 고통의 가짓수도 훨씬 많을 것이다.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가족이며 직장이며 생계가 어디 훌훌 털면 털릴 먼지이던가. 설령 과감히 훌훌 털고 그곳에 간다 하더라도 이곳의 걱정 때문에 그곳은 또 다른 이곳이 되어버리기 쉽다.

삶이 지칠 때 갈망하게 되는 마음의 쉼표인 바로 그곳, 자신을 보듬는 그곳이야말로 가파른 우리네 삶의 숨고르기이며 안식처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을  찾아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 그것은 아주 가끔 시도할 수 있을 뿐, 삶의 현장은 언제나 여기이므로.. 일상의 빠듯함이 나를 정화시키는 그곳에 늘 갈 수 없게 한다면 차라리 내 안의 그곳을 만드는 것은 어떠한가. 내 안의 그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곳으로 찾아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불가에 ‘요중선’이라는 말이 있다. 시끄러운 저잣거리 한복판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동경한다. 이 말을 알고부터는 내 주변이 시끄럽게 느껴질 때마다 이렇게 자문해보곤 한다.

“바깥이 아니라 내 귀가 시끄러운 것은 아닌가. 내 마음이 시끄러운 것은 아닌가”하고..
이 요중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고요함을 길어 올리며 내 안의 그곳을 가꾸는 사람들일 것이다.

귀를 틀어막고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아니라 귀를 열고 따뜻한 웃음을 머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엔 요중선을 수행하는 삶의 고수들이 종종 눈에 띈다.

추운 시장 한복판 손발이 트면서도 넉넉한 웃음과 생기를 덤으로 얹어주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며, 새벽마다 신문을 놓고가는 청년과 언젠가 마주친 씩씩한 웃음에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아들 녀석 또래의 삼매에서, 또 며칠 전 복잡한 전철 안에서 책을 읽으며 빙그레 웃음짓던 어느 직장인의 모습에서..

이렇듯 언제나 삶을 긍정하고 사태를 맑게 바라볼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들은 내 안의 그곳을 이룬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항상 요중선을 동경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나는 많이 느껴왔다. 오늘의 삶이 언제나 맑고 고요하기를, 또 내일의 삶은 기쁨만 가득하기를 소망하면서도 말이다.

내 안의 그곳, 삶의 터전에서 작은 텃밭 하나 가꾸는 일인데 이것이 바로 삶의 여유일 것인데, 우리는 왜 스스로 내 안의 그곳에 있는 행복으로부터 날마다 멀리 떠나며 살아가는 것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