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갈증
중년의 갈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7.18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채/시인

술을 마시면 여자가 그립고 여자를 만나면 돈이 그립듯, 가뭄 끝엔 비가 그립고 비 끝엔 햇살이 그립듯,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이 그립고 진실한 벗이 그립고 못다한 사랑이 그립다.

그리운 것이 어디 이것 뿐이랴. 중년이 되면 무엇인지 모를 그 무엇이 마냥 그리워진다. 아마도 젊음의 상실감과 인생의 허무함에서 오는 갈증일게다. 육체가 노쇄해갈수록 가슴도 점점 메말라가니 공허해질 수밖에.. 페스탈로찌는 “우리들의 삶이란 아침에 피어 저녁이 되면 시들고 마는, 마치 돌에 핀 꽃과도 같다”고 했다. 태어난 이상 죽지 않으면 안되는 숙명이란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터인데도 말이다.

처음부터, 나도 모르는 신과의 약속이 있다면 그 약속을 어기고 싶다면 어찌할 텐가/ 친구와의 약속을 어기고 미안해' 라는 한마디로.. 그렇게 얼버무리고 싶다면 어찌할 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싫다기보다 두려워질 때 한 몇 년만이라도 시간을 붙잡아 놓고/ 젊음을 연장하고 싶다면 신은 어떤 죄목으로 나를 재판할 것인가

중년의 나이로 살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외로움에 잠을 깨고/ 다시는 잠을 이루지 못하여 몇 번이고 자신을 쓸어내려야 할 때/ 무작정 달려온 가쁜 숨결은 하얗게 누워 사랑도 자라지 못할 빈 들판 같고/ 빈 들판의 바람 같고 그 바람의 낙엽 같고 그 낙엽이 흙이 되고 잎이 될 동안/ 헐벗어 홀로 선 나무 같다

이제는 흉내조차도 낼 수 없는 겁 없이 걸어온 용기가 기특하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하늘을 받치고 섰으면 그만이었지/ 그맘땐 하늘도 가벼웠고 땅도 힘차게 밟고 섰으면 발 아래에서 무게를 잃고 말았지/ 평생 그렇게 살 줄 알았던 내 평생의 지금은 과연 어디쯤인가/ 바라보는 것마다 생각은 많고 바라보는 곳마다 점점 먼 것들

우리는 어디를 걸어가든 저녁으로 향하는 길을 가고/ 그 뜻과 그 하루의 끝에서 우리가 낮 동안 썼던 긴 이야기는/ 결국 저마다 한 권의 자서전이 되어 기쁨과 슬픔과 그리고 나머지 것들이/ 정직과 거짓과 그 속의 모순에도 마지막 한 줄을 쓰고/ 새로운 어딘가를 떠나야 할 때 그곳에서도 그리워하며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별 하나 간직하고 갈 일이다
-‘중년의 갈증’이채의 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