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다움생식 회장·이학박사
건강이라는 명제를 안고 살아온 지 어느덧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뜻만 좋으면 되는 줄 알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마구 덤볐었다. 배움이 깊지 않았을 당시에는 양약이 피안의 등불처럼 보이며 그 효능이 너무도 신기해 사람들과 눈만 마주치면 약을 먹으라고 권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약은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나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약 먹으라고 권했던 일들이 얼마나 민망해지던지.
박사학위 전공인 생명공학을 공부할 때는 의과대학 의예과 정도에 해당하는 기초 의학을 공부하게 됐다. 해부, 생리, 병리, 약리, 의약품 제조 등의 과목을 통해 의학공부를 접해보니 이 또한 건강과는 아주 멀리 있다는 회의에 빠져 진정으로 공부를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며칠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다.
생명공학 연구를 계속 해나가는 동안 일본의 니시 가쓰죠오 선생을 추종하는 ‘한국자연 건강회’를 통해 일본의 자연 의학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사람의 생명이란 것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면서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운동에 가담하고부터는 많은 암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질병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살아 온 인생 중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필름처럼 스쳐가는 사람들이 가끔 보고 싶고, 만나고 싶기도 하다.
“이 안에 백만 원이 들어있네. 매일 이 정도 되는 돈을 자네한테 갖다 줄 테니 날 좀 젊게 만들어줄 수 없겠나?”
30대 초반에 꽤 괜찮게 생긴 청년이었던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할아버지, 돈으로 어떻게 젊음을 삽니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어도 지갑 속 돈은 탐이 나는지라 서울을 비롯해 백방으로 수소문해보기는 했다. 하지만 얻은 것이라곤 겨우 동물용 약품으로나 쓰이는 흥분제 몇 가지가 고작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 어르신과의 만남은 불과 1주일 정도로 끝이 나고 말았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그 어르신이 참 보고 싶다. 지금처럼 비뇨기과 기술이 발달되어 웬만한 증상은 수술만으로도 얼마든지 개선시킬 수 있고 각종 발기 부전 치료약이 전 세계를 휩쓰는, 그야말로 인생을 즐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세상을 접하고 보니 말이다.
그때 그 시절, 신포동 약국에서 처절한 모습으로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느냐" 고 울먹이면서 하소연 하시던 그 어르신이 정말 보고 싶다. 그 당시 부동산 임대료만 한 달에 1억을 받는다면서 매일 100만 원을 갖다 준다 해도 한 달에 3000만 원밖에 더 되느냐면서 돈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날 좀 젊게 만들어주게“! 하시던 모습.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라는 대답에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으로 쓸쓸히 약국 문을 열고 나가시던 모습이 말이다.
지금 생존해 계시면 117세일 테지만 살아 계실 리 만무하다. 지금쯤 지하에서 왜 요새 같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그 시절에 태어나 써보고 싶은 돈도 마음대로 못 써보고 살았는지 많이 억울해 하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저작권자 © 경남도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