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도 때를 잘 만나야 한다
기술도 때를 잘 만나야 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02 1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기상/한국교원대학교
컴퓨터교육학과 교수
기술이 발전하려면 적당한 환경이 필요하다. 기술도 사람이 개발하는 것이고, 개발에는 비용이 들고, 사용할 사람이 필요함으로 적절한 시점을 타고 기술이 개발되어야 성공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대로, 특정 목적을 위한 기술의 개발은 짧은 기간은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사장되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의 엔지니어 콘라드 주세(Konard Zuse)는 이진수로 동작하는 컴퓨터를 개발한다. 1941년 세계 최초로 바이너리(이진수, 0과 1로 정보를 표현한다) 기반의 프로그램이 가능한 컴퓨터가 주세에 의하여 발명되고, 이것을 보다 발전 시켜서 정보를 저장하는 장소와 제어하는 장소가 분리되고, 소수점 계산이 가능한 장치를 만들게 된다.
이 컴퓨터는 당시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획기적인 기능들을 담고 있었지만 히틀러는 영국을 공격하는 데는 V2 로켓이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믿었고, 컴퓨터가 전쟁을 도와줄 수 있다고 믿지 않았으므로 결국 당시 독일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었지만 전쟁이 종료된 후에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믿을 수 있는 이야기 인지는 모르지만 히틀러는 ‘우리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인 한 사람이 더 필요하지, 그런 기계는 필요 없다’고 주세를 징집했다고도 한다.
히틀러가 컴퓨터의 가치를 몰랐다고 한다면 당시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상대방의 암호를 풀려고 애를 쓰고 여러 가지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주세의 기술에 뒤진 것이었음에도 결국 서방의 컴퓨터 과학자들의 기술이 컴퓨터의 역사 전면에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주세의 기술은 전쟁이 종료된 후에 유명한 미국의 컴퓨터 회사인 IBM이 특허의 일부를 사용하여 IBM 360과 같은 탁월한 기계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은 자본주의 발전이 워낙 강해서 시장 만능에 가깝다. 따라서 시장이 선택하면, 즉 사람이 사고 필요로 하면 팔리는 기술이 되고, 그것이 곧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세의 컴퓨터가 오늘날과 같은 환경을 만났었더라면 그는 개인의 영달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컴퓨터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존재로 자리 매김을 했을 터이다. (물론 지금도 그의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값어치만큼 대접을 못 받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정보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발명품을 꼽으라면 MP3 플레이어가 있었다. MP3 플레이어는 1998년 새한미디어가 처음 개발하였다.
지금은 하도 흔해서 음악을 듣는 데는 이 기기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래서 휴대폰에도 이 기능을 추가하기도 한다. 2000년 들어 벤처 기업 붐이 불면서 수많은 MP3 플레이어 제작사들이 난립하면서 가격 경쟁 때문에 품질이 떨어지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애플의 아이팟은 비슷한 기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수한 디자인과 꼭 필요한 기능만을 추가함으로써 한국 업체들의 몰락에도 오히려 MP3 플레이어의 주 업체가 되었다.
주세의 컴퓨터는 당시 집권자의 눈에 들지 못했고, 한국의 MP3 플레이어 기술은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안타까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개발되고 유통되는 것이므로 적절한 시점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기에 기술자들은 시장, 좀 더 나가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자면 기술만이 아니라 인문적인 소양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주세의 컴퓨터를 돌이켜 보면 비록 세상의 인정은 늦었을지 모르지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이들에게는 언젠가 발견됨을 알 수 있기에 오늘도 과학자들은 연구실의 문을 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