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대기실에서
환자 대기실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0.0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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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다움생식 회장·이학박사

 
며칠 전 망구(望九), 곧 아흔을 앞두신 장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S대 부속 병원을 방문했었다. 그때 받은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오래전 시카고에서 느꼈던 감정 그대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5년 전, 친구를 만나러 시카고에 갔다가 친구 자당을 만나 뵌 적이 있다. 머리맡의 반닫이를 여시면서 미국 자랑을 하시는데 당신이 당뇨를 오래 앓으면서도 한국에서는 약 한 톨을 구경도 못하다가 미국에 오니까 병원에서 얼마나 친절하게 약을 골고루 주는지 미처 약을 다 못 먹어서 먹다 남은 약만 모아 놓았는데 이렇게 반닫이로 하나 가득 되더라는 것이다.

당뇨가 오래되면 소위 합병증이라는 이름으로 몸 전체에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난다. 고혈압, 엄지 발가락을 중심으로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괴저, 시력이 약해지는 망막염, 피부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는 피부 가려움증, 신장염 등이 그것이다.

이른바 피가 탁해지고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올 수 있는 모든 증상들이 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시작으로 전신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소위 말하는 당뇨 합병증이다. 이러한 합병증들을 각론적으로 취급하여 허나 하나의 질환으로 본다면 당뇨에서 오는 각종 병명만으로도 완전한 종합병원이 되고도 남는다.

당뇨는 기본적으로 내분비내과에서 치료를 받는다. 고혈압 증상은 심장내과, 괴저 증상은 피부과, 그리고 안과 등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몸의 각 부분에 각각 다른 증상이 나타나므로 이를 하나하나 단과 증상으로 보고 진료를 하게 되면 각각 처방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뇨라는 한 가지 증상에 따라 약 처방이 그렇게 다양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약을 처방받게 되면 환자 입장에서는 먹지 않아도 될 약까지 중복 처방받게 되어 소위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른 상황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도 그렇게 다양한 약을 동시에 먹게 된다면 없던 병도 생길 것이다.

의료보험 제도가 발달되어 있는 나라이므로 환자 입장에서 본다면 보험료만 내면 약은 공짜로 받아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막연하게나마 약은 몸에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으므로 무리가 가더라도 주는 약은 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 결과, 약에 의한 부작용이 줄어들지 않고 나날이 커지는 것이다. 의사가 먹으라면 무조건 먹는 환자와 무조건 돈만 들어오면 되는 제약회사와 병원 때문에 국가의 의료복지 정책은 적자에 허덕인다.

그러한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미국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대로 참 좋은 나라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추억. 그 기억이 이번 병원 환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되살아나는 것은 지금 내 장모님 역시 25년 전 친구 모친이 가셨던 길을 똑같이 가시고 있다는데 대한 안타까움에서일 것이다.

양로원에 혼자 계시는 장모님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성격이라 외로운데다 늘 누워 계시니까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주무시니 밤이라고 해서 특별히 잠이 올 리 없다. 그런데도 불면증이라고 호소하니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준다.

당뇨가 있다고 당뇨약, 그에 따른 고혈압 약 등 장모님 댁에 가서 약장을 열면 웬만한 소형 약국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약이 많다. 그런데도 병원에 들를 때마다 새로운 처방이 내려지는 것을 보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중에는 같은 약이 중복 처방되는 경우도 있어 그 많은 약을 드시면 오히려 약물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음에야.

국가적으로도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의료 재정이 적자를 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요즘처럼 전산망이 발달되어 모든 전산 자료가 교차체크가 가능한데도 유독 의료 처방만은 왜 전국적으로 체크할 수가 없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환자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도대체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안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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