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1.0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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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시인

 
청춘의 푸른 잎도 지고 나면 낙엽이라. 애당초 만물엔 정함이 없다 해도 사람이 사람인 까닭에
나, 이렇게 늙어감이 쓸쓸하노라. 어느 하루도 소용없는 날 없었건만 이제 와 여기 앉았거늘
바람은 웬 말이 그리도 많으냐. 천 년을 불고가도 지칠 줄을 모르네.
보란 듯이 이룬 것은 없어도 열심히 산다고 살았다. 가시밭길은 살펴가며 어두운 길은 밝혀가며
때로는 갈림길에서 두려움과 외로움에 잠 없는 밤이 많아. 하고많은 세상일도 웃고 나면 그만이라.
착하게 살고 싶었다. 늙지 않는 산처럼 늙지 않는 물처럼 늙지 않는 별처럼 아, 나 이렇게 늙어갈 줄 몰랐노라.
-"중년의 가슴에 11월이 오면" -

말을 하기보다 말을 쓰고 싶습니다.
생각의 연필을 깎으며 마음의 노트를 펼치고 웃음보다 눈물이 많은 고백일지라도
가늘게 흔들리는 촛불 하나 켜 놓고 등 뒤에 선 그림자에게 진실하고 싶습니다.
피었을 땐 몰랐던 향긋한 꽃내음이 계절이 가고 나면 다시 그리워지고
여름 숲 지저귀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어디론가 떠나고 흔적 없을 때
11월은 사람을 한없이 쓸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람결에 춤추던 무성한 나뭇잎은 떠나도
홀로 깊은 사색에 잠긴 듯 낙엽의 무덤가에 비석처럼 서 있는
저 빈 나무를 누가 남루하다고 말하겠는지요.
다 떠나보낸 갈색 표정이 누구를 원망이나 할 줄 알까요.
발이 저리도록 걷고 걸어도 제자리였을 때 신발끈을 고쳐 신으며 나는 누구를 원망했을까요.
그 길에서 하늘을 보고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나는 또 누구를 원망했을까요.
하늘을, 세상을, 아니면 당신을.. 비록 흡족지 못한 수확일지라도 그 누구를 원망하지 말 것을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말 것을 한 줄 한 줄 강물 같은 이야기를 쓰며
11월엔 한 그루 무소유의 가벼움이고 싶습니다.
-"11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

천 번을 접은 가슴 물소리 깊어도 바람소리 깃드는 밤이면 홀로 선 마음이 서글퍼라.
청춘의 가을은 붉기만 하더니 중년의 가을은 낙엽 지는 소리
옛가을 이젯가을 다를 바 없고 사람 늙어감에 고금이 같거늘
나는 왜, 길도 없이 빈 들녘 바람처럼 서 있는가.
모든 것이 그러하듯 영원한 내 소유가 어디 있을까.
저 나무를 보라. 가만가만 유전을 전해주는 저 낙엽을 보라.
그러나 어느 한순간도 어느 한사람도 살아감에 무의미한 것은 없으리.
다만 더 낮아져야 함을 알 뿐이다.
-"11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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