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대첩 7만 호국영령 위령제를 마치고
진주대첩 7만 호국영령 위령제를 마치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08 1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돈/진주문화원 부원장
왜구들과 7년 전쟁의 대단원이 임진왜란이다. 1592년(조선건국 200주년) 왜구들이 총집결하여 쳐들어온 목적이 호남평야의 곡창지대를 점령하려는 것이었다. 이때 전라도의 길목을 막고 성을 지켜 낸 것이 3800명의 군사로 3만의 왜적을 물리친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이었다.
바다에서는 이순신의 한산대첩(노량)이 있었고, 권율의 행주대첩은 임진년 다음해인 1593년 2월 명나라 군사를 물리친 대첩으로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 한다.
지금까지 진주대첩의 일환으로 유등축제행사가 문화관광부지정 축제로 인정받아 개최되고 있는데, 유등축제의 유래는 진주성전투에서 3만 왜적에게 갇힌 3800여명의 우리 군사들이 남강에 유등을 띄우면서 거기에다 가족에게 소식을 전했다는 것이다.
 1억원이라는 예산을 들여 치러지는 논개제(논개투신 재연 등), 800만원의 예산으로 매년 음력 6월 30일 치러지는 의기논개제향(6월 29일이 옳다고 생각됨), 10월 10일 진주시민의 날 행사(올해는 진주대첩 행사로 명칭을 바꾼다고 듣고 있다)등 시의 주요 행사에는 시장과 국회의원 등 민선 공직자들이 다투어 참여하고 막대한 예산까지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음력 6월 29일 한국자유총연맹 종교특별위원회 경상남도위원장 장순자(산청군 삼장면 약수사 주지)씨가 주관해 열린 진주대첩 7만 순국영령 위령제행사에는 150여명의 시민과 관계자들이 참석하였으나 선출직 공직자는 단 한사람도 참석하지 않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묘강 장순자 위원장은 1960년 말부터 현재까지 매년 김시민 장군과 7만 민관군 호국영령제와 논개제를 사재를 털어 오늘날까지 한결같은 지성으로 지내오고 있다. 필자도  이 같은 취지에 감동해 행사 이것저것을 도우면서 관련당국으로부터 예산 한 푼 지원받지 못하는 것을 알고 진주시와 산청군을 수차례 방문하여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예산은 고사라고 추모사와 격려사는 물론 음료수(생수)마저 제공하는 것을 거절당했다.
이유는 예산 계획이 없다는 것과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선거법에 저촉 된다는 것이다. 이 행사는 진주정신의 대표적인 상징인 김시민 장군과 7만 민관군을 기리는 행사인만큼 선거관리법을 운운하기 이전에 전 단체장은 물론 전 국민이 협조하여야 옳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유등축제나 논개제, 의기논개 제향제, 창렬사 제향(필자는 이 날도 장순자 여사는 제장군졸지위 비석 앞에 과일과 제주로 배례하면서 혼자 제를 지내는 것을 보았다)등에 가려있는 2차(계사년)전투에서 진주성에 집결된 7만 민관군은 음력 6월 29일 진주성 함락으로 전사한 호국영령을 모르는 시민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어 늦은 감이 있으나 전 도민 전 시민이 재조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진주의 유구한 역사 충절의 고장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 행사 전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주시는 각 분야의 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토론자리를 마련하여 심도 있게 고민하면서 개천예술제와 진주대첩제로 대별하여 진주문화원에서 주관하고 경남도와 경남교육청 진주시청 각 언론사가 후원하는 대축제로 하는 것이 예산 절약이나 전 국민도 적극 호응하게 될 것으로 사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