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의미
가을의 의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8.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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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시인

 
가을은 멀쩡한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지는 낙엽이 그러하고 부는 바람이 그러하고
나이가 들수록 가을이 주는 상념은 더욱 그러하리라.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바라만 봐도 사색이 많아지는 계절,
다가오는 것보다 떠나가는 것이 많아서 일까. 저문다는 것에 대한 애잔함 때문일까.
그도 그럴 것이 온갖 꽃을 피우고 온갖 새들이 노닐다간 숲 속의 나무들도
하나 둘씩 갈색으로 변하고, 끝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산다는 건 무엇이고 삶이란 또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게다.
대자연의 순환이치가 어디 자연뿐이랴.
젊었을 때는 젊음인 줄 모르고 사랑할 때는 사랑인 줄 모르고,
지나간 생의 뒤안길을 더듬어보면 후회스러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으나
묵묵히 걸어온 저 길위에 핀 겸손하면서도 소담스런 가을꽃을 보노라면
그래도 성실하게 살아온 날들의 일과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가리라.

아무렴, 봄과 여름을 거쳐온 우리네 삶의 뜨락이 그저일 리 없다.
땀으로 흘린 보람의 열매가 가득한 들녘에 선 어느 농부를 상상해보라.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풍요로운가.
그러기에 가을은 수확을 거두는 농부의 계절이기도 하다.
흙을 벗삼아 논밭을 일구는 농부만이 농부가 아니고 어찌보면 우리 모두가 농부인 셈이다.
엊그제 봄이 온듯한데 벌써 가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황금빛 들녘이 장관을 이룰 때,
인생이라는 밭에 씨를 뿌리고 알차게 가꿔온 우리네 삶 또한 농사를 짓는 농부인게다.
신이 부여한 저마다의 하루를 하늘 한번 처다볼 겨를없이 걸어온 삶이
늬웃늬웃 서산을 넘는 저 노을앞에 선 어느 중년남자를 상상해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휼륭한가.
비록 잎은 늙어 쇠약하여도 그 잎이 지고나면 거름이 되고
그 거름 또한 꽃과 잎, 크고 작은 나무를 키우는 법이니
우리 살아가는 동안 인생의 재미, 세월의 묘미란 미래에 설렌다는 것임을..
문득 스산한 가을바람이 귓볼을 스치며 일러주는 한마디,
시간을 쓰는데 마음을 쓰지말고 마음을 쓰는데 시간을 쓰라 하네.

피었다 지는 것이 꽃만이 아니고
늘 푸를 수 없는 것이 잎만이 아니더라.
당신과 나의 사랑이 그러하고 당신과 나의 인생이 그러하고
꽃은 져도 열매를 맺고 잎은 늙어도 거름이 되나니
어찌 허무하다고만 하리오.
태양이 가장 고울 때는 노을이고 잎이 가장 붉은 때는 가을이니
어찌 서글프기만 하리오.
천지신명의 일을 알 수는 없어도 생의 오묘한 의미가 이 가을에 있나니
어찌 가을을 외롭다고만 하리오.
-"가을의 의미" 이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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