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사랑
인스턴트 사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9.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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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시인

 
제복 밖으로는 모범적인 학생의 신분을 잃지 않으면서 가슴 속 불타는 연정은 억제하기 힘든 듯 정성스레 사연을 담아 여학교 담 모퉁이에 섰다가는 슬쩍 전하고 돌아서는 남학생, 도망가듯 총총걸음으로 멀어지는 남학생의 뒷모습은 우리가 젊었을 때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젊은이들이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감춰두었던 자기의 연정을 조금씩 건네주는 낭만은 더이상 보기 드문 현실이 되었다.

미팅이나 데이트의 기술이 발달하고 더구나 너 나 할 것 없이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편지 따위의 고루한 전달매체가 귀여움을 받기 어렵게 된 것도 사실이다.
몇 시간 동안 데이트를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또 몇 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도 모자라 화상통화, 문자, 카톡이라는 최첨단의 매체까지 동원하며 자기를 전달한다.

가슴에 마음에 감정의 샘에 물이 고일 수가 없다. 연정이 고이기도 전에 이미 다 퍼내 버리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서로 부딪칠 육체밖에 남지 않는다. 너무 쉽게 서로를 불태우므로 육제마저도 곧 바닥이 나버린다.
뒤에 오는 것은 싫증뿐이다. 서로에게서 얻을 것이 없고 줄 것이 없다. 결국, 연인들은 철새처럼 한철이 가면 헤어진다. 만난 지 한 달이니 백일이니, 하는 말처럼....

보일 듯 말 듯 자기감정을 부끄러운 듯 감추고, 상대를 항상 신선한 사람으로 느끼면서
긴 세월을 즐겁게 가슴 조이며 살던 예전의 그 모습이 그리워진다.
감정을 마구 퍼내어 더이상 서로를 알 것 없는 상대로 만들지 않는 일 전화 대신 한 장의 편지로 연정을 다듬는 일 은근하면서도 간절했던 선조들의 사랑의 묘약, 그 예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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