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시인
가을에 오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의 등불 하나 켜 두고 싶습니다. 가을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진실한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을엔 그리움이라 이름하는 것들을 깊은 가슴으로 섬기고 또 섬기며 거룩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싶습니다. 오고 가는 인연의 옷깃이 쓸쓸한 바람으로 불어와 가을이 올 때마다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세월 꽃으로 만나 낙엽으로 헤어지는 이 가을을 걷노라면 경건한 그 빛깔로 나도 물들고 싶습니다. 그대여! 잘 익으면 이렇듯 아름다운 것이 어디 가을 뿐이겠습니까. 그대와 나의 사랑이 그러하고 그대와 나의 삶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가을숲은 고요하지만 고요함 속에서도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낮아지는 것임을, 채우는 것이 아니고 비우는 것임을, 비우지 못하여 무겁기만 한 욕심이 한낱 부질없는 가벼운 낙엽 한 장이었음을, 오늘의 행복을 위하여, 어제의 숲을 내일까지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푸른 나뭇잎의 작은 흔들림이 여름숲의 가슴을 식혀주듯이 때를 알고 떠나는 얇은 잎새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흐르듯이 나무마다 빨갛게 매달린 열매가 저마다 쓴 인내의 시간들이 있었음을 당신의 침묵은 변함없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건조하지 않은 서정의 당신, 새들의 낭만을 노래할 줄 알고 바람의 멋을 즐길 줄 알고, 물의 맛이 어떤 것인지 진실로 아는 당신, 이제 당신의 열정이 타오르듯 익어갈 때, 진지한 삶에 대한 오랜 침묵과 인내가 깊은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가을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을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채의 시-
봄부터 솔밭길 하나 내어 놓고 숲이 되어 버린 참 아름다운 당신의 고요는 여름새도 쉬어쉬어 머물다 가는 품
복잡한 내 심사도 갈래 갈래로 풀어내셨지요. 그 솔밭길로 오라시며, 꼭 그 길로 오라시며 가을에 기다리겠노라고, 밤송이 같은 가슴 열어젖히고 어언 눈물로 익어 버린 참 아름다운 당신의 인내는 갈 곳 없는 바람도 쓸어 쓸어 안고 누구를 기다리는 찬란한 들녘이 되었나이까. 당신이 못 견디게 추운 날, 당신이 그토록 땀 흘리던 날, 당신이 홀로 비를 맞던 날, 햇살도, 바람도, 지붕도 되어 주지 못했나이다. 나는..이제 당신의 숲이 성숙하여 모두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가 가을에 참 아름다운 당신을 겸허히 바라봅니다. 낙엽을 밟고 가는 걸음 앞에 눈물로 익은 당신의 열매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가을에 참 아름다운 당신" 이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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