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은 사람들 (1)
만나고 싶은 사람들 (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9.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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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다움생식 회장·이학박사

건강이라는 명제를 안고 살아온 지 어느덧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뜻만 좋으면 되는 줄 알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마구 덤볐었다. 배움이 깊지 않았을 당시에는 양약이 피안의 등불처럼 보이며 그 효능이 너무도 신기해 사람들과 눈만 마주치면 약을 먹으라고 권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약은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나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약 먹으라고 권했던 일들이 얼마나 민망해지던지.

한의학 공부를 처음 할 때는 양약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약효가 너무도 신기하여 또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한약을 먹으라고 권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한약도 약임에 틀림없고 또 ‘아무리 좋다고 한들 어찌 사람이 약만 먹고 살 수 있겠는가’ 라는 회의가 들어 많이도 괴로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박사학위 전공인 생명공학을 공부할 때는 의과대학 의예과 정도에 해당하는 기초 의학을 공부하게 됐다. 해부, 생리, 병리, 약리, 의약품 제조 등의 과목을 통해 의학공부를 접해보니 이 또한 건강과는 아주 멀리 있다는 회의에 빠져 진정으로 공부를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며칠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다.
생명공학 연구를 계속 해나가는 동안 일본의 니시 가쓰죠오 선생을 추종하는 ‘한국자연 건강회’를 통해 일본의 자연 의학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사람의 생명이란 것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면서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운동에 가담하고부터는 많은 암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질병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살아 온 인생 중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필름처럼 스쳐가는 사람들이 가끔 보고 싶고, 만나고 싶기도 하다.
1974년의 일이니까 벌써 40년이 지난 얘기다. 인천 신포동에서 아내가 약국을 개업하고 있을 때였다. 연세가 일흔일곱 되신다는 할아버지가 들어오더니 약국 카운터 위에다 지갑을 턱 올려놓으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이 안에 백만 원이 들어있네. 매일 이 정도 되는 돈을 자네한테 갖다 줄 테니 날 좀 젊게 만들어줄 수 없겠나?”
30대 초반에 꽤 괜찮게 생긴 청년이었던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할아버지, 돈으로 어떻게 젊음을 삽니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어도 지갑 속 돈은 탐이 나는지라 서울을 비롯해 백방으로 수소문해보기는 했다. 하지만 얻은 것이라곤 겨우 동물용 약품으로나 쓰이는 흥분제 몇 가지가 고작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 어르신과의 만남은 불과 1주일 정도로 끝이 나고 말았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그 어르신이 참 보고 싶다. 지금처럼 비뇨기과 기술이 발달되어 웬만한 증상은 수술만으로도 얼마든지 개선시킬 수 있고 각종 발기 부전 치료약이 전 세계를 휩쓰는, 그야말로 인생을 즐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세상을 접하고 보니 말이다.
그때 그 시절, 신포동 약국에서 처절한 모습으로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느냐" 고 울먹이면서 하소연 하시던 그 어르신이 정말 보고 싶다. 그 당시 부동산 임대료만 한 달에 1억을 받는다면서 매일 100만 원을 갖다 준다 해도 한 달에 3000만 원밖에 더 되느냐면서 돈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날 좀 젊게 만들어주게“! 하시던 모습.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라는 대답에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으로 쓸쓸히 약국 문을 열고 나가시던 모습이 말이다.
지금 생존해 계시면 117세일 테지만 살아 계실 리 만무하다. 지금쯤 지하에서 왜 요새 같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그 시절에 태어나 써보고 싶은 돈도 마음대로 못 써보고 살았는지 많이 억울해 하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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