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택배를 보내지 마세요
아직은 택배를 보내지 마세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0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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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SK에너지 사보
편집기자
어린 시절,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풍경 중 하나가 장례식장의 모습이었다. 정신없이 쟁반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며 술과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 얼큰하게 취해 큰소리로 얘기하는 사람들, 화투를 치는 사람들. 상주를 토닥이며 “호상이다” 하는 말. 어른이 되면 사람이 태어나고 세상을 떠나는 일을 그렇듯 자연스러운 순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싶었다. 그런 것이 어른이라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 화투 패를 돌리는 나의 모습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스물다섯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장례식장에 갈 일이 생긴 적이 없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무탈했다. 감사한 일이다. 타인의 장례식장을 찾은 내 모습은 상상만 해보았다. 사람들은 대체로 유가족에게 무슨 말을 건넬까. 워낙 위로에 서툰 나는, 그런 것도 준비할 필요가 있구나 싶었다. 아직 누구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은 탓에, 나는 이별할 줄을 몰랐다.
완전한 이별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불의의 사고가 아닌, 주어진 시간이 다하여 오는 이별에는 아마도 어떠한 예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택배처럼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발송하였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가 오면, 그때부터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에 몇 시에 도착할 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내일쯤 오겠구나. 하듯이. 벨이 울리면 ‘아, 택배 아저씨인가보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상자를 열면 어떤 것이 들어있을지 알고 있듯이. 하지만 출발을 예고한 다음은, 전혀 다르다. “저 오늘 집에 없으니까 다른 날 방문해 주시겠어요?” 하며 미룰 수도 없고, 경비실에서 대신 받아줄 수도 없고, 마음에 안 든다고 되돌려 보낼 수도 없다. 무엇보다, 언제 올지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내용물이 아닌 거다.
인터넷으로 뭘 사면 배송 메시지를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 매번 ‘배송 전에 미리 연락주세요’라고 쓰는데, 택배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미리 전화하고 오는 법이 없다. 자고 있을 때, 씻고 있을 때 쾅쾅 문을 두드리며 “택배요!”를 외쳐서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예정된 이별이 찾아와도 나는 아마 그렇게 당황할 거다. 그리고 슬퍼하겠지. 알고 있는 슬픔이라고 면역이 되진 않을 거다.
주말엔 고향에 갈 거다. 할아버지께서 입원을 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 소식이 이별택배 소식이 아님을 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당분간은 모를 계획이니까. 어릴 때 한자 교실에서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배웠던 게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지금 알고 싶은 건 택배에 대처하는 자세가 아니라, 할아버지를 조금 더 기쁘게 해드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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