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산청지리산상황버섯영농조합 전상수 대표
<10>산청지리산상황버섯영농조합 전상수 대표
  • 정리 한송학·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3.07.1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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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버섯 재배 한 품목에만 집중해 성공

▲ 전상수 대표는 IMF로 명예퇴직하면서 고향인 생비량으로 귀농해 상황버섯 한 품목에 집중해 성공했다. 전 대표는 귀농은 아이템 선정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아이템이 선정되면 그 품목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귀농해 상황버섯 한 품목에만 집중해 연간 3억 원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 전상수 산청지리산상황버섯영농조합법인 대표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전 대표는 귀농한 많은 사람들이 이것 저것 시도해 보다 실패하는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오로지 상황버섯 한 품목에만 매달렸다. 한 품목에만 몰두해서 그런지 전 대표는 귀농 후 크게 실패한 경험이 없다. 2005년 귀농해 첫해에는 12평의 하우스에 1만개의 상황버섯 종목을 넣었다. 그렇게 해서 소득을 올린 후 매년 조금씩 증설해서 지금은 약 10만개의 종목에서 상황버섯을 재배하고 있다. 10만개의 종목에서 나오는 상황버섯은 연 3톤 정도. 매출로 따지면 약 3억 원 남짓 된다.
전 대표는 추가 증설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부부와 딸아이 등 세 명이서 농사짓기에 적당하다는 것. 추가로 하려면 결국 사람을 써야 하는 데 그렇게 욕심을 부릴 일도 아니고 지금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 IMF로 인해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그만 둔 후 직장을 구하느라 바삐 움직이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라는 정 대표는 귀농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회고했다.      

▲ 상황버섯이 재배되는 종목. 참나무로 만든 이 종목에는 상황버섯 종균이 심어져 있다. 이 종목은 3년 동안 사용된다. 상황버섯 종균이 이 종목에 있다가 적정한 조건이 되면 발아하여 성장하기 시작한다.
IMF로 명예퇴직 후 고향인 산청 생비량으로 귀농

전상수(61)대표는 귀농하기 전에 부산에서 대기업의 부산지점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가정용품 세제를 파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IMF가 왔다. IMF로 명예퇴직을 당하고 몇 년간은 직장을 구하러 여기저기 다녔다. 그런데 나이가 이미 40 중반을 넘다 보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아파트 경비원이나 주차장 관리인 등의 자리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직업을 하기에는 아직 젊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귀농을 결심했지요. 원래 생비량이 고향입니다. 고향으로는 귀농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막상 하려고 하니 고향이 좋았어요.”
전 대표는 고향으로는 귀농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막상 결심하니 그래도 고향이 좋더라고 했다. 고향에 와서 무엇을 할 까 생각하면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다녔다. 그런데 그때 친구가 상황버섯을 50평 정도 재배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아 저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저는 원래 버섯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아이템을 구하려고 다니고 있는데 마침 친구가 상황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보자 저도 상황버섯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모든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 말은 표고버섯이나 느타리 버섯 등은 경매제도도 있고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상황버섯은 아직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아서 판로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버섯을 하려면 표고나 느타리 등 수요가 많은 품목을 하지 상황버섯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어요. 표고나 느타리 버섯 등은 가격이 문제이지 파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 전 대표는 2005년 120평의 하우스 한동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하우스 16개 동으로 성장하여 대농 대열에 끼이게 됐다.
2005년 주위 반대에도 불구 상황버섯 농사 시작

친구들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상황버섯은 약초이긴 하지만 수요가 많지 않아서 고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웬지 마음이 끌렸다. 상황버섯을 보자 자신감도 생겼다. 판매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대기업에서 영업을 하고 있을 때 가정용 세제를 판 적이 있어요. 처음에 이 세제가 시장에서 먹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약방에다 5~10개씩 판매를 한 적이 있어요. 약방에서 세제를 사서는 써 본 소비자들이 오히려 시장에서 찾는 것이예요. 그렇게 해서 시장을 개척한 경우가 있었어요. 그 때 기억이 나서 품질만 좋으면 시장개척이 가능할거라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구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황버섯을 시작했지요.”
전 대표는 처음 120평 규모의 하우스를 설치했다. 남의 땅을 빌려서 하우스를 짓고는 여기에다가 1만개의 종목을 넣었다. 2005년 봄이었다.
“상황버섯은 참나무 종목에다가 상황버섯 종균을 심어서 재배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하우스를 120평을 짓고 거기에다가 종목 1만개를 넣었어요. 투자비는 약 5천만 원이 들었지요. 그때 김해에서 가지고 있던 아파트가 6천만 원 정도 했으니 저로서는 과감한 투자였습니다.”

▲ 전 대표는 상황버섯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실전을 통한 노하우 축적 등 지금은 버섯 재배 손실률이 2%로 전국에서 가장 작은 손실률을 자랑한다.
하우스 옆 4평짜리 농막에서 2년 동안 혼자 살아

전 대표는 당시 자신의 처지로는 큰 돈인 5천만원을 투자해 상황버섯 재배 하우스와 종목을 넣었다. 이렇게 상황버섯 하우스를 짓고는 살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우스 옆에다가 4평 정도의 농막을 지었다. 진주에서 중고 판넬을 사다가 하우스 옆에 땅에다 직접 지었다. 주위에서는 콘테이너 박스를 가져다 놓으라고 했는데 180만원이나 달라고 해서 포기했다. 한해 농사 지어서 돈을 벌면 콘테이너박스를 가져다 놓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2년간이나 그 농막에서 살았다.
이때 가족들은 부산에서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 대표 혼자서 농막에서 생활했다. 가족들은 2년 후 왔다. 전 대표는 아내를 데려오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아내는 시골에 와서 살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내를 설득하느라 힘이 들었지요. 하우스도 아내명의로 하고 또 살 집도 마련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전 대표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마을의 폐가를 임대해서 수리를 하는 등 준비를 마친 다음에 가족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3년 후 지금의 2층 집을 지었다.
보통 상황버섯은 5월에 시작하여 9월이면 수확을 한다. 전 대표도 그해 9월에 상황버섯을 수확했다. 그런데 수확이 좋았다. 수확이 좋아서 지인들을 상대로 팔았다. 마침 다 팔렸다. 시작이 좋았던 것이다.
“참 행운이었어요. 처음 농사지은 것을 다 팔았어요. 투자한 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돈이 모였어요.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자신감을 얻었지요. 그때 첫 농사에서 실패했더라면 아마 지금 저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거예요.”

▲ 전 대표는 한해에 약 3톤의 상황버섯을 생산하여 대부분을 전문 약재상에게 넘기고 남는 버섯으로 선물용을 만들어 직접 판매하고 있다.
첫 농사에서 성공해 지금까지 실패한 적 없어

전 대표는 첫 수확에서 성공한 것이 지금 자신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했다. 버섯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운 좋게도 첫 수확이 성공해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첫 수확에서 농사는 성공을 했는데 전 대표가 버섯에 대해 특히 상황버섯에 대해 지식이 너무 없는 게 문제였다.
“처음 수확해서 지인들에게 판매를 하는 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상황버섯이 어디에 좋으냐?, 어째서 좋으냐?, 암환자가 먹으면 왜 좋으냐?, 하는 말들이었어요.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진주에 있는 경남 과학기술대  작물생명과학과에 신입생으로 입학을 했어요. 2006학년도였습니다.”
전 대표는 본격적으로 버섯을 공부하기 위해 경남과기대에 진학했다. 농촌특별전형으로 입학을 했는데 과기대에 진학한 것이 전 대표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전 대표는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4년 동안 지각이나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3,4학년 때는 100% 장학금도 받고 다녔다.
“그때 작물생명과학과에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한명 있었고 저처럼 중년의 학생이 한 10명 정도 있었어요. 4년간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습니다. 이때 버섯에 대해 많이 알게 됐습니다.”
전 대표는 학교 다니는 것이 시간은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특히 상황버섯에 대해 알게 되고 이해가 되고 대화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 전 대표의 자택이자 전시장. 이 전시장에서 상황버섯으로 선물용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지금은 단골 고객들이 늘어 오며가며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상황버섯 공부위해 경남과기대 작물생명과학과 진학

“처음 시작할 때는 상황버섯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비싸다, 암에 좋다는 정도밖에 몰랐어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 학문적으로 알게 되니까 더 자신감이 생기고 상황버섯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대표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 외에도 직접 농가를 찾아다니면서 상황버섯에 대해 배웠다. 상황버섯은 매우 까다로워서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 대표는 전국을 다니면서 상황버섯 재배한다는 농가만 보면 들어가 물었다.
“길을 가다가 상황버섯을 재배하는 농가가 있으면 내가 지금 작물이 이렇게 돼 있는데 이럴 경우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고 질문을 수없이 했습니다. 그럴 경우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잘 대답해 주었습니다. 또 급한 경우는 아예 당신이 와서 좀 해결해 달라고 하면 해결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 대표는 이렇게 사귄 상황버섯 재배 농가들이 지금은 네트워크가 형성돼 일년에 두 번 정기적인 만남을 가질 정도로 친밀해 져 있다고 했다.

전국의 상황버섯 농가와 네트워킹 만들어

전 대표는 버섯 농사를 지으면서 전환기를 맞게 된다. 처음 하우스 한동으로 시작했는데 전국을 다니면서 보니까 상황버섯 농사도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닳게 된 것.
“전국의 상황버섯 농가를 보니까 경쟁력이 있으려면 결국 규모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규모가 크면 농사를 한해 실패해도 헤어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으면 헤어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마는 것을 종종 보았어요.”
전 대표는 그래서 꾸준히 규모를 늘렸다. 처음 하우스 한 동에서 매년 1~2동씩 규모를 늘려나갔다. 그런데 전 대표는 이 생각이 맞았다고 했다. 2년 전부터 상황버섯 소비가 줄어서 가격이 하락되고 있는데 가격이 하락되면서 물량이 적은 사람들은 고생을 엄청 하지만 전 대표는 물량이 많다보니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전 대표 농장에는 지금 하우스 16동에 10만개의 상황버섯 종목이 입하해 있다.
“상황버섯은 보통 5월에 시작하여 9월에 수확합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물량이 많다보니 가격이 좋지 않으면 그냥 한해를 건넙니다. 그냥 그대로 겨울을 나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다보면 다시 가격이 좋아져서 출하를 하기도 합니다. 규모가 큰 경우 이런 점에서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전상수 산청지리산상황버섯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자신의 경우 지금까지 상황버섯을 재배하면서 크게 실패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이런 행운을 잡기 위해 경남과기대 작물생명과학과에 진학하여 4년간 공부하는 등 나름대로 치열하게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상황버섯 재배 손실율 2%로 전국에서 가장 적어

전대표가 상황버섯 농사에 있어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손실 부분이었다.
“상황버섯 종목에서 버섯을 키울 때 손실이 발생합니다. 평균적으로 10%정도의 손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평균 2%정도 됩니다. 손실이 적다 보니 아무래도 종목 단위당 생산량이 많은 것이지요. 이게 저의 경쟁력입니다.”
전 대표는 상황버섯과 관련해서는 규격화된 매뉴얼이 없다고 했다. 대부분 농가들이 스스로 경험을 통해서 노하우를 쌓아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신은 아직은 실패를 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노하우를 쌓아서 잘 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상황버섯 재배는 다 비슷합니다. 하우스 재배이다 보니 스프링 쿨러에 의해서 물을 주고 그다움에 일조량을 어떻게 조절할 것이냐, 하는 문제들입니다. 특히 버섯이 잘 자라지 않을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 등이 중요하지요. 모두다 종목을 사와서 버섯을 재배하기 때문에 노하우의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손실율 등은 중요하지요.”
전 대표는 자신은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버섯 재배에서 실패한 적이 없는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가 있어도 규모가 크다 보니 잘 극복해 나갔다고 했다.
전 대표는 요즈음은 한해 수확량이 3톤 정도 된다고 했다. 대부분이 약재 도매상을 통해 처분되고 조금 남겨서 명절 때 선물용으로 만들어 판매한다고 했다.
“요즈음은 약재상 등의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농사만 잘 지어 놓으면 판매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요. 농사가 잘 안되면 약재상 들이 사가지 않습니다. 이 경우 문제가 심각하지요. 그래서 농사를 잘 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귀농은 아이템 선정이 중요

전 대표는 귀농하려는 후배들에게 귀농에는 아이템 선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으로 봐도 그렇고 아이템 선정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것.
“저도 아직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귀농 성공에는 아이템 선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보통 땅부터 사고 보는 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템 선정을 하고 3~4년 후에 땅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전 대표는 귀농하는 데 있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일관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다른 품목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상황버섯 한 품목만 한 게 성공의 요인이라고 했다.
“요즈음은 귀농정보가 많아서 문제입니다. 귀농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있다 보니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잘 선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해도 어려움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냥 되는 것은 없습니다. 저의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자면 한 품목에 몰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능력은 제한 적이어서 모두 다 잘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한 품목에 힘을 쏟는 것을 권합니다.”
귀농하면서 여러 가지 아이템에 눈을 돌리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했다. 전 대표는 또 욕심을 내지 않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욕심은 자칫 무리한 투자를 가져와 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것.
“욕심을 줄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귀농은 일확천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 함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자는 생각으로 하면서 생활을 위해 그 수단을 마련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농촌에서 일확천금을 벌 일도 없지만 그렇게 되지도 않기 때문에 아예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욕심부리지 말고 한길로 가라

전 대표도 이제 자신도 하우스를 더 늘리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지금 하우스 16개동에 10만개의 상황버섯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늘리면 소득이야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일을 많이 해야 하고 힘이 들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만족하는 게 좋다고 했다.
자신의 분수를 알아서 천천히 가는 것. 그게 전 대표가 성공한 키워드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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